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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며칠 만에 나왔더니 꽃샘길이 한결 더 화사해졌네요."


집에서 약간 먼 거리에 있어 가끔 찾아가는 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유난히 인사도 잘하고 또 정다운 사람들이다.


지난 13일 아침 뒷동산 산책길에서는 싱그러운 자연과 함께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동공원 산자락에 있는 400여 미터의 '꽃샘길'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길이다.


부근 산동네에 사는 김영산이라는 주민이 10년 넘게 정성들여 가꾸어온 길이어서 그 길을 지날 때면 항상 그의 정성과 정다운 이웃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철 따라 꽃이 피는 이 길은 김씨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비라도 많이 내린 후면 그는 어김없이 삽과 괭이를 들고 나와 파여 나간 길을 다듬고 뿌리가 드러난 꽃나무를 돌보았다. 꽃씨를 뿌린 후에는 날마다 씨앗이 발아하여 자라는 것을 돌보는 그였다.


그런데 그 길에서 이날 아침에는 아주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입구를 지나 조금 내려가자 우선 눈에 띈 사람들은 두 명의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들은 보온 물통과 커피는 물론 각종 차를 준비해 놓고 있다가 산책하는 이웃 주민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아래 꽃샘길 삼거리에는 몇 사람의 주민들이 함께 서 있었다. 살펴보니 그들의 뒤편에는 "꽃샘길 사진전시회 및 사진촬영행사"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그들에게 무슨 행사냐고 물으니 뒤편의 펼침막을 가리킨다. 주변에는 꽃샘길의 풍경과 예쁜 꽃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날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된 행사는 이곳을 찾는 인근 주민들에게 사진업을 하는 김영산씨가 멋진 사진을 촬영해주고, 촬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동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몇 명의 주민들이 성금함에 사랑의 돈을 넣고 지나간다.


어떤 할머니는 어린 손녀딸과 함께 지나가다가 그 손녀딸에게 지폐 한 장을 쥐여주며 성금함에 넣도록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꽃샘길은 근처의 이웃들에게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졌기 때문인지, 지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샘길의 주인공 김영산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또 성금함에 돈을 넣고 가는 모습이 여간 정겨운 풍경이 아니었다.


그런데 펼침막을 살펴보니 맨 아랫줄 후원자들 중에 '오동근린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언제 이런 모임이 생겼을까? 궁금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김영산씨가 근처에 있던 몇 사람을 소개한다.


"이 분이 오사모(오동근린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님이십니다."


그는 근처 미아 9동에 사는 김종호씨였다. 어떻게 이런 모임을 만들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고, 이 멋진 꽃샘길을 혼자서 가꾸는 김영산씨 같은 분도 있는데, 저희들도 힘을 모아서 이 오동공원을 잘 가꾸고 자연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모였습니다."


회원은 32명으로 모임은 전날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이웃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가꾸어지던 오동공원 꽃샘길이 드디어 돌봄과 나눔의 더욱 아름다운 길로 진화한 것이었다.


잠시 후에는 이 지역이 속한 번2동 동장도 나타났다. 그도 오늘 아침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왔다며 금일봉을 성금함에 넣는 것이었다. 꽃샘길에는 코스모스와 백일홍, 천일홍,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꽃들이 활짝 피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 고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산책을 나온 주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서부터 어린아이들까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와서 꽃샘길의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기 짝이 없었다. 이 공원주변은 서울에서도 저소득층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표적인 서민마을이다.



그러나 더 가난한 이웃을 돕자고 벌이는 불우이웃돕기 사진촬영행사에 너도나도 기꺼이 참여하는 모습이 정말 따뜻하고 흐뭇한 풍경이었다. 이 행사는 다음날인 14일 아침에도 7시부터 11시까지 계속되었다.


"이 꽃샘길을 이제 김영산씨 혼자 돌보는 일이 없도록 저희들도 힘껏 도울 것입니다. 또 이 오동공원을 자연환경이 더욱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모든 회원들이 정성껏 지키고 보살피겠습니다."


이날 현장에 나와 있던 40대 중반의 오사모 회원의 말이다. 회원들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10년이 훨씬 넘는 기나긴 세월을 한 봉사자가 혼자만의 외로운 봉사정신으로 가꾸어온 꽃샘길이었다. 그러나 이제 30여 명의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길이 되었으니 더욱 아름다운 길로 변해가는 모습이 은근히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태그:#꽃샘길, #오동공원, #야생화, #오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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