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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안쪽에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책창고>입니다.
▲ 책방 가는 길 골목길 안쪽에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책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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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짐 들고 낑낑

한쪽 어깨에 사진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두 손으로는 큼직한 책꾸러미 하나 안고 있습니다. 등에는 책으로 꽉 찬 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낙성대역 앞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서 가방에 꾹꾹 눌러 채워도 담을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 책을 골랐습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부피와 무게가 보통이 아닌 사진책을 세 꾸러미.

나라밖에서 나온 사진책은 헌책방에서 마주친 그 자리에서 사 놓지 않으면, 다음에 찾아왔을 때 없습니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머니 형편이 되는 대로 장만해 놓습니다. 사진책처럼 두고두고 또 보고 다시 보는 책도 흔치 않거든요.

어떤 분한테는 휘리릭 넘기면 그만일 수 있는 사진책이고, 그런 책을 뭘 돈 주고 사느냐 할 분도 있을 사진책이며, 값이 만만치 않아서 사치스럽다고 느낄 사진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엮어낸 사진책 하나는, 글책이나 그림책하고 견줄 수 없이 오랜 세월과 땀방울과 품과 돈 등을 들여야 세상에 나옵니다. 그림 한 장 그리기도 어렵지요. 글 한 꼭지 쓰기도 어렵지요. 그러면 사진 한 장 찍기는 어떠할까요? 흔한 사진이야 누구나 손쉽게 찍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흔한 글과 흔한 그림이야 누구나 쏟아냅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우리 마음에 남고 새겨지는 사진 한 장은, 그 사진장이가 온삶을 바쳐야 한 장 나올까 말까입니다.

이리하여 이런 사진책을 바리바리 들고 메고 안고 낑낑대며 낙성대역에서 사당역 쪽으로 남태령을 넘습니다. 땀이 뻘뻘. 비오듯이 뻘뻘. 안았다가 어깨에 얹었다가 다시 안았다가. 다리가 후달달.

책방 일꾼이 일하는 셈대 둘레입니다.
▲ 셈대 둘레 책방 일꾼이 일하는 셈대 둘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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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버티며 걷습니다. 찻소리 시끄러운 큰길에서 벗어나 빵집을 끼고 안쪽 길로 접어듭니다. 찻소리가 줄며 사람 사는 냄새가 조금 느껴집니다. 약국이 보일 께 오른쪽으로 꺾습니다. 길을 다 파헤치고 무슨 공사를 하고 있네요.

히유. 이제 남현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창고〉에 닿습니다. 인천에서 서울 오가는 찻삯과 시간 품이 적지 않기 때문에, 서울 나들이를 하면 헌책방 두 군데는 둘러보려고 하는데, 책짐 바리바리 안고 움직이기는 벅차는군요.

<2> 뿌리박기

책짐과 가방을 내려놓으니 살 만합니다. 뒷간에 가서 낯과 손을 씻습니다. 손이 떨립니다. 이대로는 사진도 못 찍을 듯하여 물을 말리며 잠깐 쉽니다. 후아후아.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고. 물이 다 마른 뒤에도 한동안 앉아 있습니다. 일어나 기지개를 켭니다. 사진기를 꺼냅니다. 이것 참, 택배 값 아낀다고 수십 킬로그램이 되는 책더미를 이고 안고 다녔더니, 이러다가는 몇 천 원 때문에 몸이 망가질 판이네요. 눈에 뜨이는 책이 보이면 한 권 집어서 걸상에 앉은 채로 살펴봅니다.

<구 원/김태성 옮김-반 처세론>(마티,2005)이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처세론을 반대한다'는 책인가, 아니면 또다른 처세론을 말하는 책인가?

.. "어려움을 보면 내가 나서고, 영예를 보면 남에게 양보하라"는 말은 실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곤경은 보물이요, 반대로 영예는 화근이다. 곤경 속으로 들어가면 위대해질 수 있지만 영예를 좇으면 후환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금전을 찾기보다는 '필요'를 찾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  <130쪽>

생각해 보니, 돈 몇 천 원 아낀다는 일은 '내 쓸모'가 아닌 '돈'을 찾은 셈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이 좋아서 아무리 무거운 책짐이라도 스스로 낑낑댈 수 있다면, 다리가 후들거려도 즐겁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책이 좋다 한들, 몸뚱이 하나로 짊어지기 버거운 만큼 없는 힘을 쏟으며 져내려고 한다면 탈이 나겠구나 싶어요. 안 되겠습니다. 먼저 들른 헌책방에서 들고 온 책은 <책창고>아저씨한테 부탁해서 택배로 보내 달라고 해야겠어요.

<김태훈-이 나라 저 나라의 낙양춘추>(동서출판사,1978)라는 책이 보입니다. '이 나라 저 나라'라 했으나, 차례를 훑으니 미국과 유럽을 돌아보고서 쓴 글입니다. 요즘은 조금 바뀌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여행기'라 하면 유럽이나 미국을 다녀온 이야기뿐이었습니다. 그 뒤로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이나 네팔을 다녀온 여행기가 한두 가지 나왔고, 이제는 아시아 여행기도 드문드문 나옵니다.

<책창고>는 책시렁이 무척 가지런하고 깔끔한 곳입니다. 한쪽에 책더미가 있어서 왜 그런가 싶었는데, 갑자기 수천 권에 이르는 책이 들어오게 되어 미처 갈무리를 못하셨다고 합니다.
▲ 책더미 <책창고>는 책시렁이 무척 가지런하고 깔끔한 곳입니다. 한쪽에 책더미가 있어서 왜 그런가 싶었는데, 갑자기 수천 권에 이르는 책이 들어오게 되어 미처 갈무리를 못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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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옷차림이나 의복은, 평상생활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보다도 매우 활동적인 옷차림이다. 여름절이여서 그렇겠지만 젊은 여자들의 핫팬츠의 차림은, 주간이면 대개의 관광지에서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이었다. 청바지도 어데서나 젊은이들 사이에 보편화되어 있다. 다만 夜會ㆍ극장의 출입, 공동집회 같은 곳에서는 남자들의 정장과 여인들의 드레스 차림이 눈을 끈다 ..  <447쪽>

나라밖을 다녀온 분들은, 나라밖 사람들 옷차림을 꼭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나라밖을 다녀온 분들 옷차림새만이라도 달라지느냐 하면?

나라밖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사람을 겉모습이나 옷차림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어야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우째 도덕 교과서 이야기로만 받아들이는 듯해요.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우리들 옷장사는 어찌하라고?’ 소리가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행에 따라서 새로운 옷들이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입혔다가 버려지고 있잖아요.

'아름다운 가게'라는 곳도 생기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가게는 나오지 말았어야 합니다. 옷을 왜 '재활용'한다고 내놓습니까. 집에 옷이 얼마나 많이 있기에, 안 입는 옷을 얼마나 많이 사 놓았기에 내놓습니까. 처음부터 '안 입는 옷'이 없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유행이나 남 눈치를 헤아리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에 들고 자기 몸에 잘 맞고 자기가 입어서 좋은' 옷만, 꼭 쓸모있게 갖추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철지난 옷을 내놓아 다른 사람이 값싸게 입도록 하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나는 유행에 따라 옷을 맞춰 입고, 다른 사람은 철지난 옷을 입어도 되고' 꼴이 되는 한편, '재활용으로 옷을 내놓을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말고 씀씀이를 줄이도록' 우리 매무새와 마음가짐을 고쳐야 하지 않을는지요.

'재활용'을 해야 하는 사회는, 쓸모없이 버려지는 물건이 많은 사회이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쓸모없이 만드는 물건이 너무나 넘쳐나는 사회라고 느낍니다.

.. 그러면 우리가 보고 온 것을 토대로 우리가 본받고 우리도 그래야만 되겠다는 욕심을 몇 가지 적어 보고 싶다. ① 우리도 그들처럼 자연보호에 힘을 기울이자. 전 국토는 물론 시급히 서울의 녹화에 전력했으면 하는 것이다. 하늘은 맑고, 물도 좋은데, 시내는 너무나 삭막하다. 나무가 없다. 사막 같다. 나무 없는 거리는 죽은 거리다. 나무 없는 공원은 운동장이지 공원이랄 순 없다. 남산에서 내려다보아도 스카이웨이에서 내려다보아도 거리에는 녹음이 적다. 시내중요요소의 로타리에서 보아도 시야에는 무성한 녹음이 들어오지 않는다. 광화문에도 남대문에도 중앙우체국 앞에 을지로입구에도 종로1가 로타리에도 역전에도 삼각지에도 녹음이 초라하다 ..  <459쪽>

예나 이제나 똑같이 되풀이되는 말, '자연보호'입니다. 아마, 대통령도 공무원도 학교 교사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테지요. 자연보호에 뒤따르는 말이 '나무 심자'입니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이야기하지요. 그러면 누가 나무를 심고 있는가요? 나무는 어디에 심을 수 있을까요? 길거리에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차가 막혀서 찻길도 넓혀야 할 판인데 나무 심을 자리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 판 아닌지요? 사람 살 땅도 모자란데 무슨 나무를 심느냐 하는 판 아닌지요?

<시몬느 베이유/민희식 옮김-뿌리박기>(문학예술사,1979)라는 책이 보입니다. '뿌리박기'라. 뿌.리.박.기. 책이름을 조용히 읊어 봅니다. 뿌리를 박는 일. 무슨 뿌리를 박으면 좋을까요. 뿌리는 어디에 박으면 좋을까요. 뿌리는 꼭 박아야 할까요.

책방 들어오는 문간 둘레 책시렁입니다.
▲ 문간 책시렁 책방 들어오는 문간 둘레 책시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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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기가 다할 수 있는 직무에 적합한 사회적 지위에 이를 수가 있다면, 또한 교육이 충분히 보급되어서 누구든지 다만 그 출생의 사정으로 인해서는 어떠한 능력도 빼앗기는 일이 없게 되면, 희망은 모든 아이들에게 있어 똑같은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각 사람은 젊을 때는 자기 자신에 관해서, 뒤에는 아이들에 관해서 누구를 막론하고 상대와 희망에 있어 평등하다는 것이 된다 ..  <34쪽>

제가 나고 자란 인천이라는 곳은 제 어릴 적부터도 서울하고 견주면 시설이나 문화가 한참 뒤처진 곳이었고, 다른 직할시(나중에는 광역시)와 견주어도 멀찍이 뒤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서울과 가깝다는 까닭으로 방송국을 세울 수 없었고 방송국 지사도 없었으며(지금도 인천 지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인천방송은 끝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그라들었지요), 그 흔한 신문사 하나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이제는 두 군데 생겼습니다만). 자원이며 사람이며 서울로 갖다 대는 곳이었지, 지역 문화를 가꾸거나 키우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중앙 언론은 이를 한층 부추기며 '뜨내기 도시'처럼 인천을 이야기했고, 인천사람 스스로도 자기 삶터에 뿌리내리며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키우지 않고, '자식만큼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인천 모습은 2007년이 된 올해에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골이 깊어집니다. 인천시장을 거푸 맡고 있는 분은 '개발해야 할 곳'으로만 생각하여 온 동네 구석구석 삽질 소리가 이어집니다. 나아가, '명품도시'로 만들겠다는 이름을 내걸며, 옛 도심지를 '도시 정화 사업'과 '도시 재생 사업'으로 바꾸어 놓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정화' 대상이고, 어느 집이 '재생' 대상일는지. 버젓이 사람 사는 동네를 '정화' 대상에 올려놓고, 사람 사는 집을 '재생'해야 한다며 쫓아내는 분들은 무슨 마음일는지.

자유란, 평등이란, 평화란, 행복이란 돈 크기로만 재는지요. 집 크기로만 재는지요. 집이 몇 해 묵었느냐로 따지는지요.

.. 오늘날에 있어서만큼 작가가 양심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주장하면서 또한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는 시대는 없다. 사실 2차대전에 앞서는 수 년 동안 학자들을 제외하고 누구도 작가들과 이 역할을 다투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나라의 도덕 생활에서 이전에 사제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지위는 물리학자나 소설가가 차지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진보의 가치를 측정하는 데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작가들에 대해 그들의 영향의 방향에 관해 결제를 요구하자, 그들은 화를 내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성스러운 특권의 배후에 몸을 숨겨 버렸던 것이다 ..  <46∼47쪽>

<인천민주시민학교 강의자료 :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이영희)>(인천민주시민학교)는 1980년대에 만든 책자로 보입니다. 지금도 이곳 '인천민주시민학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없겠지요. 동인시집 <반시>(열쇠) 6집(1981)이 보여서 구경해 봅니다.

.. 다시 말하자면 우리 말 또는 언어는 역사적 삶과 사회적 주체성의 산물이므로 좋은 시는 좋은 시적 기교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있게 하는 삶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  <머리말>

헌책방 <책창고>는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바라는 책이 있다면, 미리 찾아보기를 한 다음 부탁해 놓을 수 있습니다.
▲ 셈대 둘레 2 헌책방 <책창고>는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바라는 책이 있다면, 미리 찾아보기를 한 다음 부탁해 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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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운데짬에 '한국시와 독자'라는 이름으로, 여느 일터에서 일하는 분들과 대학생 몇몇 해서 모두 열 사람이 모여서 나눈 이야기를 실어 놓습니다. 글쓰기를 하는 분도 있지만 그냥 책이 좋아서 보는 사람들, 그저 시가 좋아서 읽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듯합니다.

[이승완] 시의 문외한이 뭐라고 말할 수 있어야지요. 제가 보기엔 시가 좀 고급품이라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미자] 저도 장윤정 씨처럼 학교에서 교과서에 있는 시를 외우라고 해서 숙제하는 마음으로 외운 것밖에 기억이 안 나요. 시키는 공부라서 시를 외웠지, 스스로 시를 외우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시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요.

[김기홍] 저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시인인데, 시인이라고 특별히 불리워지는 사람은 표현 능력이 좋아서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장윤정] 시인하고 결혼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생활인으로서는 좀 곤란할 것 같아요. 연애할 때는 참 좋겠으나 평생 같이 살 사람으로서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1981년에 시를 즐겨읽던 사람들 마음이 이러하다면, 2007년에 시를 즐겨읽을 우리들 마음은 어떠할까요.

<3>책 욕심

손바닥책 하나 집어듭니다. <박준황-항일문학론>(선명문화사,1971)이라는 책입니다. 책 안쪽에 사인펜으로  '춘부장이신 염상섭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며'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책을 펼칩니다. 끝쪽에 '문학인들에게 가해진 일제의 가혹한 탄압'이라고 해서, "옥사 / 출옥후병사 / 항일운동 / 징역금고형 / 검거구류 / 출판불허 중단 원고몰수 삭제 / 망명 피신 낙향 / 퇴학 퇴직 해산 협력 거부"들로 나누어 표를 만들었습니다. '항일운동'이나 '출판불허' 같은 항목은 거의 비어 있는데, 어쩌면 자료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양반문학의 전통은 "제멋에 겨워서 혼자만 즐기는 문학 정신"이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평민문학의 전통은 "끈질긴 저항 정신의 연속이었으며, 눈물어린 익살이 섞여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  <92쪽>

문학을 계급에 따라 나누어 볼 수 있겠지요. 지난날 우리 삶은 계급에 따라서 빈틈없이 나뉘어져 있었으니까요. 가난한 양반이 있었다지만,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지만, 백성들 가난함과 고단함은 말하지 않으면서 양반들 가난함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늘 허리숙여야 하고 말을 높여야 하며, 어린아이들한테조차도 시달리던 백성들이었어요.

<항일문학론>을 쓴 박준황 님 말처럼, 평민문학 전통에서 '저항'정신과 함께 눈물어린 '익살'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민중문학이나 대중문학을 말하는 우리 발자취를 돌아보면, '저항'에만 눈길을 맞추어 '익살'을 소홀히 한다든지, '익살이 아닌 재미'에만 눈길을 맞춘 채 '저항'은 도려낸다든지 하면서, 반쪽짜리도 아닌, 절름발이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어영부영 문학이 너무 판쳤다고 느껴요.

.. 아깝게도 '심훈'은 36살, 한창 일할 나이에 먼저 갔다. 이 나라는 큰 일군을 잃은 것이다. '일본' 경찰은 그의 장례식 참가자들에게까지 '요 시찰' 감시의 마수를 뻗쳤었다. 그러나, 그의 넋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아무리 '일본'의 경찰이 그 문학성의 성장을 잘라버리려 했었고, 또는 아무리 순수문학주의자들이 "'심훈'은 대중작가다"라는 비평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그는 대중과 더불어 살아 있다고 하겠으며, 그의 저항정신도 "모든 불의에 항거하라" 하면서, 우리들과 더불어 함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줄 생각한다 ..  <151쪽>

책 고르기와 책 살피기를 멈춥니다. 더 둘러보고 싶지만, 헌책방 <책창고>도 곧 문을 닫을 때. <책창고>를 지키는 일꾼 아저씨는 한쪽 눈에 안대를 댔습니다. 백내장 수술을 하셨답니다. "최형이 왔으면 소주 한잔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이래서 술도 못 마셔."

헌책방 <책창고> 골마루는 반듯하게 줄을 잘 맞추어 놓았습니다. 한 곳 한 곳 둘러보노라면,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 골마루 헌책방 <책창고> 골마루는 반듯하게 줄을 잘 맞추어 놓았습니다. 한 곳 한 곳 둘러보노라면,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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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 2'를 한 숫자보다 더 나이든 <책창고> 일꾼 아저씨는 저를 만날 때마다, "오, 최형 왔어?" 하면서 먼저 알은체를 하며 손을 내밀며 반깁니다. 제가 먼저 인사를 하려고 해도 언제나 먼저 받게 됩니다. 그리고 늘 높임말입니다. 헌책방을 지키는 일꾼으로서 책을 섬기는 마음 그대로 책손을 섬기실까요. 헌책방을 돌보는 일꾼으로서 책을 아끼는 마음 그대로 책손을 아낄까요. 당신이 책을 사랑하는 만큼 책즐김이를 사랑하고, 당신이 책을 애틋하게 추스르는 만큼, 당신이 마주하는 책손한테 마음을 기울이지 싶습니다.

"우리도 책장사이지만, 책을 좀 덜 팔아도 돼"하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일이 중요하지" 하고 넌지시 이야기하는 아저씨. "다음에 다시 올 때쯤이면 다 나을 테니까, 그때는 소주 한잔 해야지."

살짝 알딸딸할 만큼 소주 한잔. 여기에 내 마음 가다듬을 만큼 책 하나. 그러면 되겠지요. 바리바리 꾸역꾸역 책짐을 이고 지지 않더라도 내 마음은 얼마든지 일굴 수 있고 북돋울 수 있겠지요. 아무렴.

덧붙이는 글 | - 서울 남현동 <책창고> / 02) 582-1617 / http://www.bookagain.co.kr



태그:#헌책방, #책창고, #서울, #남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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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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