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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하루 세끼 세 그릇이면 충분한데 그 두 배인 여섯 그릇을 먹는다고 더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이 찌고 몸은 둔해지고 , 결국은 건강을 망친다. 먹는 즐거움조차도 빼앗길 것이다. 한 그릇씩 세끼로 충분하다면 그 세끼를 질 좋은 음식으로 잘 먹는 것이 가장 좋다.

교육도 그렇다. <학교 개조론>(이정하, 미래 M&B)을 읽으면 ‘학교가 정말 이럴 수도 있을까?’하고 믿으려 하지 않으려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1994년 학교의 참담한 현실을 신문에 기고했다가 ‘자기 제자를 팔아 유명인사가 되려한다’는 학부모단체 간부에게 욕을 먹었던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저자의 직필이 너무나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아 지난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렇게 교사가 되기를 갈망했던 한 젊은이가 그것도 유명 학원 강사를 지냈던 사람이 교사로 발령 받아 첫날 첫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무참하게 무시당했던 처절한 얘기는 우리교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난 이미 최고의 강사였잖아. 수업준비도 어제 충분히 해두었는데?’

자신의 실력과 희망을 철저하게 뭉개버린 아이들 앞에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허탈해 하는 저자를 보면서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필자는 연민을 느꼈다.

이 책에는 교사가 꿈이었던 학원 강사. 뒤늦게 발디딘 교직. 그러나 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허탈한 현장에서 가슴 아파하는 사연이 구구절절하게 담겨 있다.

수업이 힘들어 승진준비를 하는 선배교사에게 현실도피라고 차마 말 못해 주는 저자는 비굴한 현실 타협자인가?

‘난 국어선생이니까 국어과에 속하면 되지 무슨 놈의 교무부고 학생부인거야?’

국어선생은 국어선생끼리, 수학선생은 수학선생끼리 앉아 교과목에 대한 자료나 정보도 나누고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체념으로 포장되고 교과목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라 행정능력이 있는 사람 순으로 대접받는 사회.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학교 사회다.

그래서 유능한 교사는 교감, 교장, 장학사가 되고 무능한 교사(?)는 현장에 남아 아이들과 끊임없이 씨름을 해야 한다. 체육교사가 승진해 영어 교사나 국어교사를 장학지도 하는 사회. 그게 학교 사회다.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사람의 인품이 되는 사회에서에서 승진이란 어떤 의미일까? 힘에 겨워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외길을 걷는 교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일이 힘들어 출세(?)의 길을 걷는 그래서 제자들을 팽개치고 행정전문가로 변신하기도 하는 게 유능해 보이는 게 학교의 승진제도다.

좌절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포기하고 타협하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까? 참으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교육 현실을 바꾸지 않고 순종의 미덕(?)에 쉬 길들여지는 교사들이 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만 불쌍하다.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와 관료제가 고스란히 온존하고 있는 사회가 학교 사회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옳은 것은 옳다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면 문제교사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잘못된 현실을 바꿔보려는 의욕이 아니라 체념과 복종이 미덕이 되고 상사에 순종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가 된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다면 외면해 버리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다. 내 일이 아니면 아무리 사회정의에 어긋나거나 불의한 일이라도 못 본 척 외면한다면 아이들은 뭘 배울 것인가? 저자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교육의 위기니 무너진 학교니 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세상이 다 그런데 내가 뭐 잘났다고 나서나? 똑똑한 채 하면 나만 손해 보는 거야. 적당히 못 본 채 하면 최소한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는 일은 없어.’

저자의 눈에 비친 학교는 나의 일을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뒤늦게 교사가 된 저자의 눈에는 그런 모순이 보인 것이다.

저자는 진정한 교사가 되기를 꿈꾼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순된 현실을 보고 침묵할 수 없다. 저자는 모순된 현실을 침묵하는 게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고 팔을 걷어붙인다. 그래서 전교조에 가입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여기저기다 목소리도 낸다. 그래도 별 효과가 없자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저자는 또  한 번 자신과의 싸움에 직면해야 했다. ‘나는 과연 책을 쓸 자격이 있는가? 자신과 제자와 현실 앞에 부끄러움 없이 떳떳했던가?' 번민하고 또 번민한다. “훌륭한 교사들 얘기도 해줘.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들도 많잖아. 좋은 교장도 많잖아. 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 사람들의 명예도 생각해 줘야지.” 아내의 충고까지 감수하면서 교사로서 현실을 고발하는 금기의 벽을 깨고 나섰던 것이다.

실의와 좌절감에 빠져 현실과 타협하거나 침묵하는 교사에게 배우는 제자는 불행하다. 그러나 용기 있는 소수 교사로 인해 학교는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모순된 현실의 벽을 깨겠다는 것은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능력 있는 교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교육현실을 바꿔낼 혁명가(?)가 더 필요하다. 오늘날 사회가 이 정도 민주화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자의 전유물에서 아이들을 학교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일. 그 일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용기 있는 교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아이들 편에 서겠다는 저저와 같은 선생님이 있기에 학교는 아직도 행복하다. (계속)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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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홈페이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학교개조론 - 유명 학원 강사 출신 현직 교사의 명쾌한 교육 해법

이기정 지음,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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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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