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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별칭은 '세계의 연예수도(The Entertainment Capital of the World)'이다. 자신들이 부르는 이름이기는 하지만 미국 연예산업의 상징인 할리우드가 이 곳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어울리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별칭에 걸맞게 할리우드와 함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유니버셜 스튜디오다. 지난 1월 딸과 함께 LA를 찾았을 때는 시간이 없어서 가보지 못했는데, 아이가 좋아할 공간을 혼자 가려니 좀 미안하기는 했다.
 
공중도덕을 돈으로 산다

 

마침 유병진 선배가 동행을 해주기로 해서 편안하게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유 선배는 이제 막 새로 사업을 시작해서 정신없이 바쁜데 나 때문에 하루 휴가까지 냈다.

 

유 선배의 집에서 유니버셜 스튜디오까지는 제법 먼 거리이기도 하고 저녁엔 다른 곳도 가볼 겸 해서 오전에 나섰는데도 밀려드는 차량들이 적지 않다. 평일 아침인데도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찾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입장하기 위해서 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가 독특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여러 옵션의 표를 파는데,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표'가 있는 것이다.

 

스튜디오 안의 여러 코너들을 경험하려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야 한다. 그런데 그걸 면제해주는 표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이다. 이 표를 사면 어느 코너든 줄을 서지 않고도 우선 입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공중도덕'도 돈으로 사는 셈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괴짜경제학(Freakonomics, 스티븐 레빗 저)>란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유아원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이 일정시간까지 아이를 찾아가야 하는데, 늘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직원들이 퇴근을 하지 못하자 늦는 시간에 따라 벌금을 내도록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전에는 늦게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미안해하더니 벌금을 내면서부터는 당당하더란 것이다.

 

여기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도 돈을 추가로 내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 셈이다.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사고가 깊이 스며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영화의 장면을 파는 스튜디오

 

입장권을 구입하기 전에  유니버셜스튜디오 거리 '시티워크'를 둘러봤다. 여기에도 이미 각종 영화캐릭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안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마릴린 먼로. 아마 일정한 구역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관람객들과 사진도 찍나 보다. 조로 캐릭터는 아예 조로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을 실연하고 있다. 각종 코너마다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화의 장면들이나 캐릭터를 동원해서 아이들이 즐거워할 코너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 코너들을 일일이 볼 수는 없어서 트램(tram, 케이블 위로 바퀴가 달린 차가 짐을 실어 나르는 장치)을 이용해 스튜디오를 돌아보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 곳 트램은 놀이기구들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스튜디오 전반을 돌아보게 하는 수단이다.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투어의 안내자는 '이곳은 어디고 어떤 배우가 어떤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건조하게 안내하지는 않았다. 비록 앉아서 사람들을 맞기는 했지만 온갖 표정과 행동으로 연기하듯 안내를 했다. 덕분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즐거워한다. 하루에 한 번씩은 한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안내자도 있다.

 

<죠스> <킹콩> <싸이코> 등 과거의 영화 속 장면을 보여주는 코스뿐만 아니라 NBC스튜디오도 있어서 현재 촬영 중인 영화나 드라마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사이코>에 나오는 선인장 모텔이 나오자 내 뒤에 앉은 백인 관광객 부부가 "아는 영화의 장면이 나왔다"고 소리를 지른다.
 

트램 타고 한 바퀴, 영화를 만나고 온다


이처럼 트램은 투어 시간 내내 우리가 흔히 아는 각종 영화에서 기억날 만한 장면들 속으로 관람객들을 데리고 간다.

 

"어느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는데 그 순간 지하철 안에서 폭발이 이루어져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트램이 점차 땅 밑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움직이는가 하면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등 실제 영화의 장면 속에 관람객들이 들어가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꾸몄다. 

 

지난 1월 할리우드 거리를 가 보았을 때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추억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 거리에서 파는 추억이 배우들이었다면 여기서는 영화의 장면을 팔고 있다. 더구나 여기서는 영화를 체험하게 해서 좀더 생생하게 그 장면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는 현장을 함께 보게 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키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매개로 한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에 관람객들을 직간접적으로 관계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연예산업의 수도답다.

 

 

끝을 알 수 없는 연예산업...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

 

유니버셜스튜디오는 킬 래믈(Carl Laemmle)이라는 사람에 의해 1915년 처음 만들어졌다. 그 사이에 MCA를 거쳐서 일본자본인 마쓰시다와 프랑스자본인 비벤디 등에 의해 운영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GE가 80%의 자본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

 

100만평에 이르는 넓은 땅에 각종 스튜디오와 영화장면 놀이공간들이 어우러져 있어 하루에 이곳을 다 즐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인다.

 

참 별 걸 다 가지고 돈을 번다는 생각도 들지만, 영화와 드라마가 주는 공감과 간접체험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은 욕구를 적절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를 현실공간에서 만나면서 상상의 세계로 잠시 빠져들기도 한다.

 

헐리우드가 생산해 내는 영화와 그에 관련된 배우들이 영화뿐 아니라 이렇게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재생산되면서 미국의 연예산업은 그만큼 깊숙이 영향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또 확장된 영향력에 기초한 이미지마저 팔면서 부를 축적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연예산업은 그 끝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미국의 연예산업이 세계 각지에 파는 영화와 드라마로부터 오는 부가가치뿐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도 하지만, 정작 미국민들의 삶을 규율하는 정치적 결정과 행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러 배우들의 사생활이나 심지어 성인잡지 여성모델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의 주요뉴스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처럼 미국민들의 의식과 삶을 '스타' 중심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찾은 것을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하게 되는 말이지만 그래도 역시 '어느 새' 1년 이란 시간이 지나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돌아가서 당장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아무런 계획이 없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의 변화는 빠르고 그만큼 시민사회가 자신의 몫으로 해야 할 일은 늘어난다. 할 일이 없어서 걱정일 것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내가 신나고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어 줄 것인가의 문제일 뿐. 이제 이것으로 뉴욕이야기는 끝.


태그:#유니버셜 스튜디오 , #헐리우드, #연예산업, #미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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