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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원 기자] 민족 최대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기다려지는 공연이 있다. 국악인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국악 콘서트’를 여는 명창 김영임의 효 콘서트.

1999년부터 시작된 효 콘서트는 지금까지 관객 수만 30만명을 넘길 정도로 부모 세대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부모님만 보는 공연에 그치지 않고 딸과 아들, 며느리와 사위도 함께 즐기는 공연으로 변모했다.

김영임
 김영임
ⓒ 우먼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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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연세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자식들은 공연장에 부모님을 모셔다주었다가 공연이 끝날 때쯤 다시 모시러 왔죠. 그런데 요즘에는 딸, 며느리가 같이 와서 공연을 즐겨요. 국악 공연을 통해 다양한 인생사를 듣기 시작한 거죠.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콘서트 형태로 공연을 변화시킨 것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김영임(50) 명창이 ‘효(孝)’를 테마로 한 공연을 이어가게 된 데에는 배우자인 개그맨 이상해씨의 도움이 컸다. 노래만 부르면 관객이 흥미를 느끼기 어려우니, 더욱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뮤지컬 형식을 취해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김영임의 효 콘서트에서는 ‘한오백년’, ‘아리랑’ 등 귀에 익숙한 민요뿐만 아니라, 평소 보기 힘든 굿판이 열린다.

관객과 하나가 되는 흥겨운 민요 한마당도 펼쳐진다. 김씨는 "공연마다 이상해씨가 깜짝 출연을 하는데 관객이 몹시 좋아해 질투가 난다"며 농을 던졌다.

"우리 두 사람이 오랫동안 잘 사는 모습을 관객이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남편이 잠깐 출연하는데도 관객이 너무나 좋아해요. 전 관객 편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과 화려하게 펼쳐지는 굿판으로 눈이 만족스럽고, 제 노래로 귀가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김영임 명창이 소리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운명 같은 만남이 있다. 1972년 지금은 없어진 청구고전성악학원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故 이창배 선생을 만나 ‘회심곡’을 배운 것이다. 그때부터 소리에 미쳤다. 가족들이 집 밖에 못 나가게 할 정도로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소리 아니고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악인의 길만 걸어왔다. 그가 국악인으로서 받은 상은 일일이 헤아리지 못할 정도. 1973년 민속경연대회 장원 수상, 1984년 제1회 KBS 국악대상 대상 수상, 1995~1997년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 수상, 2002년 선행상 수상 국무총리 훈장 수훈, 2004년 제6회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 대상 수상 등을 휩쓸었다.

1974년부터 지난해까지 낸 음반도 8개나 된다. 이중 ‘회심곡’ 음반은 국악 음반으로는 처음으로 100만 장이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5년에는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경기12잡가 완창에 도전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후계자들을 위한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동안 맡았던 중앙대학교 국악과 교수직을 그만두고 현재 '김영임 소리 전수원'에서 소리, 한국 무용, 민속악 장단 회심곡, 한양 천신맞이굿 등을 전수하고 있다. 한꺼번에 여러 명을 가르치는 것보다 온전히 소리를 이어갈 수 있는 1명을 계속 붙잡고 가르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35년 넘게 한길을 걸어왔지만, 한결같이 겸손하다.

"민요를 사랑하는 국악인으로 원 없이 민요를 불렀지만, 아직까지도 참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도 있게 박자를 맞추고 추임새에 얹어 부르다 보면 사람의 마음을 여미게 하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흥과 신명에 저절로 춤사위를 내놓게 하는 진정한 우리 소리의 멋이겠지요."


태그:#국악, #우먼, #여성, #김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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