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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베 평화캠프'가 지난 7월 5일부터 12박 13일 동안 진행됐다. 이 평화캠프는 한국과 베트남 청년들이 베트남 중부의 시골 마을에 들어가 함께 일하고, 함께 자면서 양국의 어두웠던 과거를 돌아보며 진정한 평화를 향한 실천을 모색하는 자리다. 다음 기사는 한-베 평화캠프에 직접 참여해 이들의 활동을 담은 기획취재단 김효성 기자가 베트남에서 보내온 두번째 글이다. <편집자주>
▲ 유이탄 마을 사람들과 작별하며 눈물을 흘리는 캠프 참가자들
ⓒ 레탄동

베트남 중부 유이탄 마을. 주민들이 논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요즘도 물소를 이용해서 밭을 가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지난 7월 14일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 때아닌 눈물바다가 됐다. 마을 길가 버스에 올라탄 젊은이 수십 명이 창밖을 바라보며 훌쩍이고 있었고, 아주머니, 아저씨에서 할머니,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와 떠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송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마을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학살자의 나라' 청년들을 눈물로 배웅하다

버스에 탄 이들은 '나와우리 2007 한국-베트남 평화캠프'에 참가한 한국과 베트남 청년 32명. 마을에 머문 6일 동안 정이 든 탓에 막상 떠나는 순간이 되자 울음이 터지고 만 것이다.

비쩍 마른 팔을 흔드는 아저씨와 싱글벙글 웃으시는 아주머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할머니. 그 분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어떤 친구는 펑펑 울었고, 다른 친구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창밖의 광경을 보며, 문득 40년 전에 돌아가신 분들도 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청년들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40년 전 유이탄 마을에선 '남조선군'이라 불리는 군대가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뒤 먼 한국 땅에서 14명의 한국인 청년들이 호치민·하노이 등 대도시에 사는 18명의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평화의 길을 모색하고자, 이 마을을 찾은 것이다.

사실 닷새 전만 해도 이런 광경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참가자들이 펑펑 눈물을 쏟았다는 말을 듣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한국인 참가자들은 '민간인 학살 지역이라는데 한국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을까?' '학살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하며 염려했고, 베트남 친구들은 '처음 오는 중부 시골 마을인데 사람들이 잘 대해줄까?'하며 고민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적 이질감도 있어 청년들 모두가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청년들·아저씨·아줌마들과 눈빛으로, 몸짓으로 대화하기 시작하면서 이내 걱정했던 부분은 사라졌다. 마음을 나누고 의미를 함께 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끄러움과 슬픔의 교차... 어색한 침묵

▲ 한국 참가자가 유이탄 마을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다.
ⓒ 레탄동
지난 7월 9일 햇살 눈 부신 그날. 유이탄 마을에 처음 도착한 양국 청년들은 위령비부터 찾았다. 남부 호치민에서 중부 유이탄 마을까지 버스에 몸을 싣고 스무 시간을 달려온 터였다.

도중에 '미라이 학살'의 흔적을 전시해놓은 '선미학살 박물관'과 중부 지방 위령비 몇 곳을 방문하고, 틈틈이 워크숍과 공연 준비까지 해왔다. 유이탄 마을의 위령비를 마주한 참가자들은 묵묵히 설명을 들었다.

"이것이 유이탄 마을 위령비입니다. 비석에는 '1968년 1월 19일에 남조선 군대가 27명의 무고한 인민을 살해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위령비가 세워진 자리 주위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아이·노인들이었습니다."

한국친구들의 얼굴에는 순간 부끄러움이 번져났다. 그동안 방문한 위령비가 모두 세 곳, 이번이 벌써 네 번째지만, 아직도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는다. 우리네 아버지, 삼촌이 이역만리 베트남까지 와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한국인 참가자 한석(20·충남대 생활과학계열)씨는 어렵게 입을 뗐다.

"한국에서는 몰랐던 사실을 직접 베트남에 와서 위령비를 참배하면서야 알게 되었어요.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반성하는 마음이 들어요."

베트남 친구들에게도 진한 슬픔이 묻어났다. 대부분 대도시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중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이야기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으며 한국 군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군에 의해 자행된 노근리 민간인 학살을 알았을 때 분개했듯, 베트남 친구들도 감정을 쉽사리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위령비를 마주할 때마다, 어색한 기류가 맴도는 양국 청년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더해진다. 한국 친구들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베트남 친구들은 충격과 슬픔이 서로 더 멀게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소리 없이 떠나간 영혼을 위로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아서 함께 향을 사르고 경건하게 참배한다.

땡볕에 땀방울 뒤섞으며 몸으로 배운 평화

베트남 중부 총 5개 성에서 발생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은 80여건, 피해자수는 9000여명에 이른다. 이것 또한 비공식적인 집계이므로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군은 마을 하나를 모조리 쓸어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혹은 불시에 마을로 진입해 수십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유이탄 마을은 후자에 속한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변을 당한 다른 마을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만, 슬픔의 크기가 어디 사람 숫자에 달라질까.

'한-베 평화캠프' 참가자들의 주 임무는 유이탄 마을 어귀에서 위령비로 가는 길 닦기. 진정으로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위령비로 통하는 좁은 논두렁길을 자동차가 다닐 만큼 넓히는 일이다.

▲ 캠프 참가자들이 위령비로 가는 길을 넓히고 있다.
ⓒ 레탄동
다음날(10일) 아침. 32명의 참가자가 각기 삽이며 괭이며 연장을 하나씩 들고 논두렁길에 올라섰다. 유이탄 마을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도 미리 나와서 작업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뜨거운 햇볕을 조금이나마 피하기 위해 베트남 전통 삿갓인 '논'을 쓰고 햇빛 차단제도 모자라, 긴소매 상의, 긴 바지에 마스크까지 썼다.

하지만 유이탄의 날씨는 한국은 물론, 남부 호치민과도 차원이 달랐다. 뜨겁다 못해 피부를 파고들 듯 따가운 햇볕,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는 말을 모두가 실감했다. 논두렁에 괭이를 몇 번 휘두르다가 이내 내팽개치고 물통으로 달려가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

"난생 처음 해외에 나왔는데, 우리 꼭 이렇게 해야 해요?"

나이어린 한 친구의 투정 섞인 말투에 잠시나마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한동안 열심히 일한 뒤 시원한 그늘에 쉬면서 서서히 완성돼 가는 길을 지켜보는 보람도 컸다. 쉬는 와중에도 한국 친구들은 베트남 전통 노래 '쫑 껌'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한국 친구들은 베트남 친구들에게 연신 가사며 음색을 물어본다.

"띤 방 꼬 까이 쫑 껌~"

노래의 뜻은 모르지만, 손뼉까지 치면서 부르는 모습이 좀 전 힘겨운 모습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전날 위령비 앞에서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어느새 절친한 친구가 되어 함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에게 민간인 학살은 무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함께 일하며 쉬고 노래 부르면서 참가자들은 진정한 평화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 베트남 참가자들이 고엽제 피해자 가족의 집을 짓는데 일손을 보태고 있다.
ⓒ 레탄동
사흘째부터는 고엽제 피해자 가족의 집 짓는 일을 했다. 참가자들 모두가 이제는 숙련된 노동자가 되어 열심히 구덩이를 파고, 자갈을 날랐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보람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뜨거운 햇볕에 벌겋게 익은 팔과 다리에는 왠지 힘이 넘쳤다.

유이탄 마을 청년들이 사온 사탕수수 음료를 나눠 마시며 갈증을 식힐 때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쉬는 동안에는 손짓 발짓으로 어렵게 대화하기도 하고, 서로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였다. 함께 흘리는 땀 앞에는 국경도 갈등도 없었다. 한국 친구 중 하나는 베트남 친구에게 베트남어를 배우기도 했다. 한국학과를 다니는 그 베트남 친구는 어눌한 한국말로 베트남어를 설명했다.

"화이 디 더오."
"아니아, 음 '파이 디 더우'가 맞아."

듣고 있던 참가자들 서로 어눌한 외국어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질 때쯤, 집짓는 일을 모두 마쳤다. 이틀간의 고된 노동이 끝난 것이다.

후련하고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아쉽다는 쯔엉 홍 린(22·호치민 인문사회대학교 한국어학과)씨. "길이나 집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해서 아쉬워요. 우리가 좀 더 많이 일하면 이분들에게도 더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래도 집주인 아저씨는 이들의 작은 도움에 '깜언 니에우(정말 고맙습니다)'라며 감사를 표시했다.

▲ 고엽제 피해 가족 집짓기 기초공사에 캠프 참가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 레탄동
"탄 텃 씬로이 비엣남, 미안해요 베트남"

방문 닷새째인 7월 13일 저녁은 유이탄 마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때문에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유이탄 인민위원회에서 마을회관 앞에 무대를 설치하고 '한-베 교류의 밤'을 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저녁 8시가 되자 마을회관 앞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 친구들은 한국에서부터 공연 준비를 틈틈이 해왔다. 그중에서도 '양주 별산대 탈춤'은 단연 백미였다. 연습을 많이 하긴 했지만,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친구들은 모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공연 순서가 두 번째여서 마음이 더욱 떨렸다.

첫번째 순서인 유이탄 마을 청년들의 노래가 끝나고 이제 한국 친구들이 무대에 오를 차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전통 의상을 입고 씩씩하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장구 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금강산이 좋단 말을 풍편에 넌즛 듣고~"

'양주 별산대 탈춤'은 며칠 연습한다고 해서 완벽히 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니어서 실수도 많았지만, 한국 친구들 모두 흥겨운 마음으로 춤을 췄다. 다행히 유이탄 마을 사람들 모두가 흥겨운 가락을 즐기며 공연을 관람했다. 마을 어린이들은 '얼쑤' 하는 추임새를 따라하며 까르르 웃었다. 난생처음 보는 한국의 전통춤이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마냥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졌다.

▲ '한-베 교류의 밤'에서 한국 참가자들이 양주 별산대 전통 춤을 선보이고 있다.
ⓒ 레탄동
많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오는 한국 친구들의 얼굴에는 후련함과 뿌듯함이 묻어났다. 이어진 순서는 베트남 친구들이 준비한 아오자이 패션쇼. 장엄한 음악과 함께 시작된 패션쇼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친구들 모두 선남선녀였다. 이번에는 한국 친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과 베트남 친구들, 유이탄 마을 청년들이 준비한 공연이 차례로 끝나고, 마지막으로 한국 친구들이 준비한 '사죄의 노래' 순서. 박치음 교수가 2000년에 민간인 학살을 진정으로 반성하는 마음이 담아 만든 '미안해요 베트남'이라는 노래였다. 가사에 절절히 배인 슬픔과 사죄의 마음이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한국 친구들 마음을 아프게 했다.

"탄 텃 씬로이 비엣남(진심으로 미안합니다. 베트남), 어둠 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자욱마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런 흔적마다."

노래를 마치고 조용히 내려오는 한국 친구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공연을 끝냈다는 후련함도 컸다. 베트남 친구들도 마을 청년들도 후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일이면 떠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와 옹기종기 모여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헤치며 유이탄 마을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지나갔다.

14일 유이탄 마을 사람들과의 슬픈 이별을 뒤로하고 냐짱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참가자들은 호치민으로 향했다. 한국팀 팀장을 맡은 이신혜(24·중앙대학교 대학원)씨는 호치민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번 캠프의 소감을 조용히 건넸다.

"우리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작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이렇게 잠시 동안이나마 학살이 일어났던 마을을 찾아간다면, 베트남 사람들도 우리의 진심을 이해하고 우리의 노력을 기억할 것입니다. 평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위령비를 찾고, 길을 만들고, 생존자 할머니의 손을 잡아 드리는 것이 바로 평화가 아닐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단 기사입니다.


태그:#유이탄, #한베 평화캠프, #나와우리, #2007 한-베 평화캠프,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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