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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과 바람으로 농사짓는 백성, 나카노 요이치
ⓒ 장영미

일본의 생활협동조합 '코프 야마나시'는 '콩(밭) 트러스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97년, 미국에서 유전자변형 콩 생산이 인가되면서부터다. 일본의 연간 콩 소비량은 500만 톤. 이 중 약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미국 콩이 전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일본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안전한 자국산 콩의 요구에서 출발한 '콩(밭) 트러스트'는 일정 수의 소비자들이 농지를 일정액에 계약해 생산을 의뢰하는 방식이다. 유전자 변형이 되지 않은 자국산 콩을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재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에 따라 배당량이 달라진다.

코프 야마나시는 1999년 200구좌(1구좌 2천엔, 약 3kg)를 6명의 생산자에 의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회원 수를 조금씩 늘려, 현재는 같은 가격에 300구좌, 생산자는 9명으로 늘었다. 전에는 대두로만 배당하던 것을 올해부터는 간장과 일본 된장을 섞어 배당하는 등의 5코스를 만들었다.

한 해는 밭으로, 다음 해는 논으로

초창기부터 참여해 다른 생산자들을 불러모은 나카노 요이치(59)씨의 명함엔 '백성(百姓) 나카노 요이치'라고 적혀 있다. 우리말에도 있는 농민, 혹은 일반 국민이란 뜻의 말이다. 그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그는 농가 출신도 아니고 농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도쿄에서 10년간 샐러리맨으로 살았다. 그리고 27년 전 자급자족 생활을 동경하던 아내와 함께 귀농했다.

나카노씨는 주로 쌀(2헥타르)과 야채(6000㎡)를 생산한다. 그 외 4000~5000㎡ 정도에 보리와 콩(대두)을 심어 키우고 있다. 논과 밭은 전부 남의 소유다.

쌀과 야채를 주로 재배하는 그가 어째서 콩(대두)을 재배하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쌀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서다. 그리고 유전자변형작물에 반대하는 상징적 성격 때문이다.

"콩도 벼 만큼이나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논둑에 많이 심었다. 그런데 이런 콩과 벼를 한 땅에 번갈아 심으면 잡초가 덜 자란다. 논과 밭에 자라는 잡초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카노씨는 밭과 논을 겸작하는 이런 농법을 그가 참가하는 연구회의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콩(밭) 트러스트의 생산자로 끌어들였다.

'식물의 배도 80%만 채워라'

▲ 나카노 씨의 논. 밀식하지 않는 게 나카노 식 농법.
ⓒ 장영미
나카노씨는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농사를 짓는데 비료는 계분과 콩비지, 쌀겨가 전부다. 나머지는 햇빛과 바람, 물 등 자연에 맡긴다. 그 외에 그가 지키는 철칙은 '밀식하지 않는 것'과 '비료를 많이 주지 않는 것'이다.

"밀식하지 않는 것은 다닥다닥 붙여 심지 않는다는 뜻이다. 햇빛과 바람이 잘 들고 잘 통해야 해충이 적고 농산물이 맛있고 튼튼하다. 비료를 많이 주지 않는 이유 또한 해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비료를 통해 흡수한 질소 즉 단백질 성분이 광합성에 쓰이지 못하고 식물 속에 남아 있으면 거기에 남은 단백질을 먹기 위해 해충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카노씨는 콩의 경우 26cm 간격으로 2알 씩 심는다고 했다.

과영양은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각종 질병을 초래한다. '배를 80% 정도만 채우는 식사법'은 농사에도 유용하게 적용된다.

신뢰의 힘은 인증 마크에 앞선다

나카노씨의 농법은 말하자면 유기농법이다. 그러나 그가 재배한 유기농산물은 유기농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렵게 유기농사를 지어 훨씬 좋은 값에 팔 수 있는 유기농이란 이름을 왜 포기한 걸까?

한마디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카노씨는 오래 전부터 계약재배 및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오랫동안의 거래를 통해 소비자들은 유기농 인증 마크보다 나카노씨를, 그리고 그의 농법을 더 신뢰하게 됐다. 그래서 나카노씨는 매년 많은 서류제출, 번거로운 심사와 비용을 들여 받아야 하는 유기농 인증 마크 없이도 그와 비슷한 가격으로 팔 수가 있다.

그가 소비자와 이런 신뢰관계를 맺게 되기까지는 거의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귀농 후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 이외에 생계를 위해 달걀을 팔았다. 그러나 판로가 마땅치 않았던 터라 직접 달걀을 들고 소비자를 가가호호 방문해 세일즈를 했다. 이 때의 소비자들이 다른 야채와 쌀도 구입하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고 더욱 많은 소비자가 생겨났다."

처음엔 개인 대 개인(개별 생산자 대 개별 소비자)의 관계로 시작해 개인 대 그룹(개별 생산자 대 생협과 같은 소비자 그룹)으로 지금은 그룹 대 그룹(생산자 그룹과 소비자 그룹)의 관계로 발전됐다. 콩(밭) 트러스트야말로 그룹 대 그룹의 대표적 예다.

젊은 후계자를 양성하라

▲ 기계를 천천히 밀며 콩을 심고 있는 나카노씨
ⓒ 장영미
나카노씨가 농사를 짓고 있는 야마나시 현 기타코마(현 호쿠토 시) 지역엔 농사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진지한 자세, 고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생산자들은 연구회를 결성해 연구와 정보교환에 힘쓴다. 그래서 농사에 뜻을 둔 젊은이들도 많이 모여들고 있다.

나카노씨에게 자신의 농사를 대물림 할 생각인지를 물었다.

"교사와 대학생인 두 자식이 있지만 가업으로 물릴 생각은 없다. 기타코마 지역엔 뜻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에 27년간 쌓은 노하우를 이들에게 전수할 것이다."

자신은 아무런 기반 없이 농사를 시작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농사는 경험 축적이 중요한 작업인 만큼 이들은 연구그룹을 통해 노하우를 전수받고 훈련을 받으므로 훨씬 쉬울 것이라고 나카노씨는 말했다.

2006년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농가의 80%는 겸업농가이다. 평일엔 공장이나 서비스업종에 종사하고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것이다. 나카노씨도 신문배달을 한다. 엄격히 말하면 자신도 '겸업농'이라며 웃는 나카노씨. 농업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것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대국 일본의 현실이다.

코프 야마나시가 지난 9년간 콩(밭) 트러스트 운동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관계 덕이다. 무농약, 무화학비료, 비유전자변형, 자국산의 유기농 콩을 어느 백화점, 어느 슈퍼마켓, 어느 시장에서 이렇게 안심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명품 중의 명품, 웰빙 중의 웰빙 콩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콩을 심기 위해 일구어 놓은 밭. 작년에는 벼를 심었던 논이다.
ⓒ 장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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