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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날. 이 날을 끝으로, 잠시나마 정들었던 로마와 이별해야 한다.

 

판테온, '모든 신들' 에게 바쳐진 신전

 

버스가 산탄젤로(천사의 성)를 지나쳐간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황가의 영묘로 계획하고 만든 것이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로마를 방어하는 요새나 교황의 피신처(르네상스 로마의 종말을 부른 '로마 약탈[1527]'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이곳으로 피신했다), 감옥 등으로 쓰였다. 이곳은 황가의 영묘답게 수많은 대리석상으로 치장되었다지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로마 탈환 당시 고트족과의 전투로 모두 파괴되었다고 한다.

 

오늘의 첫 도착지는 나보나 광장. 이곳은 원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거대한 전차 경기장이었다 한다. 광장이 긴 타원형으로 유지되어 있는 이유도 예전의 대 전차 경기장의 모양을 그대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라고. 광장에 있는 3개의 분수는 특히 오벨리스크를 떠받치는 4대강 -남미의 라플라타 강, 인도의 갠지스강, 유럽의 다뉴브 강, 아프리카의 나일 강- 을 의인화한  베르니니의 <4대 강의 분수>가 유명한데, 보수 공사 때문에 분수가 있는 부분은 공개를 하고 있지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또 나보나 광장 하면 예술가의 거리로 유명한데, 이 날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화가에게 초상화를 맡기고 노천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로마의 낭만을 즐기는 곳'이라는데, 일요일 아침에는 이렇게 썰렁하구나. 하긴 토요일 밤에 워낙 다들 늦게까지 놀고 있더니. (토요일 밤 로마의 중심가는 자정이 넘어도 시끌시끌했다)

 

나보나 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판테온이 보인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들'이란 뜻이라고 한다. (파리에도 판테온에서 따온 '팡테옹'이 있다.) 워낙 수학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곳이라 미켈란젤로가 판테온을 보고 "천사의 설계"라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라파엘로 또한 판테온에 반하여 이곳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해 이곳에는 그의 무덤이 있다. 또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암살당한 2대 국왕 움베르토 1세의 무덤도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친우 아그리파가 건설하고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복원한 이 건물은 완성된 2세기의 모습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주를 상징하는 돔은 건물 전체 높이의 정확히 반이고, 내부 원의 지름과 천정의 높이는 똑같이 42.3m로 균형을 이룬다 한다. 또한 천정에 뚫린 창은 지름이 9m나 된다지만 비가 오더라도 이 창을 통해 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한다. 2천년전 건물이 이렇게까지 정교하다니, 로마인의 건축 기술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로마인들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법률>과 <건축>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이 곳을 보고 감탄한 사람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뿐이겠는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

 

판테온에서 조금만 가면 코끼리가 오벨리스크를 받치고 서 있는 모습과 함께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이 보인다. 로마 시내의 수많은 성당 중에서 유일하게 고딕풍으로 만들어진 성당이다. 작은 성당이지만 이곳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이 열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종교 재판관의 위협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번복한 갈릴레이는 문 앞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씁슬히 중얼거렸다 한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종교 재판은 비교적 온건한 편이라 목숨을 빼앗는 사례는 드물었다고 하는데(그러나 천문학자 브루노는 끝내 화형당했다), 같은 시기 유럽 세계에서 행해진 종교 재판의 광신 하에서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을까. 르네상스가 쇠퇴한 시점에서 펼쳐진 종교 재판의 광기는 휴머니즘의 몰락이 극단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종교든 이념이든, 광신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제수(Gesu) 성당.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 내부의 자구책으로 결성된 예수회의 로마 성당이다. 예수회는 이후 세계적인 선교회로 발전했는지라 동아시아와도 관계가 밀접하다. 아시아에 최초로 가톨릭을 전파한 것도 예수회고,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의 신하가 되어 (대표적인 케이스가 <곤여만국 전도>의 마테오 리치) 서구의 문물을 전하였다.

 

예수회는 조선과도 관계를 맺을 뻔했는데, 흔히 아담 샬이라 불리우는 샬 폰 벨 신부와 소현세자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 때 샬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소현세자는 서구 문물에 큰 관심을 갖고 귀국하는데, 귀국한 지 얼마 안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공식적인 사인은 학질[말라리아]이나, 부왕 인조의 묵인하에 이뤄진 독살설이 유력하다). 소현세자와 아담 샬의 관계가 계속 진행되었다면 이후 주자학 교조주의의 세상이 되는 조선 사회의 큰 전기가 마련될 수 있었겠지만, 역사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성당에 들어가보니 노 신부의 집전 아래 미사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새삼 일요일 오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리에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다.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라고는 하지만, 로마에는 거리 하나 건너면 성당 하나가 보일만큼 많은 성당이 있으니 아무래도 분산될 수밖에.

 

돔의 천장화는 그림인지 조각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이미 피에트로 성당과 시스티나 성당에서 그 화려함은 익히 보았지만, 성당 하나하나가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그리고 성당 한 편에는 십자가에 누워 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이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다.

 

로마의 중심, 캄피돌리노 언덕에 올라

 

로마의 중심에 있는 캄피돌리노 언덕은 로마인들에게 신성한 공간이었다. 유피테르와 유노, 미네르바를 모신 신전이 있던 이 언덕은 개선식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경사진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광장과 궁전들이 보인다. 이 광장과 건물들은 다름아닌 미켈란젤로가 설게한 것으로, 완벽한 균형, 대칭, 조화를 자랑한다. 도대체 미켈란젤로에게 불가능이란 없나보다. 조각가로서, 화가로서, 건축가와 시인으로도 미켈란젤로는 탁월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신은 그를 너무나도 사랑한 것 같다.

 

광장 한가운데에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서 있다. 수많은 로마의 황제기마상 중에 유일하게 남은 기마상이다. 왜 이 기마상만 살아남게 되었냐면, 재미있는 비화가 있다. 뒷날 로마가 기독교화되면서 광신적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박해한 로마 황제들의 기마상을 파괴해버렸는데,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마상만은 남겨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콘스탄티누스로 착각하여 그의 기마상만을 남겨놓았다. 두 황제는 거의 닮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콘스탄티누스 기마상은 기독교인들에게 파괴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건물의 중앙은 중세 로마의 원로원이었다가 현재는 시청으로 쓰이는 세나토리오 궁, 양 옆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콘세르바토리 궁과 누오보 궁이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조각상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거대한 두상,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원본(광장에 있는 건 가품이다), 늑대젖을 빠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상, 철학자의 방에는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의 두상이, 황제의 방에는 역대 황제들의 두상이 있다. 박물관 창문 밖으로는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 보인다. 여전히, 관광객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산 지오반니 인 라테라노, 'De Christi Victoria(그리스도의 승리)'

 

캄피돌리노 언덕을 떠나 라테라노 성당으로 향한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주교에게 기증한 이래, 14세기 초 아비뇽 유수가 시작될 때까지 약 1천년간 로마 교황의 처소였던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로마 시내에 있지만 여전히 교황청의 영토에 속한다. 근대에 이르러 파시스트 무솔리니 정부와 교황 피우스 11세가 라테란 협정을 체결한 곳이기도 하다. (이 조약으로 교황청과 이탈리아간의 영토는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권 서문에도 나오지만, 이 성당의 벽에는 이런 라틴어 문장이 있다.

 

CHRISTUS VINCUT   그리스도가 승리하고

CHRISTUS REGNAT  그리스도가 군림하고

CHRISTUS IMPERAT  그리스도가 통치하다

 

라테라노 성당 안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동상 근처에 거대한 문이 있다. 원래 로마 원로원의 문이었는데 기독교가 승리하면서 성당으로 가져온 것이다. 저 문구처럼, 그리스도의 승리였다. 로마는 더 이상 황제의 도시가 아닌 교황의 도시였다.

 

로마와의 작별이 채 몇 시간도 남지 않아 안타깝다. 라테라노를 떠나 일정상 마지막 코스인 카라칼라 목욕장으로 떠난다. 카라칼라 목욕장은 육안으로는 그 넓이를 짐작하지 못할 정도이다. 넓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정도. 넓이도 넓이지만 건물들의 크기도 보통이 아니다. 욕탕의 크기도 여느 수영장급의 규모이다. 이 목욕장은 1600명까지 수용 가능했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욕탕, 체육관, 도서관, 정원들이 함께 있었다고하니 그 규모는 상상 이상인 것이다. 로마인의 목욕장이란 단순히 목욕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교와 휴식의 공간. 로마인들의 목욕장 사랑이 한눈에 느껴진다.

 

지금의 카라칼라 목욕장은 문화공간으로도 쓰인다. 우리가 왔을 때도 무대 시설 설치가 한창이었다. 오페라나 음악 공연이 이 곳에서 자주 벌여진다고 한다.

 

카라칼라 목욕장에서는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일행은 예정에는 없었던 바울 성당에 가기로 하였다. 이로서 로마의 4대 성당은 모두 둘러보게 된 셈. 성 베드로 대성당, 성 조반니 성당, 라테라노 성당, 그리고 바울 성당.

 

바울 성당에 들어서면 칼을 든 바울의 대리석상과 잘 꾸며진 정원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제 성당은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다. 단지 이 곳을 끝으로 로마를 떠나야 한다는 진한 아쉬움만이 가득할 뿐...

 

Arrivederci, Roma!

 

4박 5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로마는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2천 5백년의 역사를 품은 로마. 로마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또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영원의 도시이다. 그곳에서, 나는 로마인의 역사를 보았고 지금 이탈리아인의 삶을 보았고 또한 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이 여행은 내게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ROMA를 거꾸로 하면 AMOR, 라틴어로 사랑이란 뜻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사랑이 가득한가보다. 로마에 대한 사랑, 사람의 사랑으로. 괴테부터 어느 이름 없는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이 영원의 도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을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Arrivederci(다시 만납시다) 라고 하나보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영원의 도시 로마로.

 

Arrivederci, Roma!

 

* 끝으로 노래 가사 하나를 첨부하고자 한다.

 

Arrivederci Roma(로마여 다시 만나자)

 

T'invidio turista che arrivi,t'imbevi de fori e de scavi,

poi tutto d'un colpo te trovi fontana de Trevi ch'e tutta pe' te!

로마에 도착하는 관광객들을 부러워한다네. 하지만 그들은 광장과 유적지로 흩어지고

어느 한 순간 트레비 분수는 온통 너의 차지가 되지.

 

Ce sta 'na leggenda romana legata a 'sta vecchia fontana

per cui se ce butti un soldino costringi er destino a fatte tornà.

E mentre er soldo bacia er fontanone la tua canzone in fondo è questa qua!

이 오래된 분수에는 하나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진 사람들은 반드시 이곳에 돌아오도록 운명이 정해진다는.

그리고 동전이 분수 안으로 떨어지는 동안 너의 노래는 이렇게 울려나오네

 

Arrivederci, Roma... Good bye...au revoir...

Si ritrova a pranzo a Squarciarelli fettuccine e vino dei Castelli

come ai tempi belli che Pinelli immortalò!

안녕 로마, 안녕, 안녕

사람들은 페투치니와 카스텔리의 포도주로 차린 스콰르차렐리에서의 점심을 다시 맛보지.

이전에 피넬리가 그렸던 그 아름다운 시절처럼.

 

Arrivederci, Roma... Good bye...au revoir...

Si rivede a spasso in carozzella e ripenza a quella "ciumachella"

ch'era tanto bellae che gli ha detto sempre "no!"

안녕, 로마, 안녕, 안녕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즐거워하며  예전의 그 아가씨를 기억하지

너무 아름다웠기에 언제나 남자들에게 '아니오'라고만 말하던 그녀를...

덧붙이는 글 | * 작년에 올라왔어야할 기사였는데 개인사정으로 인해 한없이 미뤄졌습니다. 깊은 사죄의 말씀 드리며 늦게나마 올립니다. 차후에는 지난 겨울에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기를 올리고자 합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한길사와 오마이뉴스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태그:#로마, #로마인 이야기,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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