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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생이 강의평가를 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고 있다.
ⓒ 김한내

[# 장면 1] "쓴다고 뭐가 달라져? 귀찮아 죽겠네"

연희 "야~ 홈페이지에 성적 떴다. 빨리 확인해보자."
은애 "정말? 그런데 강의평가 해야 볼 수 있잖아. 귀찮아 죽겠네. 어차피 내가 뭐라고 쓴다고 달라질 거 없잖아? 그냥 대충 써야겠다."
연희 "진짜 매번 성적확인 전에 강의평가 하는 거 귀찮어. 그런데 나 이번에 들은 현대기업경영 진짜 별로랬잖아. 강의평가에 솔직하게 다 쓰고 싶은데 나중에 교수님한테 걸릴까봐 못하겠어."
은애 "하긴. 익명이라 해도 찝찝하지. 로그인하고 하는 거니깐. 그냥 좋게좋게 쓰고 성적이나 확인하자."

[# 장면 2] "강의평가, 진짜 평가해도 되는 건가요?"

"강의 평가를 하려고 하는데 익명인지 아닌지 의심되네요. 익명인거 믿고 솔직하게 썼다가 괜히 불이익 당할 것 같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익명이라고 하지만 믿을 수 있어야지요. 강의평가 정말 익명 맞나요?"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질문이다.
로그인 하고 평가하는데 맘놓고 점수 줄 수 있나

이제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강의평가는 학기말 성적 확인을 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강의평가를 검색하면 "강의평가 정말 익명이냐"는 질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생들의 강의평가에 대한 궁금증 혹은 의문점 1순위는 '익명성'이다.

동아인제대학교 한 교수는 "강의평가를 누가 했는지 교수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실제로 동료교수들 중 강의평가를 안 좋게 한 학생들을 찾아내려고 시도한 경우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불만은 해결되지 않는다. 수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4학년 유선아 학생(21)은 "나중에 교수님께 걸릴까봐 솔직하게 강의평가하기 힘들다"며 "다시 안 들을 교양과목이라면 몰라도 전공교수 수업은 같은 교수님께 계속 들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익명성에 의심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의 평가와 성적 확인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한 학생(26)은 "아무리 익명이라 해도, 로그인을 하고 강의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평가를 했는지 마음만 먹으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웹상에서 이루어지는 강의평가의 익명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학생들이 강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익명성에 대한 '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하면 2시간... '어랏, 교수님~ 질문이 이상해요!'

▲ 강의평가하는 학생이 강의평가가 익명성이 보장되는지 의심하고 있다.
ⓒ 조광민
일단 '의무사항'이라서 로그인을 했다. 어차피 할 것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강의평가 문항을 들여다보자.

강의계획서의 내용은 충실하였는가?
교재와 학습 자료는 적절하였는가?
결강은 없었으며 결강 시 보강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강의평가의 '뻔한' 문항들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약학과 4학년 박영민 학생(21)은 "실험과목 평가에 교재가 적절하였느냐는 질문은 잘 맞지 않다"며 "실험기구들이 잘 갖추어졌는지, 실험시간이 잘 배분되었는지, 실험이 실용적이었는지를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4학년 한 학생(26)은 "7~8명에 가까운 교수들을 상대로 20문항에 가까운 강의평가를 해야 하니 제대로 하려면 2시간 이상 걸린다"며 "강의평가 문항이 중복적이고 불필요한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한 학생(22)은 "강의평가를 안 하면 성적확인을 못하니 귀찮아도 어쩔 수 없이 하긴 한다"며 "가끔씩은 한 줄로 죽 찍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의평가 문항 자체에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제대로 평가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기 일쑤다. 학과와 과목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강의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것.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 한 학생(21)은 "강의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학생이 많아 교수님께 전달되는 강의평가 자료가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의무적인 강의평가제도가 아닌 자발적 참여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적은 수의 학생들만 참여할지라도 오히려 학생들의 의견을 정확히 교수님께 전달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강의평가는 어떻게 쓰일까

2시간을 들여 꼼꼼히 강의평가까지 마쳤다. 그런데 이렇게 평가하면 도대체 뭐가 바뀔까?

학생들은 강의평가에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매학기 같은 교재, 같은 강의, 심지어 농담까지 변하지 않는 교수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

숙명여자대학교 약학과 4학년 박영민(21) 학생은 "몇 년 동안 강의 내용과 강의 방식이 그대로인 교수들이 많다"며 "강의평가가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지 않아 대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각과는 달리 강의평가는 아주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비정규직 교수와 강사들에게만….

정규환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부위원장은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 대부분은 강의평가를 피드백제도로 인식하기보다 성적확인을 위해 거쳐야 하는 귀찮은 절차로 여겨 몰아찍기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며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심드렁한 태도로 또는 막연한 감으로 답을 찍은 결과는 대학 교원들 가운데 오로지 비정규직 교수의 강의박탈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교수들에게 강의평가를 반영하도록 하는 학교도 없지 않다. 대경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바탕으로 교수들 사이의 석차와 4.5만점의 평점평균이 적힌 '강의평가 성적표'를 매학기 받는다.

이 학교 유아교육과 이주하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분발의 계기가 된다"며 "내 강의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고 어떤 부분에서 설득력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 다음 학기 강의 준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교에서 강의평가가 비정규직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순천향대학교 한 정교수는 "정교수의 경우 강의평가 결과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지만 강사의 경우에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밝혔다. 강남대학교 한 강사는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강사들의 다음 학기 재임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수업 다 듣고 강의평가? 후배들 좋은 일 했네

▲ 대학생들은 자신의 강의평가가 실제로 반영될지 의문스러워 한다. 강의를 듣고 있는 대학생들(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렇듯 강의평가가 몇 년 동안 전공수업을 함께 하는 교수들에게는 별 영향이 없으니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청주교대 3학년 한 학생(24)은 학생들이 강의평가에 소홀한 다른 이유로 "강의평가가 학기말에 이루어지므로 실제로 강의를 평가한 학생들은 효과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균관대학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6년부터 중간고사 후에 강의 '중간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교무팀 이성균씨는 "기말강의평가는 그 수업 학생들이 혜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적기에 강좌에 대한 피드백을 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학기말 강의 평가와 달리 중간평가는 점수화된 객관식 항목이 아니라 8개 서술형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실질적인 수업의 개선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4학년 한 학생(24)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왜 두 번씩이나 강의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귀찮아 한다"고 말했다. 신문방송학과 3학년 한 학생(22)은 "중간평가가 그냥 스리슬쩍 생겨 학생들에게 도입 취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며 "중간평가의 목적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수가 강의평가 내용을 보는 것에 그치면 적극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며 "평가의 내용에 대해 30분 정도라도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질적인 강의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강의평가내용을 학생들에게 공개하면 교수들도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학생들도 성실히 강의평가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2005년 12월 <동아일보>에 인하대학교 수학학과 교수들이 수학학과 강의평가 자료를 다음 학기부터 책자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인하대 수학학과장 이익권 교수는 "학과회의에서 한두 사람이 언급했을 뿐 안건으로 올라간 적도 없다"며 "보도 이후 이 부분에 대한 논의 자체가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강의평가 자료를 공개하는 방안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온 것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3학년 심민희 학생은 "강의평가 자료를 공개하면 다음 학기 수강과목을 선택하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고려대학교 3학년 정치외교학과 한 학생(21)은 "강의평가 자료가 공개되면 교수들이 자극을 받아 더욱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할 것"이며 "학생들 역시 자신들의 강의평가가 실제로 반영된다는 것을 알면 성의없이 평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한내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강의평가, #익명성, #교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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