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살로에서 바라본 라노히라
 이살로에서 바라본 라노히라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자 지오반니를 다시 만났다. 이살로 트레킹 2일째의 아침. 다시 만났다기보다는 또 만났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라노히라에 도착한 다음부터 그와 여러 번 마주쳤다. 그는 부인, 딸과 함께 여행중이기 때문에 내가 묵고 있는 곳보다 좀더 좋은 방갈로 호텔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라노히라가 워낙 작은 마을이고 트레킹 코스도 빤하기 때문에 그와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지오반니는 나를 볼 때마다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면서 '오! 나의 한국친구!'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약간 '오버'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한번 오버해보겠나. 그래서 나도 그때마다 두 팔을 쳐들면서 '지오반니!'라고 크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주위 현지인들이 나를 얼빠진 사람으로 보았을지 모를 일이다.

이탈리아에서 온 지오반니를 다시 만나다

지오반니 가족은 마을 중앙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내가 물었다.

"어디 가려고요?"
"뚤리아라에 가려고."
"그 다음에는요?"
"거기서 비행기 타고 안타나나리보에 갔다가, 이탈리아로 귀국할 거야."

'뚤리아라'라는 도시는 라노히라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도시다. 모잠비크 해협에 위치한 해변의 도시고, 운이 좋으면 수많은 고래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 출발해 안치라베, 피아나란츄아를 거쳐 뚤리아라까지 가는 코스가 마다가스카르의 전통적인 여행코스다.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는 지오반니를 못 볼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고 메일주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면서 헤어졌다.

가이드 조지와 나는 이살로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오늘 갈 곳은 Canyon de Makis, Canyon de Rats 이 두 계곡이다. 이 두 지명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여우원숭이계곡, 생쥐계곡 정도가 될 것이다. 여우원숭이계곡은 여우원숭이가 사는 곳일텐데, 그럼 생쥐계곡에는 수많은 생쥐들이 살고 있다는 의미일까?

"생쥐들이 많기는 한데 주로 밤에 나와요. 아침이랑 낮에는 어딘가에 숨어 있기 때문에 쥐들을 보기 힘들죠."

조지가 말한다. 이살로 국립공원은 마치 마다가스카르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다. 남북으로 길쭉한 것이 생김새도 비슷하다. 공원 안의 지형도 그렇다. 이살로 국립공원 안에는 단단한 암석과 바위로 구성된 건조한 산악지형,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 열대우림을 연상시키는 숲이 고루 뒤섞여 있다.

마다가스카르 전역을 여행하기 힘들다면 그 대신에 이살로 국립공원만이라도 열심히 돌아다녀보는 것은 어떨까. 이 안에는 많은 여우원숭이와 카멜레온, 도마뱀, 희귀한 울음소리를 가진 새를 비롯해서 많은 야생동물들이 있다. 지금은 겨울이자 건기이지만 여름이 되면 더욱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여우원숭이를 구경하는 수많은 외국인들

 이살로 국립공원, 악어바위
 이살로 국립공원, 악어바위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이살로 국립공원, 해골바위
 이살로 국립공원, 해골바위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계곡으로 들어갔다. 커다랗게 늘어선 암석 사이의 길로 들어가면 그곳이 우리가 향할 계곡이다. 조지가 말했다.

"라노히라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아뇨, 무슨 뜻인데요?"

'라노'는 물이란 뜻이고, '히라'는 여우원숭이를 지칭하는 이 지역의 부족언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라노히라'는 '여우원숭이의 물'이 된다. 조지의 나이는 32세. 이미 결혼해서 딸 둘을 데리고 있는 가장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아이들을 많이 낳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3-4명은 기본이고 많게는 5-6명까지도 낳는다고 한다. 내가 말했다.

"아이들을 더 낳을 계획이에요?"
"아뇨. 둘만으로도 힘들어요. 3명 이상이 되면 아이들 키우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여러가지로 어려운 점이 있어서요."

어딜 가나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부담이 따르는 모양이다. 조지는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이드다. 다른 현지인들에 비해서 수입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그런 조지가 돈 때문에 아이들 키우기 힘들다는 말을 할 정도면, 일반 현지인들의 고충은 어느 정도일까?

이 계곡에도 역시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있다. 어제 트레킹코스에서 만났던 여행자들의 상당수를 오늘 이곳에서 다시 보고 있다. 이곳에도 여우원숭이들이 있지만, 어제 보았던 놈들보다 그 숫자가 훨씬 적다. 게다가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제대로 구경하기도 힘들다. 10여명의 외국인들이 이 주위에 모여서 여우원숭이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어떤 사람은 망원경으로 보고 있고, 어떤 사람은 망원렌즈가 붙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또 어떤 사람은 캠코더를 들고 열심히 촬영중이다. 나도 사진을 찍으려고 해보았지만 너무 높다. 저놈들은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내 카메라에 붙어 있는 줌기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난 그냥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여우원숭이들을 올려다 보았다. 목이 뻣뻣해질 때까지.

여우원숭이계곡에는 여우원숭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이곳에 몰려 있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더 많다. 7, 8월은 마다가스카르의 겨울이자 성수기다. 그러니만큼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있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생쥐계곡도 마찬가지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 처럼 생쥐계곡에도 생쥐는 없다. 이 계곡 가는 길 도중에 작은 물줄기가 위에서 떨어지는 곳이 있다. 예전에 이 지역에 살던 부족의 추장이 주로 목욕했던 곳이다.

지금은 마치 샤워장의 물처럼 적은 양의 물이 흘러내리고 있지만, 우기에는 이 물이 커다란 폭포로 변한다고 한다. 우리는 생쥐계곡에 앉아서 빵과 삶은 계란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하늘은 맑지만, 깊은 계곡 사이에 있기 때문인지 해가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흐르는 물줄기 때문에 그다지 덥지도 않다.

오늘은 이살로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2일 동안 트레킹한 것만으로 이살로 국립공원을 제대로 여행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나는 단지 이 넓은 공원의 남쪽 일부만을 가이드와 함께 걸었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2일간의 트레킹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온갖 기암괴석들이 늘어선 산악지대, 그 한가운데에서 솟아나던 차가운 물줄기, 나뭇가지사이를 뛰어다니던 여우원숭이들, 나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던 축축한 열대우림, 새벽에 커다랗게 울어대던 까마귀들의 소리까지.

방갈로에서 만난 미국인 데이비드, 리

 이 사이로 들어가면 생쥐계곡이 나온다
 이 사이로 들어가면 생쥐계곡이 나온다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이살로 국립공원의 외곽
 이살로 국립공원의 외곽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다시 마을로 돌아온 나는 조지에게 그동안의 가이드 비용을 지불했다. 2일간의 가이드 비용은 총 9만 아리아리, 2일간의 공원입장료는 3만7000아리아리다. 합쳐서 약 13만 아리아리, 우리 돈으로 대충 6만5천원에 해당하는 비용이다.

조지와 헤어진 나는 가게에서 파파야 한 개, 파인애플 한 개를 사서 방갈로로 돌아왔다. 방갈로 호텔 한쪽에는 텐트가 하나 설치되어 있다. 오늘 아침에는 없었는데 웬 텐트? 씻고나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파파야와 파인애플을 썰어서 먹고 있는데 젊은 외국인 남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테이블에 놓인 내 화장지를 보더니 나에게 영어로 말했다.

"한국에서 왔어?"

어떻게 알았을까. 그 남자는 다시 내 화장지를 보더니 거기에 써진 단어를 한국말로 읽는다. '여행용티슈'. 내가 말했다.

"어? 한국어 읽을 줄 알아?"
"응, 한국어를 1년 동안 공부한 적 있거든."

남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여자의 이름은 리.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이고 둘은 연인 사이다. 데이비드는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데이비드와 리는 오늘 이곳에 도착해서 한쪽에 텐트를 설치했다고 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텐트생활을 한다고. 내가 말했다.

"텐트에서 자면 춥지 않아?"
"괜찮아. 아주 좋은 침낭이 있거든."

우리는 함께 파인애플과 파파야를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이들은 안타나나리보에서만 호텔에서 머물고 나머지 여행지에서는 계속 텐트생활을 고집하고 있다. 둘이 함께 6주 동안 한국을 여행한 적도 있다. 설악산과 경주가 특히 좋았다고 한다. 한국어를 1년간 공부했지만 사용할 기회가 없어서 점점 잊어버리고 있단다. 나는 그에게 한국말을 몇 마디 붙여 보았지만 그는 시쳇말로 버벅거린다. 내가 영어를 하면서 버벅거리듯이.

함께 과일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데이비드와 리는 저녁 약속이 있다면서 마을로 향했다. 데이비드는 웃으면서 나에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을 했다. 이 머나먼 곳에 와서 미국인한테 한국말을 듣게 되다니. 나는 맥가이버칼과 화장지를 가지고 방갈로로 들어오면서 혼자서 한참동안 웃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에는 별이 가득 박혀 있다.

 미국에서 온 여행자, 데이비드와 리
 미국에서 온 여행자, 데이비드와 리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배낭여행과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저서로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