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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월 전 많은 신문에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하시던 두 간호사 수녀님이 가방 한 개씩 들고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홀연히 본국으로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분들을 잠깐이나마 가까이서 뵌 나는 두 분의 고귀한 삶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우리 부부가 난생처음 소록도(전남 고흥군 녹동면 소록리, 공중에서 보면 사슴같이 생겼다고 해서 소록도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에 발을 디딘 건 아들이 공중보건의로 그 곳을 자원했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꺼리는 낙도 중 하나인 소록도를 지원했을 때 우리 부부는 대견하면서도 부모로서 걱정이 앞섰다. 우선 거주지인 서울에서 너무 멀고(고속버스, 배로 약 7시간 반) 아들 내외가 신혼이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직장 때문에 함께 갈 수 없어서 우리 부부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 도구만을 싣고 따라갔다. 그리고 서울을 들락날락하며 1년을 지냈다.

소록도는 녹동항에서 약 600m, 배로 약 5~6분 거리지만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약 700명 넘는 환자-거의 비전염성 음성환자로 평균연령 74세-들이 사는 병사지대와 병원직원과 가족 약 250여명이 사는 직원지대로 나눠져 있었다.

오래된 소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울창한 원시림이 내뿜는 진한 나무향기와 해초들의 상큼한 내음이 어우러져 황홀할 정도다. 간간이 숲길에서 마주치는 사슴들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된장독도 뒤지고 바닷물도 마시곤 했다. 은빛 사슴 두 마리가 긴 꼬리를 우아하게 흔들며 달빛 속을 배회하기도 하고…. 이런 천연 그대로의 무공해 자연 속엔 환자들의 아픈 세월이 그대로 녹아있다.

소록도에 대한 기억

91년 전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강점기 총독부령(1916. 5월 소록도자혜의원으로 개원)에 의해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곳에 감금되어 인간공동체 삶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그 후 갱생원에서 1960년 지금의 국립소록도병원이 되었다.

지금은 한센병이 3종 법정전염병(결핵, 성병)으로 유전병이 아닌 나균감염에 의한 만성피부질환이며 치유 가능한 병으로 알려졌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았었다. 객지에 나가 사는 '정상인' 자식들과도 남남으로 살아가며 사망 후 화장할 때도(환자는 모두 화장한다 함) 거의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후유증으로 암, 백혈병, 정신병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손, 발, 얼굴 등이 온전치 못해도 마음만은 지극히 순박하고 마치 천사들과 같다고 아들이 말해주었다.

예전에 환자 자녀들을 미감아보육원으로 격리수용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눈과 눈물로만 상봉하던 애끓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한 수탄장(愁嘆場)에서는 자녀들이 바람을 등지고 섰는데 혹시 아이들이 전염될까 봐 그랬다고 한다.

정성들여 잘 다듬어 가꾼 나무가 아름다운 중앙공원 입구엔 해방 일주일 후 비인간적인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환자들이 자치권을 요구하며 데모를 벌이다 84명이 학살당했던 것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 있다. 정관수술실, 감금실 등 깊은 생채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던 혼란스러웠던 때 오스트리아출신 20대의 젊은 수녀 두 분이 소록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마리안(2005년 당시 71세)과 마가렛(당시 70세) 수녀였다.

마리안, 마가렛 수녀는 왜 소록도에 왔나

마리안은 1959년, 마가렛은 1962년에 소록도에 정착했다. 45년 전 한센병 환자 6000여 명(아이들 200명 포함)의 너무도 참혹한 모습을 보고 그들은 장갑을 끼지 않고 직접 약을 발라주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치료에 전념했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국에 막대한 의약품, 영양제와 분유(영양실 조아를 위한)를 지원받으며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기꺼이 도맡았다.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수술도 해주고 영아원 운영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다. 두 수녀분이 소록도에 정착하는 동안 본국에서 꼬박꼬박 부쳐준 생활비까지도 환자 간호에 썼다고 한다.

환자들에게 더 많이 봉사하기 위해 그들은 급기야 수녀복을 벗고 간호사로서 극진히 그들을 돌봐주었다. 정부에서 뒤늦게 그분들의 선행을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는데, 두 수녀분들이 상을 피해 다녀 할 수 없이 정부관계자가 소록도까지 와서 시상을 했다고 한다.

소록도에 간지 얼마 안 되어 우리 부부는 아들과 함께 점심초대를 받았다. 지은 지 50년도 더 된 낡았지만 깨끗하게 치워진 집 미닫이문 대문에 들어서니 두 분이 반갑게 환히 웃으시며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하고 맞아주셨다.

우리네 시골 할머니들의 인자한 모습 그대로였다. 현관입구엔 바닷가에서 주운 예쁜 조개껍데기들이 수북했다. 마리안은 몸집이 크고 통통한 편이었는데 대장암에 걸려 3번이나 수술하러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투병 중이었으나 유머가 넘치는 인자한 분이었다. 마가렛은 날씬하고 자그마한 몸매에 밝고 소녀 같은 미소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푸근함이 있었다.

그들은 조촐하나 맛깔스런 전, 나물, 생선 등을 내놓았고 우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남편이 호박전 하나를 먹자, 마가렛이 "하나만 먹으면 정 없대요" 해서 우린 크게 웃으며 두 개씩 먹었다. 후식으로 나온 달지 않은, 손수 만드신 파운드케이크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고향이 어디십니까?"라고 물으니 오스트리아 어느 지역인지를 물은 것이었는데 두 분은 한목소리로 "원래 고향은 하늘나라이고 현세의 고향은 소록도죠" 하셨다. 그들은 그곳의 터줏대감으로 주민들과 완전한 일치를 이룬 것 같았다. 주민들은 "할매"(할머니의 전라도, 경상도 방언)라고 하며 살갑게 대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곳에서 살 것이며 다만 더 늙어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짐이 될 때 훨훨 떠날 거란 말씀도 하셨다.

죽을 때까지 소록도에 머물겠다고 했는데...

그 뒤에도 한번 비 오는 날 식사초대를 받고 집에 놀러 갔는데, 낡고 오래된 지붕에서 비가 새 양동이를 갖다놓고 물받이를 하고 계셨다. 그래도 그분들은 마냥 만족하고 행복해 보였다. 뱃길을 오가며 마주치기도 했는데 언제나 밝고 맑게 웃고 계셨다.

그들은 섬의 한 일부분이요, 빛나는 그들이 결코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고 오직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사는 너무 큰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람에게서 맑은 향기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몸소 보여주었다.

그런데, 아들이 근무한 지 6개월쯤 된 늦가을 날 학회일로 서울에 출장 와있던 사이에 두 분은 아들을 포함한 섬의 몇 분에게 간단한 쪽지 남기고 훌훌 떠나버렸다.

고향 소록도에 뼈를 묻을 거란 강한 인상을 받았던 아들과 우리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아들은 정신적 지주였던 그분들을 생각하며 많이 서운해 했고 우리 부부도 많이 섭섭했다. 마치 혈육을 잃은 것처럼 가슴속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분들이 온 인생을 바쳐 사랑한 소록도에서 그렇게 홀연히 떠나간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우리 모두가 그분들이 평화롭게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도록 편안하게 배려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분들의 헌신과 봉사, 사랑으로 우리는 갚을 길 없는 은혜를 입었는데도 그들을 짐스럽게 여기진 않았을까? 어쨌든 그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분들 떠나고 두 달 뒤 한 일간지 기자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까지 취재차 찾아갔다. 기자가 내놓은 소록도 아이들, 주민들의 편지 한 뭉치를 받은 두 분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왜 떠나셨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40년 동안 함께 일한 간호원장 은퇴를 보며 더는 우리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죠"라며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두 분 할머니, 사랑합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3평 남짓한 방문 앞에 한국어로 쓰여 있으며 "지금도 우리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하셨다고 한다.

곧(오는 10월) 소록도와 녹동항을 잇는 연륙교가 완공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4월엔 다리 상판이 무너져 사망, 중상자가 몇 명이 있었는데 대다수 주민들은 육지와의 소통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천형의 땅이었던 '그들만의 천국'에서 이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니까.

우리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보듬어야 하리라. 두 분 외국인 수녀님, 소록도 할매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 분 할머니! 어디에 계시든지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당신들의 사랑과 희생은 향기로운 밑거름이 되어 아름답게 살아 있을 것입니다. 마리안, 마가렛 할머니! 우리는 당신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태그:#소록도, #마리안, #마가렛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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