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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원숭이들이 오고있다.
ⓒ 김준희
여우원숭이가 오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긴 꼬리를 세우고, 연신 킁킁거리면서 네 발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는 이살로 국립공원의 야영장인데, 어떻게 여우원숭이들이 여기까지 왔을까?

"가끔씩 여우원숭이들이 이곳으로 내려올 때가 있어요."

야영장으로 내려온 여우원숭이들

가이드 조지가 말했다. 먹을 것을 찾아서 내려온 것일까?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여우원숭이들에게 다가갔다. 이놈들은 함께 숲의 바닥을 헤집는가 하면,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나무에서 나무로 뛰어다닌다. 워낙 속도가 빠른 데다가 움직임을 예측할 수가 없어서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 여우원숭이들이 사진을 찍도록 포즈를 취해주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으라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여우원숭이들을 제대로 찍으려면 성능 좋은 카메라와 망원렌즈가 필수적일 것 같다.

망원렌즈는커녕 성능 좋은 카메라조차 갖고 있지 못한 나는 그냥 열심히 싸구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수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영장류 중에서 가장 희귀한 동물, 여우원숭이를 난생 처음 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들을 '여우원숭이'라고 부를까?

이들은 여우같은 얼굴 생김새에 원숭이의 몸을 가지고 있다. 눈이 크고 코가 길다. 주로 나무를 타고 다니면서 열매와 나뭇잎을 먹는다. 대나무를 먹는 여우원숭이도 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수십 종의 여우원숭이가 있다. 어떤 종은 야행성이고 어떤 종은 야행성이 아니다. 어떤 종은 크고 어떤 종은 생쥐만큼 작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은 그 중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영어로는 이들을 'Lemur'라고 부른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Maki'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에 이 여우원숭이들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그 애니메이션에 주로 나오는 여우원숭이의 종은 'Ring Tailed Lemur', 'Red Front-Head Brown Lemur'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들도 그 두 종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두 종이 함께 어울려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 종은 같이 어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조지의 말에 의하면 서로 종이 다른 여우원숭이들은 경계를 명확하게 한단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럴만하면 싸우는 경우도 많다.

오랫동안 마다가스카르에서 살아온 여우원숭이

▲ 여우원숭이, Red Front-Head Brown Lemur
ⓒ 김준희

▲ Red Front-Head Brown Lemur
ⓒ 김준희
마다가스카르에는 언제부터 여우원숭이가 있었을까?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에서 떨어져나온 것은 대략 1억 년 전이다. 그 당시에는 지구상에 영장류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다가스카르가 아프리카에서 떨어져나올 즈음에, 여우원숭이의 조상뻘 되는 어떤 동물들이 함께 마다가스카르로 넘어왔을 것이다. 아니면 마다가스카르가 분리된 초반에, 그러니까 모잠비크 해협이 지금처럼 넓어지기 전에, 여우원숭이의 조상들이 바다를 건너왔을 가능성도 있다. 어떻게? 헤엄을 치거나 아니면 바다에 뜬 부유물을 타고 이 섬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마다가스카르에는 대형육식포유류가 거의 없다. 바꿔 말하자면 여우원숭이들의 낙원이나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위협할만한 육식동물들이 없고, 먹을거리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 도착한 여우원숭이의 조상들은 아마도 이 넓은 섬의 전역으로 퍼져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형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의 이야기다. 인간이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마다가스카르에 퍼져 있는 수많은 열대우림과 대나무숲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숲이 사라지면서 그곳에 살던 여우원숭이도 함께 사라져갔다. 서식지가 없어지면서 생존경쟁에서 뒤진 여우원숭이들이 멸종되어 버린 것이다. 아마도 십여종의 여우원숭이가 멸종했을 것이다.

멸종의 길을 걸었던 여우원숭이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큰 놈들이었다. 현재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여우원숭이 중에서 가장 커다란 것은 인드리원숭이다. 마다가스카르의 북동쪽 숲에서만 살고 있는 종이다. 멸종의 패턴으로 보았을 때, 멸종의 다음 타자가 될 가능성이 많은 종이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조지에게 물었다.

"여우원숭이들이 사람을 공격할 때도 있나요?"
"아뇨. 그런 일은 없어요."

여우원숭이들은 야영장 근처를 뛰어다니다가 멀리 사라져갔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면서, 가급적 가까이 다가가서 뭔가 소통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놈들은 나하고 소통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이 숲 속에 들어온 침입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조지와 나는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이살로에는 세 가지 종의 여우원숭이가 있다. 나는 그 중에서 두 종을 본 것이다. 또 다른 한 종은 'Verox Sifaka'라는 종이다. 이것도 오늘 볼 수 있을까?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망할 것 같지는 않다. 이살로 국립공원은 트레킹에 적당한 장소이지, 여우원숭이를 보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이렇게 많은 여우원숭이를 본 것만 해도 행운이었을지 모른다.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뜨겁다. 겨울인데도 이렇게 더울 정도면, 한여름에는 얼마나 더울까.

멸종의 위기에 처한 여우원숭이들

▲ 여우원숭이, Ring Tailed Lemur
ⓒ 김준희
▲ 여우원숭이, Sifaka
ⓒ 김준희

트레킹 코스에는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인솔하는 가이드들이 있다. 여행자들은 걷다가 마주치면 서로 웃으면서 인사한다. 역시 프랑스에서 온 여행자들이 많고 미국에서 온 여행자도 있고 호주에서 온 친구도 있다. 한 가이드는 날 바라보더니 "바오 바오?"라고 말하고는 웃으면서 지나갔다. 난 그 말을 듣고 나서 "바보 바보"라고 한 줄 알았다.

"조지, 그 말이 무슨 뜻이에요?"
"영어로 'What's new?'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나는 속으로 'Nothing new'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여우원숭이를 보기 위해서 이 먼 곳에 와서 서성이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여우원숭이들은 거의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은 원래 개체수가 적은 데다가 번식률도 낮다.

아니 대부분의 포유류는 상대적으로 번식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성적으로 성숙해지는 데 필요한 기간이 길고, 암컷의 임신기간도 길다. 게다가 많은 경우에 새끼를 한 번에 한 마리씩만 낳고, 그나마도 일정 기간 동안 어미가 젖을 줘야 한다. 그리고 포유류는 멀리 이동하는 것을 싫어한다. 포유류는 멀리 이동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많은 음식과 많은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온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한다. 파충류나 곤충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포유류는 '번식'이라는 면에 있어서 나름대로 약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인간이 바로 그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다.

여우원숭이들을 괴롭히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들의 서식지인 숲이 광범위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다가스카르의 현지인들은 대부분 숯을 사용한다. 가스가 비싼 데다가 그나마도 보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숯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숯을 마련하기 위해서 커다란 나무들을 통째로 베어 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집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대나무도 함께 베어 간다. 여우원숭이들의 서식지인 숲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숲이 사라져 버리면 여우원숭이들은 어디에서 살까? 동물원에서 살까?

그래도 지금은 여우원숭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다가스카르의 전역에 많은 국립공원을 세워두었다. 이살로 국립공원, 라노마파나 국립공원, 안다시베 국립공원 등이 바로 그런 곳들이다.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에 가면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를 볼 수 있고, 안다시베 국립공원에 가면 인드리원숭이를 볼 수 있다. 두 종 모두 덩치가 큰 종이고, 둘 다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는 종이다.

그 주위에 사는 현지인들은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와서 나무를 베어 간다고 한다. 그들의 살림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우원숭이 서식지를 보호하자니 현지인들이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숲의 나무들을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베어버리면 여우원숭이들이 타격을 받는다. 이거야말로 딜레마다.

조지와 나는 숲을 빠져나왔다.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면서 우리는 바위투성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피싱 내추럴 가는 길에는 햇살을 막을 만한 그늘도 없고 나무도 없다. 피싱 내추럴은 이 지역 한가운데에 뚫려 있는 차가운 물줄기다. 그곳에 가면 이 더위도 함께 식힐 수 있을 것 같다.

▲ 피싱 내추럴, Piscine Naturelle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했습니다.


태그:#여우원숭이, #마다가스카르, #이살로,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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