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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자 모 경제신문의 사설은 참으로 '용감'하다. 전직 고위임원의 자수로 삼성 왕국의 검은 돈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엔 '합리적 무시'가 필요하다"고 대놓고 주장한 것이다. 말하자면, 자그마한 일에 우리들의 소중한 정신을 허비하지 말고 "그냥 덮자"는 것이다.

 

돈으로 국가를 장악하려는 삼성의 계획

 

1960년 3·15 부정선거 때 '3억원'이라는 뇌물을 건넨 것으로 시작한 삼성의 '뇌물 역사'는 이미 반세기에 가깝다. 기실 새삼스러울 바는 없다. 더구나 정경유착은 한국사회 모든 재벌의 공통된 경험이고, 선진국의 대기업들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삼성은 내심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걸 다 아는 사람이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그냥 묻어둘 수 없는 이유는 '못된 놈 버릇 고치기'의 차원에만 있지 않다. 삼성의 최근 행태는 IMF 사태 이후 완료된 '1대 재벌체제'가 한국사회 전반을 장악해 가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군사정부와 그 후예들에게 노골적으로 뒷돈을 대주던 삼성은 1998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정권을 잡자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년 동안 삼성은 스스로 국가권력을 넘어서려는 준비를 착착 진행시켜 왔다. 오늘에 이르러 삼성은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 법조계, 언론계를 비롯한 각계의 핵심부를 '돈으로 장악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재벌총수의 승수효과, 그 실체는?

 

삼성을 포함한 재벌의 불법, 탈법을 법대로 처리하자는 여론이 등장할 때마다 검찰과 법원은 스스로 총대를 메고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재벌총수들을 선처해 줬다. 이른바 재벌총수의 '승수효과'(1단위의 변화가 전체 경제에 파급시키는 변화의 크기)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승수효과'는 긍정적이기만 할까?

 

한국에서 대기업의 최대주주가 영어사전에 고유명사 '재벌(Chaebol)'로 등극하게 된 것은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의 산물이다. 국가와 대통령은 정치적 충성을 대가로 특정 자연인에게 금융 특혜를 포함한 각종 지원을 제공하고,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의 희생을 묵시적으로 용인해왔다. 재벌은 문어발식 확장과 상호출자, 교차복선출자를 통해 동일한 자본으로 수십배 많은 자산을 지배하는 '한국식 자본주의'를 낳았다.

 

한국 경제를 세계 투기 자본의 먹이로 만들어버린 재벌

 

이런 구조는 1997년 외환시장의 완전자율화 과정에서 또 다른 '악의 승수효과'를 낳았다. 물밀듯이 주식시장으로 들어 온 해외자본이 보기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지분 90%를 넘나드는 주주들이 경영에도 참가하지 않고, 일본이나 독일처럼 사회적으로 경영이 감시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투기 자본들은 적은 자금으로도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었다. 해외 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은 가속화되고 기업 경영은 투자 기피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주요 대기업들의 지분 구조는 완전히 다국적화(외국인 주식 50% 이상)되면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깊숙히 종속되었다.

 

더 심각한 '악의 승수효과'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에 있지 않다. 경제학에서 '승수효과'를 널리 확립시킨 케인즈의 이론을 잠깐 보자. 케인즈는 개인들의 과잉 저축은 사람들의 소비를 위축시켜 기업은 물건을 팔 수 없어 생산량을 줄이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되고 그 실직자는 또다시 소비를 줄이게 된다. 이렇게 반복될 경우 개인들의 합리적인 행위는 경제 전체로는 큰 해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특검 도입으로 철저히 수사하자

 

삼성그룹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행위'를 했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법 비자금의 조성과 검은 로비는 삼성그룹이 아니라, 재벌총수 일가를 위한 행위일 뿐이며 지금 이 순간 합리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는 해악으로 돌아올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양심을 잃어버려, 자식들도 더 이상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김용철 변호사. 삼성 법무팀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한 절절한 그의 참회가 느껴지지 않는가? 특별검사를 통해 그를 구속하도록 하자. 특별검사가 그를 통해 삼성의 추악한 행태를 법대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고, 자식들의 존경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잊지 말자. 앞으로 꾸준히 한국사회의 '1대 재벌 체제'와 '금융 종속'의 문제를 하나씩 풀며 싸워가야 한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대안정책 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상동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태그:#새사연, #삼성, #비자금, #재벌, #승수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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