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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다오 맥주. 칭화대학 내 편의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래도 같다.
ⓒ 김종성
맥주의 나라 하면 독일이 떠오른다. 하지만, 중국도 맥주(삐주)에 있어서만큼은 빠지지 않는 나라다. 중국 전역에서 대략 3천 종의 맥주가 생산되고 있고, 보통 식당에서는 물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맥주를 음료수로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중국 맥주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칭다오 맥주다. 서해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와 마주보고 있는 산둥반도 남쪽의 칭다오에서 이 맥주가 생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역마다 물가 편차가 크지만, 베이징 시내 편의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칭다오 맥주(캔)가 보통 3.7위엔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 듯하다. 베이징에서 생산되는 옌징 맥주와 비교할 때에, 옌징 맥주가 부드러운 편이라면 칭다오 맥주는 좀 강렬한 편인 것 같다.

한국에 비해 값이 싸고 또 맛이 괜찮다고 하여 중국 현지에서 칭다오 맥주 1박스를 여럿이 금방 비우는 한국인들이 많다. 하기는 소주 1박스라면 몰라도 맥주 1박스로는 성이 차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칭다오 맥주가 맛있는 걸까? 넓고 넓은 중국 전역에서 생산되는 3천 종 정도의 맥주 중에서 왜 하필이면 칭다오 맥주가 가장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 걸까?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칭다오 맥주

칭다오 맥주에 취해 중국 땅에서 귀중한 외화를 한없이 소비하기 전에, 한번쯤 칭다오 맥주에 담긴 슬픈 사연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사연을 음미하면서 칭다오 맥주를 마신다면, 잃는 것(외화)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칭다오 맥주는 흔히 독일식 맥주라고 불린다. 맥주의 나라 독일의 제조공법을 본받아 만든 맥주다. 칭다오 맥주가 맛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독일식 공법에 따라 만든 맥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칭다오 맥주는 맛있다.

이게 다인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칭다오 맥주가 맛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될 수는 있어도, 칭다오 맥주가 왜 슬픈 맥주인가를 설명해주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칭다오 맥주가 왜 슬픈 맥주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독일식 공법으로 제조되었다는 점과, 칭다오가 산둥반도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바로 그 두 가지에 힌트가 있다. 그 이야기를 위해 잠시 19세기 후반의 동아시아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한다.

서양열강의 각축장이 된 19세기 후반의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서해.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에, 당시 서해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랴오둥반도였다.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좋은 부동항이 랴오둥반도의 뤼순·다롄에 있어서 러시아가 남하의 전진기지로 노려볼 만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지역이 바로 산뚱반도였다. 랴오둥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이 지역을 점령할 경우, 러시아의 랴오둥반도 점령을 견제할 만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1897년 11월 13일까지는 랴오둥반도나 산둥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열강의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다. 1896년에 체결된 두 차례의 러-일협정 이래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이러한 세력균형을 활용하여 고종이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등의 움직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잠잠하던 서해에 풍파를 일으킨 장본인이 있었다. 바로 맥주의 나라 독일이었다. 1897년 11월 14일에 독일 군대가 산둥반도 자오저우만(교주만)을 전격 점령한 것이다. 다음해인 1898년에 독일은 청나라와 조약을 체결하여 자오저우만을 99년간 조차하기로 하고 이곳에 독일군 동양함대의 기지를 건설했다(하지만 1922년에 중국에 반환).

독일 세력이 산둥반도에 진출한 이 사건은 반도 남쪽의 칭다오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군이 침략한 지 6년만인 1903년에 이 기사의 주제인 칭다오 맥주가 설립되었다. 중국 최초의 맥주 회사였다.

현재 칭다오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칭다오맥주 지분유한공사’의 홈페이지(http://www.tsingtao.com.cn)에 따르면 1903년 8월에 독일인과 영국인이 합작으로 ‘로망맥주 지분유한공사 칭다오 공사’를 설립한 뒤에 독일에서 생산설비와 원재료를 들여와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일의 산둥반도 침략과 칭다오 맥주

▲ 1903년 설립 당시의 칭다오 맥주.
ⓒ 출처 : 칭다오 맥주 홈페이지.
생산 개시 3년만인 1906년에 독일에서 열린 뮌헨국제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 회사는 빨리 성장하였으며 또한 세계적 명성도 얻게 되었다. 이후 이 회사는 중국측에 넘어가 국영 ‘칭다오 맥주회사’(중국측 명칭은 칭다오 삐주창)를 거쳐 오늘날의 ‘칭다오 맥주 지분유한공사’가 되었다. 칭다오 맥주는 이처럼 독일의 산둥반도 침략과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칭다오 맥주는 제국주의침략 시기의 독일이 산뚱반도에 진출한 이후 독일 기업인과 독일 설비와 독일 재료에 의해 만들어진 양질의 제품이기 때문에, ‘독일식 맥주’라는 평가와 함께 중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칭다오 맥주가 맛있는 배경에는 제국주의 독일의 중국침략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칭다오 맥주가 맛있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칭다오 맥주는 슬픈 맥주일 수 있다. 왜냐하면, 칭다오 맥주 설립의 계기인 독일군의 자오저우만 침략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강점하는 데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897년까지 한반도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에 의한 세력균형이 형성되어 있었다. 청일전쟁(1894년)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마관조약(시모노세키조약) 뒤의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지위가 약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뒤에도 조선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이 자오저우만을 침략하면서부터 이러한 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독일이 산둥반도를 침략하자, 러시아가 그에 대한 대응으로 1898년 3월 27일 랴오둥반도의 뤼순·다롄을 점령한 것이다.

러시아가 랴오둥반도을 점령하자 이번에는 영국·청나라·일본 등 국제사회가 반(反)러시아 연대를 결성하여 러시아를 고립시켰다. 그러자 러시아는 이 같은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로젠-니시 협약(1898년 4월 25일)을 맺어 ‘한반도는 일본이 갖고, 만주는 러시아가 갖자’는 데에 합의하게 되었다. 반러시아 국제연대에서 일본을 빼내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확고하게 한반도를 장악하게 된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러일전쟁(1904년)을 도발했고 이후 일본은 조선을 자국의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므로 독일의 자오저우만 침략은 한반도에서의 러-일 세력균형을 깨고 일본이 조선을 단독으로 강점하게 되는 간접적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칭다오 맥주 설립의 계기가 된 독일의 자오저우만 침략은 중국 입장에서는 산둥반도가 독일의 세력권으로 넘어가는 계기였고, 한국 입장에서는 한반도가 일본의 단독 지배권으론 전락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 입장에서도, 칭다오 맥주가 맛있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칭다오 맥주.
ⓒ 김종성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중국 최고의 맥주가 맛있는 데에는 위와 같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침탈을 받아 수난을 겪은 한국과 중국의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그래서 그것은 맛있지만 슬픈 맥주인 것이다. 적어도 한국인과 중국인에게는.

칭다오 맥주에 담긴 슬픈 사연은 칭다오 맥주의 술맛을 떨어뜨리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잔이 입술에 닿는 순간 칭다오 맥주에 담긴 슬픈 과거를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더 그윽하고 깊숙한 칭다오 맥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칭다오 맥주의 맛은 독일식 제조공법에 있는 게 아니라, 서세동점의 슬픈 역사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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