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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가 최근 언론을 통해 삼성이 전 임원의 명의를 도용해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이를 이용해 거액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처럼 본인 동의 없이 개설돼 비자금 조성에 이용되고 있는 삼성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는 무려 1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이었다. 삼성 고위직을 지낸 인사의 내부 고발은 처음이라 이번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사제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29일 오전 서울 동대문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김용철 전 법무팀장이 삼성에 있는 동안 알게 모르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공범자로서의 죄책감을 느끼며 우리 사제들을 찾아왔다”고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 동기를 밝히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도마뱀 꼬리 자르고 말지 몸통 밝힐지 관심

삼성은 이번 의혹에 대해 그룹의 개입이 아닌 개인들 간의 단순 거래라는 상투적인 발뺌을 하고 있다. 차명계좌가 있었다는 것이 일단 사실로 드러난 이상 ‘희생양’을 내세워 이를 무마하려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도마뱀 꼬리 자르기’ 수법이다.

과거에도 안기부 X파일 사건을 통해 삼성그룹이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수백억원 이상의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지만, 삼성은 이학수 부회장 등 몇몇 개인들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은폐했다.

비자금은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등 각종 선거의 불법 자금으로 사용되어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주범 중의 하나다. 그리고 삼성그룹이 그간 ‘삼성장학생’이라는 말이 떠돌 만큼 비자금 조성과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검찰은 김 변호사의 이번 내부 고발을 계기로 삼성그룹의 비자금 전모를 철저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다.늦었지만 이제라도 몸통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한편, 최근 계속되는 두산그룹, 쌍용그룹 비자금 의혹 등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재벌의 비자금 조성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사뿐만 아니라 관련 법제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타인 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그 위반자는 엄중히 처벌할 수 있도록 금융실명제 관련 법률도 시급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제국’은 ‘공화국’과 공존할 수 없어

이러한 비자금 의혹을 최초로 폭로한 11월 6일자 <시사IN> 제7호 커버스토리 인터뷰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사내 분위기는 참기 힘들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노릇을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어록과 지시 사항은 사내에서는 헌법과도 같다.”

이러한 고백은 일인의 제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삼성제국’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왜 흔히들 쓰는 표현인 ‘삼성공화국’이 아니라 ‘삼성제국’이냐고? 비록 ‘삼성공화국’이란 표현이 삼성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일지라도 ‘공화국’이란 칭호를 부여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제다. 원래 공화국은 제왕적 통치가 아닌 법치를 근간으로 그 구성원들에게 예속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정치체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이 과연 이러한 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따르고 있는가. 삼성은 헌법에도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본질을 침해하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저질러왔다. 법조계와 정치계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통한 사법체계 무력화, 노조 설립 원천 봉쇄 등 법치주의의 실현과 국민 기본권 보장을 끊임없이 가로막아온 것이 삼성이다. 이미 삼성은 입법, 행정은 물론 사법, 언론 및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무소불위의 자본 권력,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왔다.

역사상의 제국들은 그 자체의 힘이 막강하여 외부의 적들보다는 내부의 구조적 결함과 분열로 인해 멸망했다. 때문에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삼성제국’을 그대로 두는 것은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끄는 첩경이다. 국민 경제에서 큰 몫을 담당하는 ‘삼성제국’이 내부균열로 쓰러진다면, 이를 뒷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삼성제국’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은 세계 굴지의 기업 삼성 그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삼성의 제왕적 질서를 적어도 공화국의 원칙에 어긋남이 없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상식적인 주장이 힘을 얻지 못하는 사회는 암울하다.

김 변호사의 내부 고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문제가 앞으로 처리되는 방식과 그 결과를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이 ‘삼성제국’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허울뿐인 공화국인지, 아니면 법치가 살아 있는 진짜 공화국인지를 증명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한국사회당 대변인으로, 현재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본부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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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정치학 박사.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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