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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확실히 '정조'가 유행입니다. 왜일까요? 잘 살펴보시면, '사극'에도 뭔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왜 '수양대군'과 '중종'이었을까?

   

과거에는, 특히 군사정권 시대와 그 여파가 미쳤던 1990년대에는 '계유정난'이나 '중종반정'을 다룬 사극이 유행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설중매>, <한명회>, <왕과 비>, <장녹수>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습니까?

 

그 공통점이 뭔지는 아시죠? 두말할 것도 없이 '쿠데타'죠. 어린 임금이 즉위해 왕권이 중신들에게 휘둘린다는 판단 아래 결연히 일어선 수양대군의 이야기와,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는 정의의 혁명 '중종반정'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사극이 때에 따라서는 당대의 정치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당대의 정치를 은연중에 정당화시킬 수 있는 키워드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설중매>나 <한명회>, <왕과 비> 등을 기억해봅시다. 수양대군과 한명회를 비롯한 '계유정난'의 주축 세력들은 영향력 있는 배우들이 캐스팅돼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습니다.

 

그러면서, <왕과 비>의 경우에는 '의정부서사제'를 바탕으로 어린 왕을 대신해 사실상 대국을 주관하는 절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이 종친을 핍박하고 견제하면서 쿠데타의 명분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은연중에 합니다.

 

물론 <왕과 비>는 김대중 정권 시절에 방영됐었습니다. <왕과 비>는 과거의 <설중매>나 <한명회>와는 달리 '정권교체' 자체에 비중을 뒀던 작품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당대의 정국 주도권을 쥐고 있던 김종서와 황보인이 '구세력'으로 묘사됐던 일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양대군을 비롯한 종친이 핍박(?)받는 장면이 부각됐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핍박받던 수양대군이 절치부심해 드디어 '정권교체'에 성공해 조선의 기틀을 잡아간다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특히나 '계유정난'의 연장 스토리였던 '중종반정'은 '정권교체'에 성공한 새 정권으로서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역사 속 소재였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왕조 최고의 폭군 연산군을 엎어버리는 혁명이었으니 당연했겠죠.

 

심지어는 궁중암투를 다뤘던 '장희빈'의 이야기조차도, '중전'이라는 정상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여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서인과 남인의 치열한 정권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역사 속 소재가 당대의 정치현실을 짚고 정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런 것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같은 사건을 놓고도 정치적 입장이나 개인적인 생각에 의해 판이하게 묘사될 수도 있습니다.

 

같은 '계유정난'을 놓고, 이광수는 <단종애사>를 썼고 김동인은 <대수양>을 썼습니다.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수양대군에 대한 묘사가 극단적으로 엇갈립니다.

 

<이산> 알고 보면 '정조'는 조선 역대 임금 중 가장 불행한 성장배경과, 가장 불안한 정치적 입지를 안고 즉위했던 임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정조'의 시대

   

정조는 조선왕조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불행한 성장배경을 안고 있고, 가장 불안한 위치에서 즉위했던 왕입니다.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것이 영조와의 정치적 의견 대립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십니다.

 

비록 탕평책을 표방했다지만 태생적으로 노론 군주였던 영조와는 달리 사도세자는 소론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부 학자들과 역사 마니아층은 사도세자가 영조의 아킬레스 건 '경종 독살설'을 거론했기에 영조와 노론 벽파가, 심지어 사도세자의 처가였던 풍산 홍씨 일가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정조와 노론, 그중에서도 사도세자의 죽음에 찬성했다는 벽파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가 됐다는 거죠.

 

하지만 노론 벽파는 조선의 정국 주도권을 100년 가까이 잡고 있던 거대정치세력이었습니다.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 김씨도 벽파 가문 소속으로서 정조의 즉위를 반대했고, 고모 화완옹주는 양자 정후겸을 앞세워 역성혁명을 꿈꿨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한중록>이라는 저서도 남겼지만, 그건 '친정을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혐의를 안고 있는 혜경궁 홍씨도 아들의 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들의 재위 기간 동안 일관적으로 친정의 복위만을 외쳤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긴 합니다. 어쨌든, 이 모든 요소들을 결합해보면 정조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던 왕이었던 것입니다. 자객이 궁궐을 넘어 직접적인 암살을 시도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정조의 현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현실을 이야기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소재인 셈입니다. 야당, 언론과의 갈등, 게다가 '수도 이전'이라는 승부수를 활용하려 했다는 점, 정권의 명분이 '개혁'이었다는 점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있긴 합니다.

 

과거에는 소설가 이인화가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의 '홍재유신'을 빌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을 정당화하려는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정조의 '홍재유신'이 좌절되면서 박정희의 유신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까지 했었죠. 역사라는게 '정치'라는 소재를 만나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누구 말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수도 있는 거죠.

 

다른 소재 사극에서도 '정조'의 흔적이...

   

<왕과 나>의 성종 어머니 인수대비와 장인 한명회의 절대권력 속에서, 사림파 기용 등의 개혁정책을 추진합니다. '정조'처럼 묘사할 여지가 있는 임금이죠.

<왕과 나>는 초반에 '예종 독살설'을 그리면서 기반이 허약한 왕이 기득권을 장악한 조정 중신과의 갈등에서 어떤 파국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그려나갑니다.

 

<태왕사신기>는 베일에 싸인 성장과정을 안고 있는 '광개토대왕'이 왕위 즉위 과정에서 극심한 방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그려나갈 것입니다. 정립의 대하소설 <광개토대제>에서는 광개토대왕의 큰아버지인 고구려 17대 소수림왕이 처가에 눌려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임금으로 그려집니다.

 

이 또한, '정조 신드롬'의 핵심이 반영된 이야기들입니다.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이 대한민국의 궁극적인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 근거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노무현 정권의 현실이며, '정조'가 그에 역사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인식이 많은 것입니다.

 

<한성별곡-正>은 특히나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것 아니냐"는 정조(안내상)의 대사나, 정조의 '화산 수도 이전' 등의 소재를 묘사하면서 직접적인 연상의 매개체를 제공했습니다.

 

워낙 탄탄한 이야기와 신선한 접근법, 수려한 영상미학을 앞세워 시청률과는 별개로 '명품 드라마'라는 평이 있었던 드라마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현실'과의 연상이 별미를 제공했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산>이 방영될 예정이고, <왕과 나>나 <태왕사신기>에서도 권력자의 구체제와의 싸움을 그릴 것으로 보입니다. 성종은 어머니 인수대비와 장인이자 절대권력자였던 한명회의 압력 속에서도 사림파를 기용하려 애쓰는 등, 역시나 '정조'처럼 묘사할 여지가 있는 임금이며, <태왕사신기>가 그릴 광개토대왕의 모습도 앞서 이야기한대로입니다.

 

심지어는 케이블 TV에서도 '정조'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채널CGV TV 영화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에서 김상중이 '정조'로, 박정철이 '정약용'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정조, 혹은 개혁을 추진하려다 좌절당하는 군주의 초상이 이처럼 여기저기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극'을 볼 때는 현실 정치와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는 시청 방법이 될 것입니다.

 

2007 대선이 끝나 새 대통령이 탄생하면 어떤 역사적 사실이 '유행'이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겠죠. 사극이, 단순히 '사극'일 수만은 없는 현실입니다. 재미있게는 보되, 일관적으로 자신의 잣대를 유지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한성별곡-正>의 '정조(안내상)' <한성별곡>은 "지금 막나가자는 것이냐" 등의 대사, '수도 이전' 등의 민감한 정치적 현안까지 거론하며 '정조'를 매개로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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