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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소주 답사 둘째 날이다. 정원의 도시로 알려진 소주이니만큼 오늘은 소주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정원을 순례할 계획이다. 그런데 자료를 뽑아보니 졸정원(拙庭園), 사자림(獅子林), 유원(留園), 망사원(网師園), 창랑정(滄浪亭) 다섯 곳이나 된다. 무슨 용 빼는 재주 있다고 하루 만에 다 돌아볼 것이며, 또 그렇게 돌아보는 것은 애초 우리의 여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졸정원은 연못과 연꽃, 그리고 빗소리의 조화를 세심하게 신경쓴 듯하다.
 졸정원은 연못과 연꽃, 그리고 빗소리의 조화를 세심하게 신경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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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는 졸정원으로 향했다. 졸정원은 이화원, 피서산장, 유원과 함께 전국 4대 정원에 손꼽힌다고 하며 소주에서 으뜸으로 치는 정원이기도 하다. 졸정원은 역사가 아주 깊으며 이곳을 거쳐간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다. 당나라 때에는 시인 육구몽(陸龜蒙)의 주택이었다가 원나라 때에는 대굉사(大宏寺)로 되었다가 명대에는 왕헌신(王獻臣)의 주택이었다.

졸정원은 그 명명부터 새겨보아야 할 것 같다. ‘졸정(拙政)’이라는 두 글자는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灌園鬻蔬 以供朝夕之膳 是亦拙者之爲政也”라고 되어 있다. 이 글귀는, 정원에 채소를 심고 물을 주고 가꾸어서 아침 저녁 소박한 밥상을 마련하는 것이 또한 어리석은 내가 정치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한 집안을 건사하며 소박하게 사는 것도 관직에 이름을 걸고 정치하는 것 못지 않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저택을 설계한 사람은 왕헌신이다. 왕헌신은 이 집을 짓기 위해 3년 동안 설계를 하고 다시 13년 동안이나 공사를 하여 완공하였다고 한다. 왕헌신 자신은 소박하게 살고자 졸정이라고 명명하였겠지만, 졸정이라는 의미를 새기면서 정원을 둘러보다 보면 ‘이게 무슨 졸정이야! 소박하다는 말을 이처럼 호사스러운 저택에 붙일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원향당의 화려한 내부 모습.
 원향당의 화려한 내부 모습.
ⓒ 조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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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정원은 그 규모가 아주 크다. 발길 닿는 대로 느긋하게 보려면 하루는 꼬박 걸릴 것 같다. 기왓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감상하기 좋도록 만들었다고 하는 ‘청우헌(聽雨軒)’을 지나니 명대의 유물인 원향당(远香堂)이 보인다.

‘원향’이라는 말은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나오는 ‘향원익청(香远益淸)’에서 따온 말이다. 즉, 향기가 멀리 갈수록 맑다는 뜻이다. 이 건물은 사방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도록 긴 유리창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호사스러운 가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건물의 사방은 탁 트여 시원하고, 연꽃이 가득한 연못에서 실려오는 은은한 연향이 맡아질 것만 같았다.

벌써 연밥이 익었는지 연못에 작은 배를 띄우고 연밥을 파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몇 해 전 중국 여행을 왔을 때 길거리에서 연밥을 사 먹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연못에서 직접 연밥을 파는 정경을 보니 생경하면서 이국적이다.

여러 개를 사서 더위도 식힐 겸 정자에 앉아서 연밥을 쏙쏙 빼 먹으니 그 말이 고소하면서도 알싸하다. 아들도 처음 먹어보는 연밥이 나쁘지 않은지 알알이 껍질을 벗겨서 호주머니에 잔뜩 넣고 걸어가면서 하나씩 입에 넣는다. 때가 조금 일러서 그런지 알이 아직 차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주머니가 나룻배에서 연밥을 팔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이다.
 아주머니가 나룻배에서 연밥을 팔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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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채련곡(採蓮曲)'이라는 노래가 있다. 연꽃이나 연밥을 따면서 부르는 중국의 민가인데 주로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나룻배를 타고 연밥을 따면서 청춘 남녀가 눈을 마주 치면서 가슴을 태웠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수면 위에 작은 다리가 보인다. 바로 ‘소비홍(小飛虹)’이다. 다리 위로 긴 회랑이 이어져 있으며, 수면에 무지개 같은 것이 비친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듯이 수면 위로 건물과 나무와 하늘빛이 어른어른 비치고 있다. 비가 온다 한들 호사스런 이 저택의 주인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그야말로 버선발로 돌아다니며 비 오는 날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니 졸정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졸정원의 소비홍
 졸정원의 소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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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정원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은 십팔만타나화관(十八曼陀羅花館)과 삼육원앙관(卅三六鴛鴦館)이다. 만타나화관은 주로 남자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던 장소이고 원앙관은 여자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던 장소이다.

원앙관 앞에는 여러 마리의 원앙들이 물 위에 놀고 있는데 원앙들이 별로 예쁘지는 않다. 이 건물의 유리창은 참으로 독특하다. 유리창의 일부가 파란색과 보라색의 마름모꼴 모양으로 되어 있다. 집안에서 파란색 유리를 보는 것도 예쁘지만 파란색 유리를 통해 보여지는 바깥 풍경도 볼만하다. 이 집을 설계한 주인의 미적 감각이 놀랍다.

원앙관을 돌아서 가니 ‘유청각(留聽閣)’이 있다. 유청각은 당나라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秋陽不散霜飛晩 留得枯荷聽雨聲”라는 시구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 주위에도 연못에 연꽃이 가득하다. 깊어가는 가을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가장 듣기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왕헌신이 이 정원을 설계하면서 가장 고려했던 점은 바로 연못과 연꽃, 그리고 빗소리의 조화에 있지 않나 싶다. 졸정원을 거닐다 어느 정자에 걸터 앉아도 눈 앞에 연꽃이 있고,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설계한 것 같다. 졸정원의 설계자도 시인이요, 졸정원 자체도 소리와 울림이 있는 한 폭의 그림인 동시에 정교한 한 편의 시인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의 운수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아름다운 정원에서 왕헌신 자신은 3년을 채 못 살고, 천하의 도박꾼인 아들은 하룻밤 도박에 졸정원을 홀라당 날려 버리고 졸정원의 한 귀퉁이에서 뒷방 신세를 지다가 죽었다고 하니 말이다.

호사스럽기 이를 데 없는 졸정원에서 한껏 높아진 안목으로 유원(留園)이라는 정원으로 갔다. 유원은 소주의 4대 정원 가운데 하나이다. 명대 가정(嘉靖) 연간에 처음 조성되었다가 건륭(乾隆) 연간에 유서(劉恕)라는 사람이 매입하였기에 당시에서는 ‘유원(劉園)’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후 광서 초년에 어떤 관료가 이 정원을 사서 여러 차례 수리를 하고 현재의 ‘유원’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이곳도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유원에서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유원에서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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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에 들어서니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악기 소리를 따라 가니 단아하게 생긴 여인이 너풀거리는 긴 치마 위에 비파를 올려 놓고 연주하는데 제법 근사하였다. 이곳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해 비파, 고쟁(古箏), 얼후 등과 같은 악기를 연주한다고 한다.

유원에서도 연꽃을 감상하기 좋도록 만들어 놓은 ‘하화청(荷花廳)’이 보인다. 대부분의 정원이 그러하듯 연못과 기암괴석과 각종 식물들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놓았다. 특히 임천기석지관(林泉耆碩之館)의 뒤편에 있는 관운봉(官雲峰)이라는 괴석은 예원의 보배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높이가 6.5m, 무게는 5t 정도 되는데 태호(太湖)에 떨어진 것을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유원법첩(留園法帖)이라고 불리는 700m나 되는 긴 회랑을 지나면서 역대 서법가들의 석각을 감상하면서 유원을 나왔다. 다음 코스는 창랑정(滄浪亭)이다. 졸정원과 유원 두 곳의 정원을 둘러보고 나니 다른 곳도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답사하지 않을까 하였으나 아무래도 소순과 관계가 있는 정원이라고 하니 미련이 남았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왜 이렇게 볼거리가 없는 데를 오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돈을 얼른 주고 내려달라고 하고 입장료 20위안(한화 약 2600원)을 내고 창랑정에 들어갔다. 찾아오는 관광객도 거의 없고 썰렁한 분위기로 보아 기사의 말을 짐작할 만하였다.

송나라 때의 시인 소순흠의 <창랑정기>가 쓰여진 비석.
 송나라 때의 시인 소순흠의 <창랑정기>가 쓰여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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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들어가서 보니 정원은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아담하게 잘 꾸며 놓은 것 같았다. 창랑정을 둘러보다 보니 주련에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본디 값이 없는 것, 멀고 가까운 산수는 모두 정스럽구나(淸風明月本無價价 近水遠山皆有情)”라는 시가 눈에 띈다.

이 시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순이 창랑정 정원을 샀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친구 구양수가 축하의 뜻으로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정원에는 소순(蘇洵)이 쓴 <창랑정기(滄浪亭記)> 전문이 실려있는 비석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세 개의 정원을 답사 하면서 정원에 대한 안목이 나름대로 정리된 듯하다. 졸정원과 유원은 중국의 4대 정원에 손꼽힐 만큼 화려하고 잘 꾸며져 있으며 설계자의 뛰어난 안목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호사가의 정원이었다면, 창랑정은 아담하고 소박하여 이른바 학자형 정원이라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호사가의 정원이든, 학자형 정원이든 내게 사과 나무 한 그루라도 뿌리내릴 정원을 소유하게 될 날이 언제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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