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 비자금 사태 확산', 김용철 변호사의 '기막힌' 선택

미디어분석 전문언론 <미디어오늘>이, '10월30일치 종이신문별 삼성 비자금 보도 분량(단위 ㎠)'을 분석했습니다. 작심하고 보도에 나선 <한겨레>가 12건의 기사, 6918.5㎠의 면적으로 가장 많았고, 종이신문의 태반을 차지하는 보수언론과 경제전문 언론은 하나같이 1건의 기사, 면적도 200㎠ 안팎입니다.

그런데, 내일자 신문으로 나갈, 4일자 보수언론 홈페이지에는 '삼성 비자금 사태'가 메인화면에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 <삼성도 시인한 '충격적' 내부 문건 살펴보니…>를 메인에 노출시키면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 무게를 두는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제 5일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2차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 경위와 삼성그룹 로비 내부 문건 등을 추가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 2차 기자회견에 따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에 더 큰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금산분리 폐지' 선동에 앞장섰고, 사안의 무게에 비해 적은 비중으로 사건을 취급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은 보수언론이 왜 갑작스레 논조를 바꾸고 적극적인 보도에 나섰느냐는 것입니다.

일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 측이 제시하는 문건들이 충분한 신빙성과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공개한 삼성그룹의 '회장 지시사항' 문건에는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치밀한 시나리오'가 전개돼 있으며, 이에 따라 삼성 측의 해명도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10월 30일자 사설을 통해 드러낸 삼성 측의 해명은 "김 변호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재무팀 인원이 아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굴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삼성전자 주식을 운용하기 위해 대학 동문이자 동료 임원이었던 김 변호사의 명의를 빌린 것"이었다는 주장이었죠. 그러니까 "돈을 맡긴 사람은 회사와 관계없는 사람이며 검찰 수사에 의해 돈의 실제 주인과 출처가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 사설에서 삼성과 <조선일보>가 드러낸 '주문'입니다. '검찰 수사'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나 사제단 측도 허술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자금 의혹'과 함께,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호흡을 맞추며 공직자들에 대한 '떡값 제공 의혹'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누리꾼들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고, '검찰'이 아닌 '특검제'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며칠 만에 이뤄진 보수언론의 '입장 선회'에는 사안의 무게, 그간 드러난 삼성의 행태에 따른 해명의 불확실함, 그리고 사제단의 사회적 명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사제단'을 선택한 이유로, "양심고백을 들어주는 언론사나 시민단체를 찾기 어려웠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선택'이 그야말로 결정타로 보입니다. '종교관련단체'이기 때문에, 정치권력이든 언론권력이든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공권력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기에 '보호'에도 용이합니다. '사제단' 특유의 사회적 명성 역시 사람들의 시선을 환기시키기 좋은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 <조선일보>에서 약간의 '장치'를 숨겨놨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양심선언'부터 '회유'까지…'삼성 비자금 파문' 풀스토리>라는 기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은 어떤 단체'라는 부제목 아래 맨 마지막 문단에 재미있는 구문을 작성해놨습니다.

"1989년에는 사제단 문규현 신부가 당시 대학생이던 임수경씨와 함께 평양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전통적인 보수 성향 독자로 하여금 사제단을 '좌익 단체'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보도를 비중있게 하고 있다지만, 잘 보면 '삼성' 측의 해명을 더욱 비중있게 보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게다가,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는 내일자 신문 PDF를 보니 관련 기사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경향도 있습니다.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가 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사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일보>는 '보도를 가장한 해명'의 의혹 혐의가 있습니다.

'삼성 비자금 의혹', 무엇이 문제일까

이번 '삼성 비자금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비자금 조성 의혹'과 함께 '금융실명제 위반 의혹',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로비 지시 의혹'입니다. 이 맥락을 철저하게 파헤치면, 이 '뫼비우스의 띠'가 보기좋게 하나의 끈으로 정리될 수도 있습니다.

그간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매각' 의혹부터, "검찰과 법원이 유독 삼성 관련 사건에서는 명쾌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비 지시 의혹'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그 이야기가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며, <시사저널>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왜 언론이 '삼성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정치권력에 대한 '로비 지시 의혹'까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보수언론과 경제언론은 누가 봐도 삼성의 이익이 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금산분리 폐지'를 선동하며 이를 거론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있는지, 그것 역시 명쾌하게 해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자금 조성'을 비롯한 각종 불법과 탈법이 만연하는 재벌의 현실에 비춰볼 때,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비자금 조성'과 '돈세탁'이 만연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게다가, 국민 개개인의 재산을 직접적으로 수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더이상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며, 국민 역시 재벌의 돈을 직접 대출받게 되면서 '재벌의 돈 놀이'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삼성의 납득 안가는 해명

<오마이뉴스>와 <한겨레>가 공개한 삼성의 '회장 지시사항' 문건에는 '로비 지침'이 들어가 있습니다.

<대외 로비>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받는 사람(추미애 의원 등)에게 주면 부담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호텔 할인권을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 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줬다고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2003년 12월12일 보광)

참여연대 같은 엔지오에 대해 우리를 타겟으로 해를 입히려는 부분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몇십억 정도 지원해보면 어떤지 검토해 볼 것.(2003년 10월22일 도쿄)

<언론 대응 및 여론 조성>

한겨레신문이 삼성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쓴 기사를 전부 스크랩 해서 다른 신문이 보도한 것과 비교해보고 이것을 한겨레 쪽에 보여주고 설명해 줄 것. 이런 것을 근거로 광고도 조정하는 것을 검토해 볼 것.(2003년 10월18일 도쿄)

엘지가 해외에서 덤핑을 일삼는다 하는데, 국가적으로 손해고 전부 같이 망할 수도 있다는 여론을 만들어 볼 것. 경제담당 기자나 교수를 시켜서 비교해 홍보하고 이게 얼마나 손해인지 여론을 조성해 볼 것.(2003년 12월12일 보광)

이에 대한 삼성 측 임원이라는 사람의 해명이, '대선주자들의 말 실수' 특집에 못지 않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하라"는 뜻이라는데, 이 임원은 '돈 안 받는 사람'이라는 표현에 대해 "그렇다고 이게 돈을 줬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해명은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모 가수의 음주운전 사고 후의 해괴한 해명과 정확할 정도로 일치하는 일면이 있습니다. "돈 안 받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줬다"는 이야기, 누가 봐도 "돈 받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삼성그룹 측의 해명은 언론마다 다르게 나왔습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고위 임원은 '(문제의 문건은) 현재로선 처음 보는 보고서이며,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관련이 있는 부서 등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고 작성했지만, <조선일보>에는 "비서실 직원이 회장 발언을 메모해 두었다가 중요하고 긴급한 업무 지시는 즉시 전달하고 단순히 참고할 사항은 모아 두었다가 몇 달에 한번씩 정리해서 임원들이 필요하면 참고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보도돼 있습니다.

이렇듯, 삼성그룹의 '해명'은 '오락가락' 수준입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한다는 삼성 측의 해명이 이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조선일보>가 이런 식의 보도를 했다는 것, 문건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배신감?

삼성그룹의 '오락가락 해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차명계좌 폭로'에 대한 삼성그룹은 시종일관 "김용철 변호사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의외로 뉴라이트 인터넷 언론 <이데일리>가 개연성있게 설명했습니다. "구조본 재무담당 임원이 회사와 무관한 개인친분 인사의 돈관리를 위해 특수부 검사출신의 삼성 영입인사에게 차명계좌 개설을 부탁했다는 해명 자체가 상식 밖"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은행이나 굿모닝신한증권의 계좌개설 당시의 서류를 확인해보면 금방 확인"됩니다. 필적 검사,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이 누락됐다면 '적어도 동의를 얻은 차명계좌는 아니'기에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측이 방관할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죠. 이렇듯 단순한 조사만 거쳐도 '양심고백'이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판가름됩니다. 

이런 앞뒤 안맞는 해명과 함께, 그룹 전략기획실 고위 임원이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 '배신감'을 이야기했고, '나 살고 너 죽어라' 식의 태도로 나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로선 즉각 확인할 수 없거나 사실이 아닌 주장이 일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 변호사가 모든 걸 삼성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불법) 행위는 교묘히 빠져나가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이미 '처벌'을 감수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시사in> 인터뷰에 따르면 그룹의 핵심이라는 이학수·김인주 양자가 직접 문자메시지와 전화통화 등을 통해 회유를 시도했고, "김용철의 정신이상설"까지 퍼뜨리려 하는 등,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로비의혹'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에 이 역시 간단히 믿기는 어렵습니다.

'배신감'을 느낀다면서, '정신이상설'을 이야기하는 등의 이중적인 처신이 엿보입니다. '로펌 퇴직 강요 의혹설'이나 "성실하게 살고자 했던 남편이 삼성에 들어가 망가졌다"는 편지를 투신한 부인 등, 누가 봐도 삼성 측의 '이중적 처신'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김용철 변호사는 "내가 사제단에 몸을 의탁하지 않았거나,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삼성이 벌써 강수를 썼을 것이다. 삼성에는 이런 일을 처리하는 팀이 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배신감'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삼성 비자금 의혹', 누가 수사해야 하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누리꾼들은 '떡값 의혹'이 나돌면서 검찰도 믿지 못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특검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다면 사법기관·수사기관의 신뢰도 자체가 전적으로 흔들릴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의혹 리스트'를 명쾌하게 공개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여론을 모아가 수사기관을 압박하거나 '특검제 도입' 등의 수단으로써 '경고'를 보여야 한다고 봅니다.

돈의 힘에 의해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면, 이 사회는 말 그대로 '돈'이라는 '빅 브라더'에 의해 모든 것을 통제당하는 사회로 전락할 것입니다. '삼성 비자금 사태'가 명쾌하게 해명돼야 할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비자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