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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서울구경을 떠나려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멜로디도 예쁘고 가사도 예쁜 이 노래는 내가 한국에 유학 와서 처음 배운 한국노래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꼭 마치 나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에서 보고 듣고 배운 친절과 따뜻함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마침 대전에서 서울에 도착하기까지의 2시간은 내가 지난 옛 추억을 떠올리기엔 결코 짧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다.

한국에서의 내 첫 서울행은 5월 5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나도록 서울구경 한 번도 못해봤던 당시 내 상상속의 서울은 숨 막히도록 아찔하게 솟은 고층건물과 아파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북적북적 다니는 차량들과 패션리더들이 붐비는 도시였다. 정말 그랬다. 서울은 내가 살고 있는 조용한 대전과는 달리 인파의 흐름이 너무 빨라서 나도 함께 지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날의 내 여행코스는 경복궁, 교보문고, 인사동의 순서였다. 경복궁이라면 한국에 오기 전부터 대중매체를 통해 대충 알고 있었지만 가이드 언니의 설명으로 건물이나 건물의 소품 하나하나에 부여된 의미를 듣고 나니 옛 조선인들의 지혜로움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은 교보문고, 교보문고는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큰 매장이었다. 꼬마들로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매장은 들어설 틈조차 없을 정도로 책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내가 갖고 싶은 책 몇 권을 샀다. 예전에 한국친구한테서 대학생이라면 교보문고를 그 어디보다도 신발이 닳도록 다녀야 된다는 말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에는 대학생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기도 했다.

다음은 인사동이다. 나들이에 거의 지쳐가는 내게 인사동은 또 다른 서울의 모습이었다. 인사동은 좁은 골목길이었지만 올망졸망 들어선 화랑, 골동품 점, 찻집, 한복집, 떡집 등은 한국 전통과 현대를 골고루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문화거리를 카메라에 담느라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불현듯 카메라에는 인사동 복판에 서있는 한 여자애의 모습이 담겨왔다. 손에는 'FREE HUG-따뜻하게 안아드려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지난 5월5일 서울 인사동에서 <프리허그>하는 여자애랑 한컷
▲ 지난 5월5일 서울 인사동에서 <프리허그>하는 여자애랑 한컷 지난 5월5일 서울 인사동에서 <프리허그>하는 여자애랑 한컷
ⓒ 최령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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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인사동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여자애와 포옹을 하고 있었다. 하도 궁금해서 지나가는 한국인한테 물었더니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서로 포옹을 나누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캠페인 활동이라고 하셨다.

내가 많이 힘들고 외로웠던 것일까? 사람들도 많고 해서 주춤거렸지만 내 몸은 이미 그 여자애의 품에 안기고 있었다. 따뜻했다. 그 여자애는 마른 체구였음에도 따뜻하고 넓은 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여자애는 나한테 “행복하셔야 해요”라는 말을 해주었고 나는 순간 감동의 전율이 내 온 몸을 감싸고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도 훈훈한 여자애였다. 가장 깊은 사랑과 관심은 말이 아닌 포옹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 그저 따뜻한 포옹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 여자애는 아마 내가 외국인임을 모를 것이고, 그 때 그 포옹이 나한테는 얼마나 큰 감동과 선물이었는지도 모를 것이며, 낯선 외국 땅에서 부모님을 떠나 홀로 공부하는 나한테는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인사동에서 그 여자애와의 프리 허그(FREE HUG- 자유로운 포옹)를 통해 따뜻함을 물씬 배우고 왔다.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프리 허그의 목적 또한 단순한 포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삭막하고 점점 색바래져가는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과 사랑을 나누어 주고 힘과 용기를 북돋우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프리 허그가 추구하는 따뜻함이고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누구를 안으러 간다는 것, 그것은 사회주의인 중국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보수적인 내 고향에서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도해보고 싶다. 내가 한국에서 배운 이런 아름답고 따뜻한 것들을 이 세상 누구든 함께 나눠가지고 싶다.

분명 우리나라 어딘가에도 내 포옹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나처럼 프리 허그를 통해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2007년 한국에서의 5월은 나에게 소중하고 풍성한 5월이었고 내 일기는 프리 허그로 인해 봄 향기가 물씬 묻어났다. 역시 한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한 나라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예쁜 휴대전화 벨소리가 또 울린다. 이젠 서울역에 도착이다. 오늘은 또 어떤 감동과 사랑을 먹으려나? 벌써부터 마음이 훈훈하다.

덧붙이는 글 | 이날 프리 허그 캠페인을 한 아이를 찾습니다. 이 글을 보게 되면 제게 쪽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태그:#프리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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