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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에 짐을 실고 달려온 미니버스
ⓒ 김준희
밤새도록 달려온 버스는 새벽 6시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새벽 6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작은 상점을 열고 여자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을의 펌프에서 물을 받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 다닌다. 여기는 무릉다바가 아니다. 도중에 휴식을 위해서 잠시 정차한 마을이다.

버스는 밤새도록 비포장된 산길을 달려왔다. ‘비포장도로라기보다는 한때 포장도로였다’라고 하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한때는 포장도로였지만 이제는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무너진 길이다. 가로등도 없는 그 길을 헤드라이트에만 의지한 채 열심히 달려와서 도착한 곳이 지금의 이 작은 마을이다.

15시간 동안 꼬박 운전만 한 운전사

어제 오후 3시에 출발했으니까 꼬박 15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이 버스의 운전사가 고작 1명이라는 점이다. 운전사를 도와주는 다른 사람도 없다. 운전사는 15시간 동안 조금씩 정차해서 쉬는 것 말고는 별다른 휴식시간을 갖지 않았다. 당연히 잠 한숨 못자고 15시간을 운전한 것이다. 목적지인 무릉다바까지 몇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타나에서 무릉다바까지 18시간이라고 하면 앞으로 3시간이 더 남은 셈이다. 그 3시간 후에 저 운전사는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냥 운전만 해온 것도 아니다. 이 버스의 상태는 속편하게 운전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어젯밤에는 달리던 도중에 차가 멈춰 섰다. 어디가 고장 난 것인지는 모른다.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세워둔 채 운전사는 약 30분가량 차를 정비했다. 게다가 승객들은 도중의 마을에서 내리기도 하고, 도중에 새로 타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지붕에 있는 짐을 풀어서 내리는 사람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타면, 그 사람의 짐도 다시 지붕으로 올려서 묶는다.

이 과정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때마다 운전사는 싫은 기색도 없이 버스 지붕 위로 올라가서 묵묵히 짐을 풀고 다시 묶는다. 중간에 내리는 사람보다는 중간에 타는 사람이 더 많다. 원래 이 버스는 15인승이지만 지금 적어도 약 20명가량이 타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이점에 대해서 승객 중 아무도 항의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4명이 앉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가 탈 경우에는 5명도 넘게 앉는다. 당연히 불편하다. 좁은데다가 워낙 덜컹거리기 때문에 밤에 잠도 안 온다. 나도 지금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이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이 버스 정말, 무릉다바에 가는 거 맞나?

▲ 새벽 6시에 도착한 작은 마을
ⓒ 김준희
▲ 무릉다바 가는 길
ⓒ 김준희
작은 마을에서 잠시 쉬고 나서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해가 떴고, 해의 위치로 보았을 때 이 버스는 지금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달리다가 누군가가 화장실에 갈 일이 있으면, 그냥 차를 세운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도로 옆 수풀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본다.

무릉다바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무릉다바는 해변의 도시다. 이 버스가 무릉다바에 가까워진다면 창밖으로 바다가 보여야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바다는커녕 막막한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 포장도로는 나올 생각을 안 하고 하다못해 도로에는 이정표조차 없다. 이 버스 정말 무릉다바에 가는 버스 맞나?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다시 또 한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의 문을 활짝 열고 모두 밖으로 내렸다. 아까 잠시 쉬어갔던 마을보다 더 큰 마을이지만, 풍경은 비슷하다. 아이건 어른이건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옷이라기보다는 비치타월 같은 것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외지에서 버스가 와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이 버스를 쳐다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구름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따가운 햇살, 하늘을 떠도는 작은 독수리 한 마리.

내가 그렇게 눈에 띄는 존재일까. 황인종 중에서는 나도 까무잡잡한 편인데다가 머리카락도 짧은 반곱슬이다. 조금만 더 까매진다면 이들과 비슷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어제 점심때부터 씻지도 못한데다가 망가진 차창으로 들어오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상태다. 거울을 본다면 마치 탄광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지저분한 몰골일 것이다.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지저분해서 쳐다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도 승객들은 내리고 다시 탄다. 운전사는 사람들을 다 태우고 나서도 무언가 개인적인 볼일을 보고 있다. 시간은 오전 11시. 성질 급한 나는 '빨리 출발안하고 뭐해!'라고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함께 타고 있는 현지인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을을 벗어나자 다시 포장도로가 펼쳐졌다. 무릉다바라고 써진 이정표도 등장했다. 하지만 속도를 내서 달리기는 힘들다. 길이 워낙 구불구불 한데다가 도중에 다시 수차례 마을에 멈춰 선다. 누군가를 내려주고 누군가를 태우고, 그때마다 지붕의 짐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다. 게다가 좁은 다리 한 복판에서 앞서 달리던 버스 한대가 고장 나서 멈춰 섰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냥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애주가의 천국 마다가스카르

결국 오후 3시가 되어서 무릉다바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어제 오후부터 꼬박 24시간이 걸린 것이다. 운전사는 24시간 동안 잠 한숨 못자고 운전 해온 셈이고, 나는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맥주가 먹고 싶었다. 차가운 맥주 한 병을 누가 나에게 건네준다면, 내 배낭을 통째로 넘겨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작은 무릉다바 한복판을 걸었다. 가급적이면 시내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바다에서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정할 생각이다.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바닷가 근처에도 싸고 괜찮은 숙소가 많다고 한다. 걷다보니 오른쪽 골목 멀리 바다가 보인다. 모잠비크해협이다. 저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서 400km를 헤엄쳐 가면 모잠비크에 닿을 수 있다.

▲ 무릉다바의 호텔, 오아시스
ⓒ 김준희
나는 '오아시스'라는 호텔로 들어섰다. 영어를 하는 젊은 남자가 날 맞아주었다.

"방 있어요?"
"어떤 방이요?"
"혼자 쓸만한 작은 방이요."


이 호텔에서 일하는 '시몬'이라는 젊은 친구다. 말이 호텔이지 실제로는 작은 목재건물 여러 개를 넓은 마당에 늘어놓은 곳이다. 한쪽에는 레스토랑도 있고 그곳에서 식사를 주문해 먹을 수도 있다. 시몬은 나한테 작은 방을 보여주었다. 방에는 침대와 화장실이 있고 선풍기도 있다. 침대 위로는 하얀 모기장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시몬이 말한다.

"밤에는 모기가 많아서 꼭 모기장을 치고 자는 게 좋아요."
"이 방은 하룻밤에 얼마에요?"
"15000아리아리요."


15000아리아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7500원 가량이다. 낡은 목재건물이지만 이정도면 싸고 괜찮다. 그래서 난 여기서 묵기로 했다. 짐을 풀어놓고 대충 손만 씻은 후에 호텔에 붙어있는 레스토랑에 앉았다.

"뭐 좀 먹을 수 있어요?"

레스토랑을 지키고 있는 여직원은 나한테 메뉴판을 보여준다. 메뉴판은 온통 프랑스어다. 나는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그래도 '샌드위치'라는 단어는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샌드위치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가격은 합쳐서 5000아리아리. 마다가스카르는 배낭여행자들, 그중에서도 애주가의 천국이다.

여직원은 나에게 우선 맥주 한 병과 커다란 유리컵을 가져다주었다. 맥주는 마다가스카르산 THB(Three Horses Beer), 용량은 650ml다. 나는 차가운 맥주를 유리컵에 가득 따라서 글자그대로 '원샷'을 했다. 그 맥주 한 컵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온 맥주 중에서 가장 시원하고 짜릿한 맛이었다.

▲ 모잠비크해협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태그:#마다가스카르, #무릉다바, #바오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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