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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는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하여 흑산도라고 한다. 흑산도는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이며, 면적은 49.25Km²이며, 울릉도의 크기와 비슷하다. 100개의 섬이 있으며 섬들은 유인도 11개 무인도 89개로 이루어져있고, 인구는 4858명이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서남단으로 92.7Km (동경 125° 25" 북위 34° 41")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 흑산도 관광안내도
ⓒ 이수철
흑산도에 가기 위해서는 목포여객선터미널을 이용해야만 갈 수 있다. 운항 횟수는 하루에 6~7회며, 흑산도까지는 1시간 50분이 소요된다. 자동차를 가져갈 수가 있긴 하지만 비용이 엄청 비싸고 흑산도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목포까지만 자동차를 가져올 경우 목포 여객선터미널 옆 목포시영 간이 주차장을 이용하면 무료다. 그러나 무료이다 보니 빈자리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목포에서 흑산도 가는 여객선 요금과 시간은 변경될 수 있으니 목포여객선터미날(061-243-0116~7)로 사전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 1. 목포여객터미날, 2. 흑산도행 여객선, 3. 서남문대교
ⓒ 이수철
서울에서 새벽 5시 50분에 출발(경부고속도로 천안- 천안 논산간고속도- 호남고속도로 정읍- 남해고속도로 선운산- 목포여객터미날)하여 목포도착 오전 11시 40분경, 일단 매표와 간단한 식사 후 오후 1시 20분 출발하는 흑산도행 남해퀸호 승선, 서남해안다도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노라니 어느 새 비금도 수대선착장에 배가 잠시 머문다. 배는 승객을 승, 하선 후 곧바로 출발하였고,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엄청나게 큰 서남문대교가 멋진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 흑산도 예리항 선착장에서 승, 하선하는 사람들
ⓒ 이수철
여객선은 아늑하며 흔들림이 별로 없었고 지하철을 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약 2시간여 항해 끝에 흑산도 예리항에 입항했다. 배가 입항하니 마중 나온 손님들이 많다. 대부분의 마중 나온 사람들은 호객하기위해 나온 사람들이며 우리도 이분들을 만나 요금이 적정하다싶어 바로 결정하고 짐을 풀었다.

흑산도 여행은 관광버스와 택시로 관광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택시를 이용했다. 아무래도 편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택시를 탔다. 이곳 택시는 서울택시와는 달리 4륜구동 레저용차들이다.

▲ 1. 처녀당, 2. 지석묘군
ⓒ 이수철
예리항을 출발하여 처음 도착한 곳이 지석묘군(支石墓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청동기시대의 지석묘로써 예리항에서 면사무소 방향 우측 중간 지점에 있으며,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1994년 1월 31일 문화재 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님은 운전보다 관광가이드 역할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어서 흑산천주교 성당, 진리해수욕장을 거쳐 '신들의 공원'이라고 푯말이 붙어있는 처녀당, 처녀당은 옛날 풍랑을 만난 어느 소년이 배에서 내려 산에 올라 신당이 있는 소나무위에 앉아 피리를 부니 풍랑이 멈췄다. 그래서 소년은 배를 타려고 내려왔다. 그런데 풍랑은 거세게 다시 일어나 배를 탈수가 없었다. 소년은 또다시 소나무에 올라앉아 피리를 부니 풍랑이 멈추곤 하는 일이 반복되어 어쩔 수 없이 선원들은 소년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신당의 처녀신이 소년의 피리소리에 반하여 소년을 보내지 않았으며, 소년은 피리를 불다 지쳐 죽게 되었고 그를 신당앞에 묻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 상라봉에서 내려다 본 열두고갯길과 예리항 전경
ⓒ 이수철
가히 흑산도 명물이라 일컬을 수 있는 '열두 고갯길' 고개 위 상라봉(227m) 전망대에 서면 예리항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꼬불꼬불 굽이친 열두 고갯길은 마치 뱀이 기어 올라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상라봉 바위틈과 숲 속에는 원추리와 나리꽃 등 온간 식물들이 어우러지고 짙푸른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은 보석처럼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흑산도가 왜 멋있는지 여기 와보면 답이 나온다.

▲ 1.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2. 한반도 지형바위
ⓒ 이수철
흑산도 또 하나의 명물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우리 가요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가요계의 여왕 이 미자가 부른 '흑산도 아가씨' 열두 고갯길을 올라서면 넓은광장이 있다. 열두 고갯길과 예리항이 시원스럽게 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진 이 노래비는 방문객이 노래신청 버튼을 누르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온 산천에 울려 퍼진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를 지나서 조금 가니 우측 암벽아래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바다는 검푸른 색깔로 더욱 짙어 보이고 차가 천천히 움직이니 바위에 구멍이 보인다. 그냥 바위구멍으로 생각했는데 차가 서서히 멈추자 신기할 정도로 또렷한 한반도지형을 꼭 닮은 바위구멍이 되었다.

▲ 흑산도 해안 일주도로
ⓒ 이수철
흑산도 일주도로의 일부분이다 도로건설 때 자연환경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에이치 빔을 이용해서 난간형의 콘크리트도로를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콘크리트 벽에는 특수페인트로 흑산도와 관련된 벽화도 아름답게 그려놓았다. 여기서 조금 더 가다보면 비포장 길이 나오고 작은 포구가 있는 심리마을이 나온다.

심리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후박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반쯤 누워있었는데 더 이상 쓰러지지 않게 콘크리트로 받침대를 만들어 놓았다. 마을은 후박나무 옆 계단을 올라 언덕위에 형성되어 있었고,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이다. 이곳 심리마을에서 국회의원이 배출되었다고 택시기사님은 은근히 자랑한다.

▲ 사리 포구와, 정약전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마을
ⓒ 이수철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흑산도로 유배된 정 약전(정약용의 둘째형)선생이 유배생활 15년 동안 한 곳이다. 손암 정약전은 근해에 있는 물고기와 해산물 등 155종을 채집하여 명칭, 형태, 분포실태 등을 기록한 자산어보를 지었다. 특히 청어와 고등어의 회유와 분포에 관한 기록은 그 당시와 지금에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귀중한 자료다.

사리마을 입구안내판에 정약전의 유적지안내표시가 있다. 우측사진 위 파란지붕이 천주교 공소이고, 그 옆 초가지붕이 정약전의 유적지 사촌서당(복성재)이다. 사촌서당(복성재)은 손암 정약전이 이곳에 머물면서 개설한 이곳 최초의 서당이다. 손암 정약전은 당시 지식층에서 널리 알려진 서학을 통해 천주교인이 되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샛개해수욕장 이다. 샛개해수욕장은 모래가 아주 가늘고 희며, 아담한 해수욕장으로 송림과 야영장이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면암 최익현 유허비, 흑산면 천촌리에 있는 손바닥 바위에 최익현 선생의 친필 "기봉강산 홍무일월"의 8자(비 우측 위쪽에 희미하게 보인다)가 새겨져 있다.

▲ 면암 최익현 유허비
ⓒ 이수철
면암 최익현은 1868년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발행에 따르는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 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하여 관직을 삭탈 당했으며, 이후 일본과의 통상조약과 단발령에 격렬하게 반대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의병운동의 전개를 촉구하며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았다. 순창에서 약 4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웠으나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다.

▲ 예리 어선 선착장과 열심히 안내해주신 기사님.
ⓒ 이수철
지루하지 않게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기사님 덕분에 재미나고 즐겁게 흑산도 일주를 마치게 되었다. 심리마을과 사리마을을 가기 전에는 비포장 길이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흔들어 관광이라고 하고, 굽이굽이 휘어지는 비포장 길에서는 비틀어 관광이라면서 불편함을 재미로 바꿔주었고,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자작시라면서 흑산도의 절경에 매료되게 흑산도 예찬시도 한 수 읊어 주었으며, 일주를 마칠 즘에는 자작곡 노래까지 불러주어 흑산도 관광을 흡족하게 채워주었다.

흑산도 일주를 마치고 예리항 주변을 구경하면서 흑산도의 명물로 널리 알려진 홍어와 묵은 지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보니 어느 듯 까만 밤이 닦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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