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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간디학교 도서관의 이름은 '여행가자'다. 도서관 입구 현관에는 주한인도대사관에서 보낸 '간디' 그림이 걸려 있다.
 산청 간디학교 도서관의 이름은 '여행가자'다. 도서관 입구 현관에는 주한인도대사관에서 보낸 '간디' 그림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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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학교의 교무실 이름은 '소풍가자'(왼쪽)이다.
 간디학교의 교무실 이름은 '소풍가자'(왼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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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름이 '여행가자'다. 학생들이 지었단다. 경남 산청 둔철산 자락에 있는 간디학교가 도서관을 새로 꾸며 13일 개관식을 열면서 개교 10돌 기념잔치를 열었다. 충남 금산과 충북 제천의 식구들도 다 모였다. 이 학교의 교무실 이름은 '소풍가자'다.

도서관 입구에는 주한인도대사관에서 보낸 그림이 걸려 있다. 물레를 잣는 마하트마 간디 모습이다. 도서관 안에서는 개교 10년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도서관에 책도 읽고 가볍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다락방'이 있는 게 특징이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온 세계가 성장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을 힘 있는 붓글씨로 써서 도서관 안에 걸어 놓았다. 간디 식구들은 이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상징으로 비춰진 간디학교가 10년을 맞았다. 1997년 10월 1일 고등학교 인가를 받기 위한 간디학교법인 녹색학원이 설립되었다. 간디학교는 양희규 현 금산간디학교 교장 등이 둔철산 자락에 1994년 말부터 간디농장을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 성인을 위한 '간디대학'이란 단기과정이 개설되고, 1997년 2월 '간디청소년학교 교육협동조합'이 창립되었으며, 그해 3월부터 27명의 학생을 모아 놓고 간디청소년학교를 열었다. 산청에서 시작된 간디학교(고교 과정-인가, 중학교 과정-비인가)는 2000년대 들어 금산과 제천으로 퍼져 나갔다.

간디도서관 안의 모습.
 간디도서관 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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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도서관에는 다락방이 있어 거기서 책을 읽거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간디도서관에는 다락방이 있어 거기서 책을 읽거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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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이 느끼는 간디학교는?

간디학교 10년
- 1994년12월 1일, 경남 산청 신안면 외송리에 간디농장 마련.
- 1995년 2월 1일, 성인을 위한 ‘제1회 간디대학’ 단기 과정 개설.
- 1997년 2월 1일, 학부모 ‘간디청소년학교 교육협동조합’ 창립.
- 1997년 3월 9일, 27명 학생 맞아 간디청소년학교 마련.
- 1997년10월 1일, 간디학교법인 녹색학원 설립.
- 1997년12월30일, ‘특성화 고등학교’ 인가 받음.
- 1998년 3월 8일, 중학교 과정(비인가) 신입생 받음.
- 2000년 8월22일, 도교육청 특별감사 받음(중학교 해산 명령).
- 2001년 5월 2일, 도교육청, 간디학교 중학과정 해산 문제로 고발.
- 2001년 6월 6일, 전국 ‘간디학교 살리기 시민모임’ 구성.
- 2002년 3월, 금산간디학교 개교.
- 2002년 8월 1일, 간디청소년학교 제천으로 옮겨 개교(9월)
- 2005년 3월, 산청 간디마을학교 개교.
- 2007년10월13일, 간디학교 개교 10주년 기념행사 마련.
'간디학교 10년 개교 기념잔치'가 13일 오후 산청간디학교에서 열렸다. 길놀이에 이어 강당에서는 '간디학교 10년 영상'을 관람했다. 김송현 녹색학원 이사장과 박기원 산청간디학교 교장의 인사말에 이어, 간디학교 설립자인 양희규 금산간디학교 교장과 양희창 제천간디학교 교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이어 '학교 철학과 졸업생의 삶'을 알아보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간디학교 졸업생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을 가르쳤던 샘(교사)뿐만 아니라 후배와 학부모들도 졸업생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졸업생들이 내뱉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은희(1기, 현 제천간디학교 교사)씨가 먼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학교가 변해 있을까 궁금했다"면서 10년 전을 더듬었다. 이씨는 스스로 "10년 전에는 철부지와 말썽꾸러기였다"고 실토했다.

"대안학교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일반)학교의 따돌림이 간디학교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간디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간디학교는 여러 사안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교육한다. 이것이 간디학교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다."

이씨는 "3년간 한솥밥 먹은 친구들은 친구 이상의 의미다, 지금은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도 못하지만 매우 소중한 존재다"면서 "오랫만에 학교를 찾아오니 마치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떤 대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졸업 후에도 끊임없이 간디학교와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했다.

간디학교 졸업생들이 후배와 교사, 학부모 앞에서 '학교철학과 졸업생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간디학교 졸업생들이 후배와 교사, 학부모 앞에서 '학교철학과 졸업생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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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이어 대학원에 다닌다는 박소현(1기)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종지그릇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자. 돌멩이를 던지면 물이 요동치면서 그릇이 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대신에 큰 그릇에 돌멩이 하나 던지면 퐁당하고 말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어떤 그릇이었느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10년 전 나는 작은 종지그릇 같았다. 지금은 그 종지그릇이 커지고 단단해졌다. 이곳의 생활 때문이다. '청소하기'며 '시간 맞춰 식사하기' 등이 기본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공동체 생활에는 필요한 것들이다. 그것을 깨우치는 데는 반 학기가 필요했다. 사소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낸다면 스스로 떳떳해진다."

박씨는 간디학교에서 '자연의 힘'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자연의 힘을 믿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숲속에 들어가 낮잠 한 숨 자고 나오면 개운했던 적이 있었다. 기숙사가 학교와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산에 올라가기 싫어 많이 싸운 적도 있었다. 숲은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지리산 종주 때 자연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과 교감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치고 힘들 때 자연을 찾아가 그곳에 있으면서 또 다른 힘을 얻었다."

박씨는 "입시에 가득 차 있는 학생과 학부모는 오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새로운 길'에 대해 말했다.

"처음 학교에 들어와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들 눈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몇 개월이 있었다. 누구는 '수업거부'라고 했는데, 그게 과연 '수업거부'였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당시에는 그런 우리들을 샘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걱정했다. (중략)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가보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이곳에서만이라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가득가득 담았으면 한다."

간디학교 10년 개교기념잔치가 13일 산청간디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간디학교 10년 개교기념잔치가 13일 산청간디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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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열(1기)씨는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부모님 차에 실려 간디학교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당시 학생들은 대안학교가, 더군다나 간디학교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고 할 수 있다.

"10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 간디학교도 졸업생도 많은 것이 변했다. 간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주변 사람들은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 본다. 간디에서 지식적인 교육은 받지 못했다. 샘들이 가르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흥미가 없었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게 행복하고 꿈을 가지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간디에 다니는 게 큰 행운이며 축복이라고. 모든 이에게 감사하라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약자를 위해 일하며 살기를 바란다."

이진숙(8기)씨는 "먹지 못해 죽어가고 배우지 못해 가난을 대물림하는 문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한데, 주변에서는 간디학교 졸업생들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만 물어본다.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하든 행복하게 살아가는지를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이날 저녁 간디학교 식구들은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산청간디학교의 교실 건물 모습.
 산청간디학교의 교실 건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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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학교 설립자 양희규 교장 "아이들의 변화가 보람"

간디학교 설립자인 양희규 교장에겐 현재 산청 간디학교 관련 직책이 전혀 없다. 지금은 금산 간디학교와 간디마을학교 교장으로 있다. 양 교장으로부터 개교 10년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간디학교 설립자 양희규 금산간디학교 교장과 녹색학원 김송현 이사장이 개교 10주년 기념행사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주는 기념패를 받았다.
 간디학교 설립자 양희규 금산간디학교 교장과 녹색학원 김송현 이사장이 개교 10주년 기념행사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주는 기념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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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람은?
"아이들이 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변화가 보람을 주었다. 아이들은 친구나 가족관계 등에서 힘들어한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

-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학교 분위기나 조직에 대한 지혜가 부족해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이 있었다. 그게 아쉽다. 좀 더 자문을 받아 더 잘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간디학교가 대안학교의 상징처럼 비춰지고 있는데?
"처음 출발한 학교라 그런 것 같다. 당시 재정적으로 부족하고 사회 인식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던 것에 의미를 둔다. 그동안 10년에 대해 내부적으로 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간디학교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있을 것이라 본다. 대안학교가 한국교육에 기여하려면 열정을 품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 간디학교를 처음 세울 때 품었던 꿈이 달성되었다고 보나?
"제도권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가 정말 사랑을 주고 아이들 스스로 동기 부여를 받아서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간디학교를 설립한 것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학교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행정과 재정 등을 챙겨야 하고, 그러다 보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적으로 사랑을 주는 게 힘들다. 정말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고, 책임과 자유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 지난해 간디학교 졸업생 한 명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대안학교에 올 수 있는 아이들의 폭은 다양하다. 성적순으로 보면 꼴찌부터 우수 학생까지 올 수 있다. 서울대 법대에 갔다 안 갔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아이한테 맞는 길을 갔느냐 안 갔느냐가 중요하다. 장사를 하든 기능공이든 특별히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견의 길을 제대로 갔는가가 잣대가 되어야 한다. 간디학교 졸업생이 서울대 법대에 간 게 우리 학교 안에서는 그렇게 특별한 화제는 못 됐다."

-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입시도 마찬가지로 어떤 제도든 좋은 점이 있고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내 아이만은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세속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아이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지,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교사나 학부모가 철저하게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지금은 어떤 교육도 대학 입시 때문에 안 되는 실정이다. 대학 입시 제도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학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체제는 안 된다. 학벌에 대한 세속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안 된다."

산청간디학교의 운동장.
 산청간디학교의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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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간디학교, #대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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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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