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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속한 인질석방을 위해 미국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1일 오후 광화문 미대사관을 방문한 차성민 피랍자가족모임 대표가 고통스러운 듯 눈물을 참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누나가 돌아오면 2주 정도는 같이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같이 밥 먹은지도 오래됐더라고요. 괜히 미안해지는 거 있죠."

차성민 피랍가족 모임 대표가 11일 늦은 밤 담배를 태우며 함께 있던 몇몇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날 밤 10시 13분 <알 자지라>가 여성 인질 2명 조기석방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외신들은 일제히 관련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조용했던 분당 피랍가족 대책본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직 대책본부에 남아있던 10여명의 취재진들은 차 대표를 찾았다.

차 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에 차분히 답변했지만 타는 속을 어쩔 수 없는지 본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태웠다. 기자들은 차 대표의 옆에서 함께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얼굴은 긴장과 희망이 뒤섞여있었다.

피랍자 가족들이 겪는 괴로움은 비교할 수가 없다. 모두가 힘들다. 그러나 피랍가족 모임에서 가장 궂은 일, 괴로운 일을 앞장 서서 하는 이가 있다.

바로 피랍자 차혜진(31)씨의 동생인 차성민(30)씨다. 비록 20여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악플러에겐 감정 없지만, 누나 인터넷 못하게 하겠다"

차 대표는 "누나가 돌아오면 인터넷부터 못하게 하겠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상처를 받겠냐.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우선이고 억류당해서 받은 충격도 크지만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기사와 악플을 보면 상처를 많이 받을 것이다. 집에 깔린 인터넷 선도 끊고 누나 친구들도 집에 데리고 오라고 할 생각이다."

하지만 차 대표는 "악플러들을 구속해야 한다던가 그런 악감정은 없다"고 말했다. 11일 분당 피랍가족 대책본부에 아프간 피랍자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을 인터넷에 유포해 지난 10일 경찰에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회사원 A씨(21)가 가족들을 방문해 무릎꿇고 사죄했다.

"가족들은 우리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며 돌려보냈다. 사실 아프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되고 협상에 어려움이 생길까 걱정이 됐지만 우리가 그들을 구속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악플 때문에 가족들의 가슴이 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고 배형규 목사 피살 소식이 알려졌을 때였다.

"배형규 목사가 돌아가셨을 때 그것을 공식적으로 연락을 받고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 때 정말 힘들었다. 믿고 기다리자고 달래왔는데 배형규 목사가 돌아가셨다고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막막했다."

차 대표는 유족들과 남은 21명의 가족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피랍가족 대책본부에는 고 배형규 목사의 형인 배신규씨는 가족들을 위로하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11일)은 고 심성민씨의 어머니도 방문해 가족들에게 "힘내라"며 격려했다.

"우리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 못한다. 서로가 힘들어서 얼굴을 제대로 못 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있던 심효민씨(25·고 심성민씨의 동생)을 보니깐 짠하더라."

피랍자 가족들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이들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피랍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UCC. 오늘(11일)까지 3개의 UCC가 공개됐다. 그 중 1번째 UCC는 판도라에서 조회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것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만들고 있다. 물론 감독이 있긴 하지만 연락이 와서 돕고 싶다는 분들이 많다. 중동 전문가로 알려지신 교수님들도 도와주시고…. 여러가지로 고맙다."

혹시 피랍자 가족들이 건강이 위독하다고 알려진 여성 인질 2명에 대해 누구인지 짐작하는 바가 있냐는 질문에는 "알기로는 위독한 병력이 있었던 여성들이 없었다"며 "아마 지병이 아니라 환경적응력이 가장 약한 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한다.

"외신에 기대 않으려 하는데, 그래도 기대걸게 된다"

차 대표는 답변하는 내내 차분했다. 이미 아프간에 상황이 터질 때마다 그에게 쏟아지는 질문 공세가 익숙해진 탓이다. 또 그가 기자 출신인 까닭도 있다. 그는 경기 지역의 지방지에서 일하고 있다.

"정말 기자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만 만약 내가 이런 일을 전혀 모르는 이였다면 몇 번 드잡이했을 지도 모른다. 변화가 없는 상황에 매번 같은 질문만 받는데…. 머리가 아팠다."

그도 피랍 사태 초기에 외신에서 인질 석방 이야기가 흘러나와 취재진들에게 가족들의 입장을 밝힐 때는 정말 기대를 했지만, 이제 큰 희망을 걸진 않는다. 워낙 부정확한데다가 외신마다 전하는 내용이 엇갈려 일희일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 피랍 24일째, 매시간 피가 마르는 가족들로서는 외신보도에 울고 웃는 것에 지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매번 기대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태그:#아프간, #피랍, #탈레반, #차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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