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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늦게('뒤늦게'의 경상도 사투리) 노부부(?)가 상사병에 걸렸다. 외손자를 보고 난 후 영감은 안중에도 없는지 심심하면 딸네 집에 가서 "여기 청준데요, 어디 나갈 때 불 단속 문단속 잘하고요…" 이게 끝이다. 아무리 짜증 나는 일이 있다가도 외손자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환해진다.

어떤 시인이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고 하더니 아내의 외손자 사랑이 그렇다. 외손자를 본 후 영감은 안중에도 없는 듯 외손자가 보고 싶어 상사병에 걸린 사람 같다. 그런 아내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불평도, 싫은 소리도 못하는 나도 같을 병일까?

누가 그랬지. 손자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행복이라고…, 그 황혼의 사랑이 끝나면 인생이 시들어 버리는 거라고….'

외손자를 보기 전에 앉기만 하면 손자 자랑하는 선배선생님을 보면 '무슨 소린가?'하고 무덤덤했는데, 우리 부부도 그 병에 걸렸나 보다. 하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으면 이상하지. 이제 18개월 된 놈이 리듬을 붙여 "할매∼, 할매∼" 할 때나 '할아버지'를 못해 "하하"라는 별명까지 지어 준 놈이 왜 귀엽지 않겠는가?

자다가 깜깜한데 할아버지 옆에 슬그머니 와서 누워 뒹굴다 몸에 부딪히면 '비켜'하고, 또 뒹굴고 하다 잠든 모습을 지켜보면 고 귀여운 모습을 사랑스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겠는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이 노래를 배우면서 '코끼리 아저씨'가 안 되니까, "코끼이 코코코"다. 리듬은 익혀 코끼리 아저씨가 되는데 혀가 안 돌아가서 생글거리며 "코끼이 코코코…"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부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이 녀석! 어금니가 나기 시작하더니 잇몸이 근질근질한지 손이고 어깨고 닥치는 대로 깨문다. 한 번씩 깨물려 고함을 지르면서도 그게 밉지 않으니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시라도 좀 배워 놓았더라면 사랑을 노래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랑 시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하긴 버스 안이나 공원 같은 데서 별로 잘 생기지도 못한 손자를 사랑스러워 못 견뎌하는 어른들을 보면 '참 별로다' 했던 게 엊그젠데, 사랑에 눈이 멀면 못난 것도 예쁘게 보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그래서 말인데 40년 가까이 아이들과 살다가 어느 날 정년퇴임이라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난 후 한참 동안 우울증 비슷한 걸 겪었다. 교육운동을 한다고 파면됐다 복직해 퇴직금을 받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한테 전화가 뜸해 섭섭한 마음 때문일까?

몇 달이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하교하는 학생들을 보고 알게 됐다. 정년퇴임을 한 학교가 집 근처에 있기에 어제까지 지지고 볶고 하던 아이들이 남이 됐다. 3학년만 맡아 수업했기에 학생들을 만나도 웃으며 인사할 아이들도 별로 없다. 그제사 깨닫기를 내가 정을 붙여 사랑하고 미워할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퇴임 후 내 우울증과 같은 증세가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동료들이나 퇴직금을 못 받은 섭섭함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내를 보면 그걸 확인할 수 있다. 몇 달 만에 한 번씩 오는 딸 아이. 영감 할마이 내외가 별 할 일 없이 조용히 편히 살다가 외손자를 데리고 오면 정신없이 바빠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러나 아내는 그게 싫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손자가 오기 며칠 전부터 반찬을 뭘 먹일까? 간식을 뭘 해주면 좋을까? 걱정하며 시장에 나가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이며 반찬준비에 정신이 없다.

뇌수술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 아내의 건강관리는 평소 지나치다 싶을 정돈데 외손자가 오면 딴 사람이 된다. 자기 몸 생각은커녕 그렇게 잠까지 설쳐가면서 손자를 위해 뭔가 해 주는 게 즐겁다는 거다.

사랑! 이 환장할 사랑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힘이다. 뭔가에 미쳐야 사는 인간! 이제 돌이켜 보면 나는 왜 전교조를 한다고 미움받으며 악다구니 치듯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교육을 상품이라며 교사는 공급자고 학생은 수요자라고 한다. 정말 사제지간에 사랑이라는 걸 때 내 버리고 봉급만큼 가르치고 공납금 낸 만큼 배우는 교실이 되면 교육이 잘될까? 시장판에서 교육을 하면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할까?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아무리 못생기고 똑똑하지 못해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요, 귀엽고 사랑스럽다.

교사들의 자질이 없다고 교원평가를 한다고 엄포를 놓는 교육 관료님들! 교원 평가할 생각에 앞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여부부터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왜 개발하지 않으시는지…?

사랑은 감정이 메마른 늙은이에게도 상사병에 걸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모든 것을 믿으며 견디며…. 다 맞다, 그런데 그보다 사랑은 산다는 것, 그 자체다. 사람의 맘속에 있는 사랑이 시들어진다는 것은 삶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유 포트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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