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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하루 전 7월 중순. 밤 10시가 다 되어 갈 무렵 받은 전화 한 통은 나를 충격으로 빠져 들게 했다. 인사말도 없이 거두절미하고 한 말은 이랬다.

“선생님, 저 00엄마입니다. 오늘 **엄마로부터 우리 00가 학교에서 고집을 많이 부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엄마인 제게 먼저 해주셨으면 안 될까요? 너무 속이 상해서 전화합니다.”

“네? 저는 **엄마를 만나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요? 오늘 00가 고집을 부린 건 사실이에요. 그 동안 그런 적이 많았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이제 겨우 1학년이잖아요. 담임으로서 충분히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런 일을 엄마인 제가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게 속이 상합니다.”

“이상하네요. 내가 아이들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학교에도 엄마들을 오시게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이 전해졌지요? 20년이 넘은 교직 생활에서 이런 전화를 받기는 처음입니다. 저도 황당합니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 걸려온 전화는 나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물론이고 마음이 상해서 속까지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일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가닥을 잡을 수 없는데 전화를 건 엄마는 이야기를 끝낼 분위기가 아닌 듯 했다.

“00엄마, 저는 아직까지 이렇게 학부모의 항의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우황청심환이라도 먹어야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전화를 끊겠습니다. 상황을 알아보고 내일 이야기 합시다.”

솔직히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히고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그날 밤 내내 거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의 잘잘못을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해 본 적도 없고 학급 일로 학부모를 나오게 하는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알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늦은 밤이었지만 그런 말을 전했다는 **엄마에게 확인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00가 수업 시간에 고집을 부리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기에 그 말을 00엄마에게 했다는 것이었다. 00는 평소에도 자기가 하기 싫어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일에는 시간을 보내고 놀거나 엎드려서 잘 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가도 다 하지 않으면 다른 놀이에 참여시키지 않거나 늦게 하교를 시키면서 하게 하면 끝내는 버릇이 있는 아이였다.

그 고집을 부리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어가고 있었기에 굳이 학부모에게 알리지 않고도 고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터였다. 커다란 문제점이 아닌 이상 필요 이상으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여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욱이 00엄마는 아기까지 출산하여 벅차게 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늘 00를 달래며 학교 생활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해 온 내 마음을 몰라주어 오히려 서운했다.

날마다 마지막까지 점심을 먹는 아이, 밥 수저에 반찬을 올려주며 마지막까지 기다려주느라 다른 아이들 하교 지도까지 힘들 만큼 정성을 쏟은 시간이 100일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잘 적응하고 있는 아이가 대견해서 날마다 칭찬까지 해주며 친해졌는데 그런 전화를 받고 보니 교직에 대한 회한까지 밀려왔다.

전날 밤 속이 상해서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한 데다 아침마저 입맛이 없어 먹지 못하고 출근하여 여름방학식을 하면서도 내 마음은 한없이 우울했다. 아직도 나의 정성이 부족하니 그런 전화를 받는 거라고 치부하면서도 억울하고 서글퍼져서 아이들과 차분하고 따뜻하게 헤어지지 못했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껴안아 주며 1학기 107일 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다고, 방학 동안 건강하게 지내다 오라고 말하면서도 내 마음엔 먹구름이 일렁였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자괴감이 나를 억누르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고 난 빈 교실을 혼자서 청소를 하려고 하니 다른 날보다 유난히 쓰레기가 많아 보였다. 의기소침해서 기운조차 없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책상과 의자를 다 옮기고 교실을 쓸고 있으니 00엄마가 아기를 업은 채 음료수를 들고 찾아 왔다.

“선생님, 죄송해요.” 눈가엔 물기까지 달고서…….
“아기까지 업고 힘들게 오셨네요. 전화로 하셔도 될 텐데.”
“**엄마가 우리 아이가 공부 시간 내내 고집을 부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는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20분 쯤 고집 부리다가 나중에는 다 했어요. 연필이 없다거나 지우개가 없다며 고집을 부리곤 하지요. 오랜 시간 고집을 부렸다면 당연히 연락해야지요. 요즈음 00이가 얼마나 잘 하는데요. 밥도 잘 먹고 숙제도 잘 해오고 발표도 열심히 해요. 특히 아이 심성이 착하고 정직해요. 그림 그릴 때 늦게 시작하는 것은 2학기 때는 작은 종이를 주어서 종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보렵니다. 어젯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제 정성이 부족함을 탓했습니다. 그러나 2학년 때는 그렇게 전화하시지 마세요. 충분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밤 늦은 시각에 무턱대고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일단 학교와 담임을 믿으십시오. ”

“죄송해요. 저도 어젯밤에 울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저도 자식을 키워 본 부모 입장에서 00엄마 마음 잘 이해합니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미주알고주알 자기 입장에서 본 대로 말한 걸 가지고 부모님들이 곧이곧대로 듣고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겨우 1학년 아이들 말만 듣고 학교와 선생님을 믿지 못하면 서로 힘듭니다.”

그러면서도 00엄마는 다시 눈물을 훔쳤다. 나는 내 제자뻘인 00엄마를 위로하며 달랬다. 가져온 음료수를 아이와 엄마에게 권하며 하던 청소를 거의 다 끝내는 동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청소를 해야 했다. 학교 시정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겨우 1학년짜리 꼬마가 자기 친구가 수업 시간에 고집을 좀 피운 걸 가지고 집에 가서 20분 동안 고집 피운 게 아니라 하루 종일 고집을 피웠다고 말한 걸 듣고 그 엄마는 서로 친한 사이라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달해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특히 1학년 수준의 아이들은 사실과 상상 속에서 사는 우주인과 사람의 중간 단계라는 걸 알아야 함에도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말은 100% 믿기 마련이다. 본의 아닌 거짓말도 매우 잘 하는 단계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걸 배웠다. 학부모와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에게 먼저 상담을 해보기도 전에 미리 판단을 하여 고민을 하게 했으니 내 잘못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새삼스럽게 학부모님들과 대화 창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심지어 청소를 도와 드리고 싶다는 학부모님의 발걸음까지 막아 버린 상태이니 말이다.

2학기에는 하루에 한 명씩이라도 개인별 알림장을 활용하여 아이의 문제점이나 충고할 점을 교환하도록 해야겠다. 전체 알림장만으로는 개별적인 도움을 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명의 나의 천사들은 여름방학식날 선생님이 왜 그렇게 힘이 없었는지 모르리라. 그 사이에 내 품에 안기지도 않고 빠져나간 몇 명의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작은 손가락을 걸며 약속하던 00의 멘트가 나의 귓전을 맴돈다.
“00아, 방학 동안 동생을 키우는 엄마가 힘드시니까 심부름도 잘 하고 네 스스로 공부할 수 있지? 2학기에는 필통도 잘 가지고 다니고 더 잘 하자, 응? 손가락 약속!”
“네, 선생님. 2학기를 기대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00엄마의 눈물과 더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나의 약속으로 오해의 산을 넘어 이해와 신뢰의 강에서 다시 만났으니 2학기의 도약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은 교육을 성공시키기 위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함을 생각하니 혼자 끙끙 앓지 않고 직접 담임에게 전화를 해서 오해를 푼 00엄마가 새삼 고맙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거나 말의 일부만 들어서 혼자 상상하여 생각하니 늘 조심해야 함을 명심해야겠다.

자식을 잘 기르고자 하는 부모 마음이나 제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선생의 마음은 결코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진심이 통해야 한다. 잘못 되었거나 오해를 받을 때는 내 정성이 부족했음을 생각하고 돌이켜 볼 일이다. 그래서 교직은 늘 새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만나는 아이들은 늘 새로운 아이들이니 늘 하던 대로가 아니라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선생이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한교닷컴, 에세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1학년, #대화,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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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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