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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아~ 너를 가둔 것은 이 감옥의 창살이 아니라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건 네 자신이다.

이제 그만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내게로 와 다오 춘향아~  

 

지난 4일 저녁 서울 대학로 아르코소극장에서  전라도 버전의 '변'을 연기하는 배우 문성근은 조금은 회의적이고 조금은 패배감에 젖은 듯,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는 듯 절절한 연애시를 읊고 있다.

 

그런 연애시인  변학도의  구애의 시구를 듣고 있노라니 자칭 시인이던 폭군 네로,  에스메랄다에 대한 그릇된 사랑과 질투로 눈이 멀어 파국으로 치닫는 파리 노트르담 주교의 모습까지 복잡한 자아를 지닌 권력자들의 모습이 겹겹이 겹쳐 떠오른다.

 

늘 지극히 절제된 이성적 연기를 펼쳐 연기자라기보다 예리한 사회적 의식을 지닌 시사프로그램 사회자를 연상시키는 배우 문성근이 조울증과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연애시인 변학도의 모습을 절절하게 표현해 내느라 온몸이 땀에 젖은 채 극을 끝내고 나온다.

 

연극 '변'의 변라도 역으로 20년 만에 후배들과 아르코 소극장에 발을 딛었다는 문성근을 만나  그가 읽어 낸 '변'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변'은 풍자극이라는데
"잘 알겠지만 연출가 이상우 선배는 '칠수와 만수'를 비롯한  대작을 연출한  블랙 코미디의 대가이다. '변'은  변학도, 기생, 아전 부분만  뽑아 새롭게  만든 것이다. 이번 극의 변학도라는 인물은  늘 산에 다니고, 술 마시고, 연애하는 것이 본업인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독재자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인물을 한 방향으로 고착시키지 않고 복잡한 내면을 가진 그런 인물로 그려 내고자 했다. 시는 황지우 시인의 시에서 가져왔다."

 

-풍자극인 만큼 재미와 의미의 적절한 중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상우 선배는 관객들과 소통하는데 있어 편안하게 와서 즐겁게 웃으면서 한두 가지 생각해 보는 것, 즉 즐기며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가볍게 극을 만들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된 연극을 만든 이유가 있는가?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나기 때문에 사회변화에 따라서 시대 흐름에 조응을 하면서 관객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전라도 경상도 두 가지 버전을 만든 것은 우리가 표준말을 교육받는 과정에서 지방 말이 갖는 고유의  음감, 리듬감이 없어지고, 우리 말이 맛이 없어지고 밋밋해진 경향이 있다. 이상우 선배는 늘 지방 말의 뉘앙스를 살린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고 실제로 '거기' 같은 경우 강원도 말이었고 여러 편의 지방말을 살린 작품들을 연출했다. '변'을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든 것 역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싶은 마음, 지역통합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더하여 춘향전의 원작이 남원이이라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본인은 어떤 이미지로 '변'을 읽으면서 연기를 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춘향에게 구애를 하는데 그것이  춘향에 대한 구애일 수도 있을 것이고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구애일 수도 있을 것이다. 뭐랄까 '변'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의가 섞여 있는 조울증이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대개 권력자하면 한 방향으로만 묘사들을 해 왔는데  이번 인물은 상상속의  인물인  동시에  조울증 비슷한 복잡한 내면을 가진 권력자로 설정되어 그런 인물로 그려졌다."

 

-그렇다면 권력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심리적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인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권력자인데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복잡한 내면을 지닌 권력자라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다른 이 역을 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지금까지 이런 권력자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정말 즐거웠다. 이  공연장에 20년만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배우 지망생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연기 활동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고 연기자들이 질적으로도 엄청난  발전을 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니  에너지들이 아주 충만하고 밝고 굴절됨이나 열등감이 전혀 없었다.덕분에 나도 그들의 에너지를 힘입어 더 힘이 솟아 정말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색다른 마당극 형식이어서 관객으로서  낯설다. 본인이 느끼기에 관객의 반응은 어떤 것 같은가?

"이번 무대는 경계를 허무는 장점이 있는 반면, 관객들이 조금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가운데 무대가 있고 양 옆에 관객이 있어 관객들은 연기자와 뒤편의 또 다른 관객을 동시에 보게 되어 있다. 연기자들 역시 양편에 관객을 보게 되어 있어 관객과 연기자의 경계가 허물어져  같이 노는, 즉 극과 극 바깥을 동시에 같이 가져가는 그런 무대 형식이다. 나 역시 이런 연기는 처음이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양식의 난장판을 만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마당극이라 하더라도 대개 화자의 말이 객석에 전달되지만 이 경우는  연기자가 굳이  애써서 의미 전달을 하려 하지 않고, 관객 역시 그냥 난장을 느끼고 보면 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새로운  표현을 위한 극적 시도라고 보여 진다."

 

 

 시인 황지우와 블랙코미디의 대가인 연출가 이상우가 만나서 만든 새로운 형식의 난장극 '변'은 배우 문성근의 말대로 그저 가벼운 기분으로 적당히 그 난장판 속에 잠겨 있다가 파장의 분위기를 타고 스스럼없이 돌아와도 되는 한바탕의 연극적 유희로 생각하고 보면 될 것이다.

 

'변'은 대학로 혜화역의 아르코 소극장에서 오는 15일까지 공연되며, 경상도와 전라도 두 가지 버전으로 공연되며 전라도 변에 문성근, 경상도 변은 강신일이 맡아 연기 대결을 펼친다.


태그:#아르코, #변, #문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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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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