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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4일 12·12, 5·17, 5·18 사건과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12·12, 5·17, 5·18 사건 담당위원 박창일 신부가 5·17 계엄확대조치 전 신군부 세력의 대응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광주 시내 중심가인 금남로 한복판에서 옷을 벗긴 남자 연행자들을 원산폭격 같은 기합을 주거나 진압봉으로 구타한 적이 있다. 교범에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연행자들이 도망 못 가도록 옷을 벗겼다."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80년 5월 광주에서 비상계엄 반대시위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입을 통해 과격진압을 사례를 모았다. 계엄군의 발포명령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조사했다. 외곽봉쇄 과정에서 드러난 민간인 살상의 현장상황에 대해서도 진실을 가렸다.

이들은 24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7년 전 참혹하기 짝이 없던 반민주의 시대로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과거사건을 자성하는 차원에서 밝힌 당시 상황을 그대로 옮긴다.

"총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 대검으로 찌르기도"
광주시내의 시위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시민들을 진압봉이나 총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했다. 대검으로 찌르기도 했다. 옷을 벗기는 등 과격진압을 자행했다. 훈련이나 명령에는 없었지만 흥분된 상태에서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한 점은 인정했다.

7공수여단 집단 면담 2006. 5. 17

"연행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옷을 벗겼다"
80년 5월 18일 당시 광주민중항쟁 자료사진에는 공수부대원들이 시위하던 사람을 상하의를 모두 벗기고 팬티만 입힌 채 연행하는 모습의 사진이 있다. 또 광주 시내의 중심가인 금남로 한복판에서 옷을 벗긴 남자 연행자들을 '원산폭격'과 같은 기합을 시키거나 진압봉으로 구타한 적도 있다. 길을 가던 많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이 같은 비인간적인 행위는 연행자들에게는 모멸감을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광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공수부대에 저항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현장에 투입된 공수부대 출신들은 이 같은 행위는 교범에는 없었지만 연행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옷을 벗겼다고 진술했다.
박○○(11여단 62대대 하사) 2006. 12. 12

"시위주동자와 돌진하는 차량에 사격을 가했다"
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시위대에서 기갑학교 소속 장갑차 한 대에 화염병을 던지자, 불이 붙은 이 장갑차는 뒤로 후진했다. 동시에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했다. 저지선이 붕괴된 계엄군은 도청 분수대 뒤와 도로 주변으로 피신했으며, 그 과정에서 11공수여단 63대대 8지역대 소속 무전병 권용운 일병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장갑차가 잠시 멈춘 다음 분수대를 돌아나갈 때 장갑차에 사격을 했고, 뒤따라오던 버스가 돌진하자 10여명의 공수부대원이 버스에 사격을 가해 운전사가 사망하면서 분수대를 들이받고 멈췄다. 이어 뒤따라오던 차량과 시위대가 도청 쪽으로 몰려들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분수대 앞에 공수부대원들의 집중사격이 이루어졌다. 시위대가 뒤로 피신하기 시작하였고, 공수부대원들은 도청 광장을 장악했다.

금남로에 산발적으로 시위대가 나오면 공수부대원들이 조준사격을 했다. 심지어는 부상자 등을 부축하기 위해 나오던 시위대에게도 사격을 가했다. 11공수여단 61대대, 63대대는 상무관 쪽으로, 62대대는 수협 쪽으로, 7공수여단 35대대는 도청 쪽으로 집결했다. 이렇게 부대를 정비한 후 주변 건물로 저격 요원들을 배치하여, 시위 주동자나 돌진하는 차량에 사격을 가했다. 계엄군 측 장갑차도 금남로 쪽과 노동청 쪽으로 배치되어 일부 사격했다.
9전차대대 장갑중대 김○○ 상병 2006. 9.19

"광주관광호텔 옥상에서 4인1조로 주동자 조준사격"
시위 군중에 대한 계엄군의 공격양상을 살펴보면, 몇몇은 위협사격을 했으나 몇몇은 조준 사격했다. 전남도청 앞 발포가 있은 뒤 공수부대원 일부에게 실탄이 지급됐다. 그중 일부는 주변 건물 옥상에서 저격병의 임무를 수행했다. 광주관광호텔 옥상에 4명이 1조가 되어 올라갔으며 사수의 지시에 따라 조준경이 달린 총으로 주동자나 총기를 휴대한 시위대를 조준 사격했다.
11여단 62연대 일병 한○○

공수부대의 과격진압 일지
국군기무사 존안된 '5·18 사태일지' 기록을 보니

국군기무사가 지난 27년간 보관하고 있던 '공수부대의 과격진압 일지'가 처음 공개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24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기무사가 지난 27년간 보관하고 있던 '5·18 사태 일지'를 공개했다.

다음은 군 당국 스스로 인정한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반인권적 시위진압 사례를 날짜별로 정리한 것이다.

5월 18일 21:00
조선대학 입구 철로변에서 공수부대 군인이 지나가는 학생 11명을 총개머리판으로 구타. 1시간 20여분 정도.

5월 19일 10:52
조선대로 군 트럭(1대)에 학생들을 연행 갑바를 씌워 일어나면 발로 차고 감

5월 19일 11:00
무장군인 소위가 시민들 돌에 의해 얼굴에 부상. 시민들 보이면 무차별 구타 중

5월 19일 11:00
금남로 통은 공수부대들이 곤봉으로 때리므로 시민들 없음

5월 19일 11:15
일반 시민 15명 정도가 충금지하상가 쪽 및 각처에서 팬티만 입고 관광호텔 앞에 있으며 등 어깨 다리는 곤봉 및 워커발 태죽이 보이며 빨갛게 되었음

5월 19일 11:25
동구청 민원홀에 학생으로 보이는 2명을 잡아 구청 변소 앞에서 공수부대 7~8명이 곤봉 및 구둣발로 때리고 있음

5월 19일 11:34
동구청 앞 도로에 머리 길고 젊은 사람은 잡혀오고 있으며, 허리띠를 빼서 차창 옆에 던지고, 엎드리게 하고 두 손으로 곤봉을 잡아 전부 때리고 있고, 뒹굴게 하여 동작이 늦으면 곤봉으로 무차별 때림. 일차 5분여 동안 기압이 끝나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손은 허리에 올려 두 손을 잡게 하여 잘못하면 구둣발로 등을 차고 있으며 일부 시민은 머리에서 피를 흘려 윗옷이 빨갛게 되어 있음.

태그:#5·18 광주, #금남로, #광주민중항쟁, #공수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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