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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을 두 번 치르는 것 같다."

 

이명박-이회창의 최근 상황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공식 선언을 하지도 않았는데 20% 지지도를 기록했다. 범여권이 그토록 깨고 싶어했던 이명박의 50% 벽을 깬 건 이회창이었다. 40%로 내려앉았다. 괴로운 이명박.

 

상대는 또 있다. 박근혜. 이명박 캠프의 최고 실세 이재오 의원이 원인 제공을 했다. "이명박 후보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듣는 이에 따라 협박처럼 들릴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작심하고 분을 토했다. "오만의 극치다." 경선에 끝난 뒤, 참고 참아왔던 박 대표 측은 폭발했다.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이 "이재오 2선 퇴진"을 요구했다. 이명박은 또 궁지로 몰렸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명박을 협공하는 모양새다. 시점이 묘하게도 겹쳤다. 이회창-박근혜의 사전 모의는 아닌 것 같다. 50일도 안 남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의 위기는 필연처럼 닥쳤다.

 

이회창-박근혜 협공을 불러온 '불안감'은?

 

이회창은 '스페어(여분) 후보론'을 들고 나왔다. 후보 유고(有故-특별한 사정이나 사고)시 12월 2일이 지나면 해당 정당의 후보 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수진영에 복수 후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 근저에는 '이명박=불안한 후보'라는 등식이 깔려 있다.

 

'불안한 후보론'은 박근혜가 지난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내세운 공격 논리였다. 혹여 이명박의 낙마시, 기회는 박근혜에게 오는 게 맞다. 하지만 이회창은 자신이 그 역을 자임할 태세다. 왜? 이회창은 법률가다. 이명박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꼼꼼히 살폈던 것 같다. 이명박이 기소 등으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을 경우 절차를 살피지 않았겠는가.

 

한나라당 당규 43조에 따르면 '당원은 기소와 동시에 당원권을 정지 당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자동 박탈이 아니다. 당 윤리위와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당원권 박탈이 합의될 가능성이 있겠나. 그렇다면 이명박 스스로 후보 사퇴를 해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라고 보지 않은 것 같다. 이회창이 무소속으로라도 후보로 나서겠다고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틈새'다.

 

혹자는 이회창의 행보를 골프 '잠정구'에 비유했다. 잠정구란 멀리 친 공이 OB(아웃 오브 바운즈, 코스의 경계를 넘어간 공)가 된 것으로 염려될 때 다시 치는 공이다. 잠정구를 날린 뒤, 걸어가 확인했을 때 공이 '인'이라면 먼저 친 공을 취하면 되고, '아웃'이면 나중에 날린 잠정구를 취할 수 있는 골프 룰이다.

 

이회창 측은 사실 잃을 게 없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적시에 후보 사퇴를 하면서 이명박에게 힘을 실어주는 '멋있는' 모양새를 취하면 된다. 이회창의 측근들은 출마를 가정하면서 "단일화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근혜, 진짜 웃고 있을까

 

박근혜는 어떨까? 오늘자(2일) 일간지에는 웃고 있는 박근혜 사진이 실렸다. 괴로운 이명박와 대비하려는 편집 효과였다. 박근혜는 정말 속으로도 웃고 있을까? 김무성 의원을 만났다. 김 의원은 박근혜 캠프의 좌장이다. 유승민 의원이 전략통이라면 그는 조직총책(조직총괄본부장)이다.

 

2일 오전 김 의원은 당으로부터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최고위원 임명에 대해 "78일 만에 공식적인 창구가 생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날짜까지 세고 있었나 보다.

 

"승자에 버금가는 패자의 세력이 실존하고 있는데 (승자와 패자 사이) 창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경선 직후 박 전 대표가 중간에 메신저를 시켜서 강재섭 대표와 이명박 후보에게 최고위원 두 자리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창구가 없다가 78일 만에…. 왜 이걸 아깝다 하고 안 줬냐 말이야."  

 

이명박 후보의 '김무성 최고위원 지명'이라는 화합책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원래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너무 많이 늦어진 것"이라고 되받아친 것은 그 때문이다. 어쨌든 김무성 의원의 지도부 입성으로 인해 '이재오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의 균형이 확보된 셈이다.

 

- 유승민 의원은 이재오 의원 2선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데.
"유승민 의원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수습해야 될 입장이니 같은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후보 다음의 제1의 실세다. 최고위원을 하든지 안 하든지 유지되는 권력 아닌가."

 

- 이명박 후보의 입장에서 박근혜 세력이 필요했을 텐데 그동안 왜 화합책을 쓰지 않았다고 보나.
"너무 지지율이 높기 때문 아니겠나. 그게 박 전 대표의 입에서 '오만'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고. 그런데 우리는 이미 중간에 위기가 온다는 것을 예견했다. 그 때 가서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

 

- 이회창 재출마설을 예상했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고. 국정감사에서 여권의 엄청난 매도를 예상했다."

 

김무성 의원은 '실체'라는 단어를 즐겨썼다. 우선 박근혜라는 권력의 실체를 인정하라는 얘기다.

 

"박 전 대표의 깨끗한 경선 승복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다. 한국사회 민주주의 품격을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쾌거였다. 전대 이후 지지율이 더 올라갔다. 억울하게 극적으로 우리가 패배한 것에 대해 승복 못하는 지지자들도 있지만 그게 주류는 아니다."

 

"78일만에 내준 최고위원 자리... 왜 아깝다 했나"

 

이회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인정해야 하는 "실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방호 사무총장의 '차떼기' 맞불 대응은 "하수"라고 비판했다.

 

"이회창 총재가 출마를 확정하기 전까지 노력뿐만 아니라, (출마 이후)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이방호 총장이 그런다고 (이 총재가) 멈출 사람인가."
  

- 왜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나.
"한나라당이 틈을 보였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세력이 화합하면 무적함대 아닌가. 그런데 화합이 안 되었다."

 

- 창의 지지율이 위협적인 수준이다.
"박근혜의 지지표가 경선 끝나고 이명박에 안 가고 중간에 떠있다가 그리로 갔다."

 

- 여기에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지지 쪽으로 조금만 움직여주면 폭발력을 가지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 쪽에서 긴장하는 것 아닌가.
"긴장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게임 끝난다."

 

- 그 때문에 이회창-박근혜 연대설이 돈다.
"가정이다."

 

- 가정이 성립되는 경우라면.
"가정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 그럼 이회창-박근혜 연대설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가.
"(잠시 침묵) 국민이 뭘 원하는지 봐야되지 않겠나. 국민은 박근혜의 깨끗한 승복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 전제로 본다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 앞으로 40일 넘게 대선이 남았는데.
"앞으로 얼마든지 상황의 변화가 올 수 있지만 그 때까지는 그런 원칙과 입장을 지켜야 한다."

 

- 박근혜 전 대표가 먼저 움직여서….
"그럴 사람이 아니다."

 

- 이회창과 박근혜 두 사람은 정체성이 비슷하다.
"비슷한 부분이 많다. 둘 다 원칙주의자고 이념은 같다."

 

- 지지층도 겹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이회창의 핵심지지층은 'TK(대구경북) 보수층'으로 나타났다.)
"나도 이 전 총재의 지지도를 보고 놀랐다. 두 번의 대선을 치른 힘 아니겠나. 박근혜 전 대표와 많이 겹친다. 또 이회창의 핵심인사들이 박근혜쪽에 많이 와 있지 않나."

 

2002년 대선 당시 유승민 의원은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이회창 후보의 선거전략을 짰고, 김무성 의원은 1년 4개월 동안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회창-박근혜 연대하면 게임 끝난다... 가능성? 그럴 때 아니다"

 

- 이회창의 20% 지지도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나.
"출마 선언도 안했는데 20%인데…. 출마 선언하고 입장을 내고 하면 더 빠지지는 않겠지."

 

- 이명박 지지율이 40%선이 무너지면.
"글쎄, 위기가 왔어. 자력으로 버텨낼 수 있겠나."

 

- 그래서 박근혜의 존재가 절실해진 것 아닌가.
"우리는 (이명박의 위기를)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로 봤는데 이회창 변수가 나타나서 더 큰 위기가 왔다. 처음부터 박근혜의 마음을 샀어야지."

 

- 이명박-박근혜 만남 시도 없었나. (박 전 대표는 지난 2일 "(이명박 측에서) 만나자고 한 적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있었다. 후보쪽에서 요청이 있었다. (박 전 대표의) 거절이라기보다 다음에 보자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골이 좀 깊어졌다. 만나려면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만나야지. 사실 첫 회동 때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그 때 아무 의미없는 만남이 되었다.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구체적인 문제를 상의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이명박-박근혜는 경선 이후 9월 7일 첫 만남을 가졌다.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이인동심 기린단금(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쇠도 자른다)'이라는 맹자 말씀까지 인용하며 "진심으로 협력하면 잘 되지 않겠나"하고 말했지만 박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이후 '실행'이 없었던 셈이다. 김무성 의원은 누누히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인사'다. 당연한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김 의원은 재차 당헌당규에 명시된 "당권·대권 분리"를 언급했다. 내년 7월인 강재섭 대표의 임기가 보장되고, 당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강재섭 대표는 친박근혜 계열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명박 측은 '후보 중심론'으로 맞섰었다. 당권은 곧 내년 총선을 겨냥한 공천권을 뜻한다. 박근혜 대표 진영에선 공천 불안이 깔려 있다.

 

대선이 끝난 직후 이명박측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공천권을 확실히 쥐려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이에 대해 김무성 의원은 "그럼 당 깨진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의 여세를 몰아 전당대회를 열어 당권경쟁에 들어간다면 당 망하는 거다. 공천권을 앞에 놓고 전대를 연다는 것은 당을 깨자는 것 아닌가."

 

선거는 후보 혼자 치르는 게 아니다. 조직이 있다. 박근혜는 이번 경선에서 처음으로 전국단위 자기 조직을 가져봤다. 읍면동 단위까지 어렵게 일군 텃밭이다. 이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생명줄이다. 

 

"경선 조직 거의 그대로 유지... 당권경쟁 들어가면 당 망하는 것"

 

- 박 전 대표가 지난 23일 자신을 도운 캠프 관계자들을 만나 "꼭 살아남으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박 전 대표가 백의종군한다면서 칩거하는데 만감이 교차할 것 아닌가. 후회도 있고 마음도 허전하고. 그런데 들려오는 얘기가 자기를 도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는데…. 임명직 배려도 없고, 그래서 선출직(시도당 위원장 선거)에 나가려 해도 사퇴 압력이 들어오고, 사무처 당직자도 솎아내듯 뽑아가고… 박 전 대표의 심정이 어떻겠나."

 

한번은 김무성 의원의 귀에도 자꾸 이상한 얘기가 들려와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것 같다" 싶어 박근혜측 의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40분만에 22명이 모였다고 한다.

 

- 박 측 의원들이 "이 상태로라면 후보를 지원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격앙되어 있는데.

"도울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친 것이고. 우리는 경선 때 100% 동력을 가지고 120%의 효과를 냈다. 이게 대선에서 50%일지, 120%일지는 이명박 후보의 몫이다. 단지 당선이 목적이 아니지 않나.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50% 미만의 득표력으로 당선돼 국정운영이 얼마나 어려웠나. 지금 기회가 좋다. 50%가 넘는 득표와 수백만 표 차이로 이기면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명박 후보가 목표를 거기에 둬야 한다. 니편 내편 가르면 안된다." 

 

- 지금도 조직 관리를 하고 있나.
"박근혜의 전국 지지자들은 지는 걸 알면서도 이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뭉쳤다. 정치판에서 조직과 성격이 다르다. 자원봉사였다. 원래 선거에서 지면 뿔뿔이 흩어지는데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자기들끼리 조직을 만들고 '우리 흩어지면 안 된다, 5년 뒤를 대비하자'면서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 경선 당시 조직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인가.
"거의 그렇다."

 

이명박과 이회창 사이에 낀 박근혜. 그가 쥔 건 꽃놀이패가 아니다.

 

이명박이 싫다고 이회창을 도울 수 없다. 그는 지난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통해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 이회창 총재 시절 탈당했던 전력도 상쇄됐다. 잘못 움직였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명박을 밀 수도 없다. 후보 자체의 불안 요소가 남아 있는데다가, 확실한 뒤(당권과 차기)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어렵게 일군 조직이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딜레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박근혜는 어떤 구호를 외칠까? 과연 '이명박 후보 꼭 찍어주세요'라고 말할까? 아니면 '투표 꼭 해주세요, 정권교체 해야 합니다'라는 수준에 머물까? 그건 순전히 이명박 하기에 달렸다.

 

박근혜의 정치는 당분간 '무작위의 작위'일 것 같다.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 기다림의 정치다. 


태그:#박근혜, #이회창, #이명박, #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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