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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생 제군은 내게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철학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즉 다만 흉내 내기 위해서 사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유(思惟)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

그리스도가 한번은 인간의 삶에 대한 매우 중요한 발언을 하셨을 때 말씀하시기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다. 백합화 한 송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그게 별것이 아닐지 모르나, 그것을 놓고·생각해 보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서 값진 것을 찾아 낼 수 있다. 거기에 자연과학도 생물학도 예술도 문학도 시(詩)도 사상도 종교도 인생의 진미도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그가 과학자도 되고 발명가도 되며, 문인도 시인도, 그리고 겸비한 신앙인도 용감한 봉사자도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앙리 파브르는 곤충의 세계를 살펴보고 그 생각을 정리한 끝에 위대한 학문을 대성시켰을 뿐 아니라 그 배후에 작용하는 창조주의 놀라운 솜씨를 발견하고 경이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어느 스페인 사람은 자기 국민성의 약점을 말하느라고 이런 표현을 했다. "영국인은 걸으면서 생각하고 프랑스인은 생각하고 나서 뛴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은 뛰고 나서 생각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우리는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보니 쓴 웃음이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사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 사색은 번민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흐트러진 생각이요 정신의 소모, 낭비이지만, 사색은 삶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이다.
 요즘 사람들은 사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 사색은 번민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흐트러진 생각이요 정신의 소모, 낭비이지만, 사색은 삶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이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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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인이 자기네 문화와 그 장래를 걱정하면서 하는 말이 "껌을 사서 씹는 것보다 책을 사는 일에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으면 미국은 결코 문명한 국가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책으로 사색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껌으로 인생을 생각한다"고 했다. 지나친 낙천주의가 인생을 부피의 세계에 머물러 있게 할 뿐, 깊이 있는 문화를 창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염려한 이야기인 듯하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고, 우리 젊은이들을 보고, 우리 문화 현상을 보고 그것들이 대체로 너무 감각적이요, 피상적이요, 즉흥적이 아닌가 염려하게 된다.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안고 고민한다거나 투쟁한다거나 안타까워하는 일이 너무도 빈곤하지 않나 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젊은이들의 진학 경향이 주로 간판 따기, 출세하기, 그리고 안이한 성공이나 소시민적인 행복을 얻으려는 요령 찾기 따위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실력을 기른다, 품성을 도야한다, 인격을 함양한다 하는 면에는 너무도 초라한 모습만이 나타나지 않는가 싶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아도 신앙 문제니 인생 문제니 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대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의식이 내면화하지 못할 때 그 인생은 늘 술에 술 탄 맛, 물에 물 탄 맛일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문제 해결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를 문제로 알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문제 해결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깊이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성급하게 익어버린 과실은 제대로 맛이 들지 않는 법이다. 보다 깊은 차원의 문제의식을 거쳐야 비로소 내용이 충실한 인생의 열매가 익을 수 있고 알찬 문화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사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 사색은 번민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흐트러진 생각이요 정신의 소모, 낭비이지만, 사색은 삶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이다. 착잡하고 혼란한 세계를 해치고 그 밑에 흐르는 영원한 '참'에 접하려는 탐구요 창의요 수도적 노력이다. 사색이 빈곤한 사람에겐 화제가 없다. 저급한 농담이나 고집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값진 인생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자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하늘은 높아만 간다. 그렇게 무덥던 폭염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시나브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이 좋은 계절에 깊은 사색으로 자신의 삶을 더욱 그윽하게 가꾸어야 하겠다. 화단에 심은 소국(小菊)이 몽실몽실 꽃망울을 만들었다. 곧 망울 터트릴 기세이다.


태그:#사색,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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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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