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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이후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및 탈레반을 소탕하고 “평화와 자유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나 침공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프간에는 자유와 평화는커녕, 날이 갈수록 격화되는 혼란만 계속되고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로 치안은 악화일로에 있고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은 또 다시 양귀비 재배에 나서 아프간은 세계 최대의 아편생산국으로 회귀했다. 현재 아프간은 빈곤율이 50%, 실업율이 40%를 웃돈다.

또한 미군의 군사작전으로 인해 권력기반을 잃고 소멸하는 듯했던 탈레반은 다시 대공세를 선언하면서 반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들은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를 통한 탈레반 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아프간에는 현재 미군과 동맹국군 14,000여명을 비롯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주력인 국제안보지원군예하 37개국 37,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한국군은 의무부대인 동의부대와 공병부대인 다산부대원 211명이 미군과 함께 카불 북부의 바그람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탈레반은 한국군도 “미 제국주의 군대와 한통속”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월 윤장호 하사가 순직한 폭탄테러나 어제(20일) 샘물교회 신도 피랍사건은 이러한 배경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본고는 냉전 당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놓고 펼쳐진 미국과 소련 간의 치열한 각축전과 탈레반 탄생의 배경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 침공의 목적을 되집어 봄으로써 피랍사건 배후상황과 미국주도하에 펼쳐지고 있는 평화유지작전의 목적과 위험성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 탈레반의 위험한 줄타기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길목이자 막대한 지하자원을 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곳은 야망을 가진 모든 나라들을 끊임없이 유혹하였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지배하거나 지배하지 못한다면 최대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만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열강들의 쉼 없는 긴장관계는 일종의 지정학적 숙명과도 같은 것으로서 그 숙명적 관계 속에 미국이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1970년대 말 월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미국이 또 다시 이념을 둘러싼 전쟁에 직접 끼어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소련의 영향력 아래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어 가는 공산주의 세력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마침 아프가니스탄에는 1978년 좌익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정권이 수립되었고 그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비밀리에 이슬람의 무자헤딘게릴라들을 지원하면서 이들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불안정은 소련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소련의 브레즈네프정권은 자국에 우호적인 사회주의 정권을 확고하게 유지하여 이슬람세력의 자국내 파급을 차단할 목적으로 치밀한 준비보다는 자신감에 의지한 채 1979년 12월 15일 전면침공을 감행함으로써 1980년대의 새로운 국제적 냉전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선동하여 친소 아프가니스탄정부에 대한 폭력투쟁을 사주, 소련을 끌어들여 월남전과 같은 수렁으로 유인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비밀공작의 산물이었다.

CIA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6개월 전부터 소련의 남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배제시켜 그 지역의 주도권을 잡고, 숙적인 인도를 견제코자 했던 파키스탄을 통해 무자헤딘을 거의 무한정 지원했다. 거기에다 시아파의 본거지인 이란을 경계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합세함으로서 미국이 계획하고 파키스탄이 훈련기지를 제공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물들이 자금을 지원한 3개국의 연결고리는 냉전시대의 특징 중 하나인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의 전형이 되었다.

9년간의 지루한 전쟁 후인 1989년 12월 소련군이 철수하자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무자헤딘 안에서도 종교적 신념이나 민족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본격적인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시작된 것이다. 나지불라 대통령을 축출한 무자헤딘반군은 1992년 카불에 입성했다.

그러나 내전의 양상은 부족간의 정국 주도권 다툼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소련군 철수와 함께 친미정권 수립을 통해 그 동안의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자 했던 미국에게 반소 게릴라들의 얽히고설킨 내전은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시 내전에 개입하기에는 분쟁양상이 너무 복잡했다. 오히려 전혀 새로운 세력으로 하여금 내전을 정리하게 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해 보였다.

1994년 이슬람학교를 다니는 ‘신학생’ 또는 ‘구도자’를 뜻하는 탈레반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CIA의 주도하에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탈레반은 창설과 동시에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여 2년 만에 카불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직된 종교적 해석에 바탕을 둔 교조주의적 통치로 민심은 멀어져만 갔으며 이슬람혁명을 외치는 각국 폭력혁명단체들에게 훈련장을 제공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도 틀어져 갔다.

특히 1996년 소련과의 전쟁에서 무자헤딘반군의 지휘관으로 명성을 날린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국제테러범으로 몰리자 아프간은 1996년 라덴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금수조치를 단행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식량난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탈레반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과의 연계가 아니더라도 다미얀 석불 파괴나 여성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 등 퇴행적인 정책들로 인해 마치 캄보디아의 폴포트 정권을 연상시키는바 어떤 형태로든 한번은 손을 봐야 할 대상으로 점찍고 있었다.

여기에 반소전선에서 라덴과 함께 목숨을 걸었던 탈레반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가 라덴을 거부하는 것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배신하는 일로 단정하자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이 때부터 9·11테러 직후까지 미국을 상대로 한 이슬람 원리주의조직 탈레반의 위험한 줄타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어떤 침략자도 거부하는 신비스러운 죽음의 땅 아프가니스탄

따라서 미국은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기 무섭게 배후에 중동의 이슬람세력이 개입됐다고 단정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백만장자 오사마 빈 라덴의 소행으로 몰고 가면서 그가 은신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신병인도를 요구함과 동시에 테러응징을 명분으로 하는 대규모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테러발생 26일 만인 2001년 10월 7일 오후 9시 20분(현지시간)을 기해 아프가니스탄에 전폭기와 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공습을 감행함으로써 전 세계의 테러조직을 박멸한다는 목표 아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제국주의 패권전쟁을 전 세계로 확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시작된 서아시아 고원의 사상 유례가 없는 이상한 전쟁은 실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고립무원의 아프가니스탄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항하는 전쟁,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세계 최대 부자나라 미국과 미국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여러 나라를 상대로 싸우는 전쟁, 통신수단이 송두리째 파괴된 나라가 세계 최첨단 정보기술을 보유한 나라들과 맞서 거의 맨손으로 싸우는 전쟁, 국민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집권세력의 군인들만으로 세계 최강의 다국적 연합군을 상대하는 전쟁, 미국은 최소한의 저항도 받지 않고 마음 놓고 원하는 대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공습을 감행할 수 있는 전쟁. 과연 이런 전쟁이 지구상에 있었던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프가니스탄전쟁은 게임이 안 되는 전쟁이었다. 그런데 왜 미국은 계속되는 공습과 특수부대에 의한 소부대 전투만 병행했을 뿐 본격적인 대규모지상전을 실시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 신비스러운 ‘죽음의 땅’은 세상의 그 어떤 침략자도 거부했다. 미국에 맞서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옛 소련군도 이 땅에서만은 고르바초프의 말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안고’ 물러나야 했다. 우주선이 태양계탐사에 나서고 펜타곤이 스타워즈를 공언한 시점에서도 아프리카와 남미의 오지(奧地)만큼이나 황량한 이 중앙아시아의 오지는 여전히 현대문명의 침입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

파키스탄과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중국 등에 둘러싸여 가장 가까운 공해상이 1000Km 이상 떨어진 내륙의 땅이라 항공모함에 의한 해·공군지원이 쉽지 않으며 전 국토가 반(半)사막지대로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품지 않은 평균 고도 해발 1000m 이상의 바위덩이의 악산(惡山)이 대부분이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포함한 북서부지역은 만년설로 뒤덮인 해발 5000m 이상의 고산준령과 거대한 계곡, 미로처럼 얽힌 수많은 천연동굴과 크레바스투성이의 천혜의 요새로 빠른 물살의 강, 변덕스런 날씨, 11월부터 시작되는 영하 40도의 혹한을 동반한 겨울바람과 2m까지 쌓이는 폭설, 그리고 얼음으로 뒤덮인 형편없는 돌밭길, 20도가 넘는 세계최고의 일교차와 대부분 겨울에 눈으로 내리는 연간 300mm 안팎의 강우량, 호흡곤란을 일으킬 정도의 10%도 안 되는 낮은 습도가 불청객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뿐인가 전국에는 구 소련군이 부설해 놓고 간 1천만 개 이상의 지뢰가 깔려있다. 게다가 평생 자기부족 밖에 모르고 살아온 극히 배타적이고 타협과 양보를 모르는 수많은 족속으로 구성된 이 땅의 주인들은 옛부터 끝없이 계속된 크고 작은 각종 형태의 전쟁으로 싸움에는 이골이 난 게릴라전의 프로들이다.

미군은 월남전 때 밀림 속에서 보이지도 않는 베트콩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자칫하면 여기서도 험한 돌산계곡과 동굴을 찾아 유격전을 벌여야 할 뻔했다. 그것도 해발 2~3천 미터의 고원에서.

그런데도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 일본 등 주요 서방국가들의 군사적 지지와 지상군투입이 거의 없는 무자비한 공습, 그리고 사실상 산적들의 집합체나 다름없는 북부동맹을 총알받이용 소모품지상군으로 활용하여 그들의 선도에 의해 수도 카불에 입성하고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를 점령함으로서 1980년대 막강한 옛 소련군을 물리쳤던 무자헤딘의 불패신화를 무너뜨리고 탈레반정권을 조기에 전복시킨 것은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하면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입성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물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침공은 1979년 소련의 침공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 때는 미국이 무자헤딘을 배후에서 비밀지원 함으로써 사실상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었으나 이제는 미국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완전 봉쇄된 상태에서 그 동안 시대착오적인 가혹한 폭정으로 인해 내부 지지기반 마저 상실하고 미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을 상대로 내전을 치르며 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철새 같은 탈레반군벌들에게 미국은 100달러짜리로만 7,000만 달러이상을 뿌리며 현금매수를 통한 내부분열공작을 병행함으로서 거의 전투 없는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탈레반 지도부가 산악을 무대로 게릴라전에 입각한 기동방어로 전력을 보존하고 시간을 끌며 미군의 인명피해를 최대화하면서 호기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마자르 이 샤리프와 쿤드즈 등 대도시에 전력을 집중 배치하는 거점방어전략을 채택함으로서 밤낮을 가리지 않은 미군공습의 표적이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자초한 것이 주요인이었다.

하지만 미국에게는 탈레반정권이 붕괴 됐다고 해서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탈레반이 건재할 때는 탈레반이라는 공습목표가 존재했지만 탈레반이 붕괴되고 군벌집단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북부동맹이나 미국이 지원하는 카르자이정권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종족간의 반목과 강대국들의 이해각축에 의해 새로운 내전상태로 돌입할 수가 있다.

따라서 갈수록 피를 많이 흘리게 되는 게 바로 이런 형태의 전쟁이다. 한 예로 미국이 2002년 3월 탈레반 잔당소탕을 명분으로 자국의 공수사단과 산악사단을 비롯한 특수지상군과 캐나다·호주·아프가니스탄군 등 4천여 명을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의 팍티아 샤히코트계곡에서 미군주도하에 실시한 최초·최대의 지상전이라는 ‘아나콘다 작전’은 전례 없는 성공작이었다고 발표한 토미 프랭크스 당시 중부군사령관의 말과는 달리 작전에 직접 참가했던 믿을만한 소식통은 “월남전의 악몽이 아프간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아나콘다 작전’의 후속편인 ‘마운틴 라이온작전’을 전개하면서는 일체의 언론보도를 실시하지 않았고 ‘아나콘다 작전’의 3탄이라 할 ‘도요새 작전’은 아예 영국해병대가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형식을 취했다. 2004년 중순 카르자이 대통령 취임 직후에 탈레반과 알카에다 잔당 소탕을 명분으로 특수부대가 포함된 미군 18,000명이 동원된 ‘번개자유’작전도 성과 없이 종료됐다.

전면전이 끝난 상태에서 잔당소탕을 위해 진행된 국부적 평정작전이 이 지경이었다면 앞으로 대테러전쟁이 세계 각지로 확대되고 장기화 될 경우 테러피해는 망각되고 새롭게 늘어나는 군사적 피해만 부각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미국은 탈레반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아프간전쟁의 1차 목표는 달성했으나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의 완전 타도에는 실패함으로써 절반의 승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전쟁확대의 명분을 전 세계 테러조직의 박멸과 빈 라덴 제거에서 찾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솔직히 빈 라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위해 빈 라덴 이라는 유령이 필요했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감지 된 의문투성이의 여러 징후들은 9·11테러로 촉발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세계 그림자정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국제사기극이 아닌가하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전모가 드러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진실

사실 9·11테러가 아랍의 반미저항을 대변한 것이며 미국이 이런 테러에 무방비였다고 보는 것은 국제정치의 비밀에 무지한 단순한 생각일 뿐이다. 피상적인 것만 가지고 볼 때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단순히 테러응징 차원이 아닌 출범 8개월 동안 부시행정부가 추진하고자 했던 군국주의적 정책현안들을 실행하는 획기적인 계기로 삼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다분히 음모적인 냄새를 풍긴다.

사실 부시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지난 2000년 대선은 ‘군산복합체의 쿠데타’로 불릴 만큼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선거였다. 부시는 전체 투표에서 지고 법정 소송에서 당선된 소수파 대통령으로 그에게는 부임 초에 많은 반대자들이 있었다. 따라서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국론통일을 유도하여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테러를 그보다 가혹하게 반격하지 못할 경우 미국의 자존심과 함께 부시의 인기도 땅에 떨어지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부시는 확전이 정치적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시에게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걸프전에서 승리하고도 재선에 실패한 것을 교훈 삼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으로 오른 인기의 여세를 몰아 대테러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비롯해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감세 등 경제회복을 위한 각종 입법, 알래스카 등에서의 에너지 개발법안, 교육개혁안 등 선거공약들을 포함해 테러사건 이전에 민주당의 상원장악으로 뜻대로 밀어붙이지 못했던 각종 현안들을 ‘전시 중에는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야금야금 해치울 수 있다.

그러나 승전 대통령의 인기는 팔랑개비 같은 것. 언제 무슨 바람에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엔론의 불똥이 튀지 않게 안보무드로 밀어내야 했다. 정치권의 마당발기업이 사상 최대의 파산을 부른 엔론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스캔들이 확대되는 날 부시는 장군들이 아니라 판사들에게 둘러싸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부시에게 전쟁은 필요악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미국은 9·11테러가 일어나기가 무섭게 사태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부터는 이라크의 개입설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너무 성급하고 상투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미국은 테러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번 본능적으로 중동의 이슬람세력을 지목해 왔다 지난 1995년 티모시 맥베이에 의해 오클라호마 연방청사가 폭파됐을 때도 처음에는 중동을 의심했다. 미국을 공포 속에 빠뜨렸던 탄저균 테러도 처음에는 아무 증거도 없이 라덴과 이라크를 지목했다가 미국 내부의 소행으로 바뀌었지 않은가. 만약 9·11테러도 ’95년의 경우처럼 미국 내부의 소행일 경우 미국 국민이 받게 될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두려움은 여기에 있었다. 따라서 미국에게 있어서 범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적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범인을 못 찾을 경우 범인의 친구라도 찾아 잡아 죽이겠다는 것이 부시의 결의였다. 그러므로 빈 라덴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처음부터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이유는 오직 내부 결속을 다지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를 만들어줄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셋째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을 통해 미국은 냉전종식 후 유럽과 중동정세에 몰두하느라 보류했던 중앙아시아에 대한 공략을 본격화하고 이를 통해 신군사전략을 시험하며 군산복합체의 수요를 충족시켜 불황에 빠진 미국경제를 연착륙시키고자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역사는 한 마디로 강대국의 침략사라고 할 수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유라시아대륙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무역상의 이점 때문에 페르시아·투르크·이슬람·중국 등 끊임없이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러나 근세 이후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인도양항로가 발견되자 동·서양을 잇는 중앙아시아의 지리적 중요성이 사라졌고 18세기 이후부터는 러시아제국에 편입되었으며 소련해체 후에는 어떤 강대국도 헤게모니를 확립하지 못한 정치적 공백상태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주인 없는 땅이다.

더욱이 이 지역은 2천6백8십억 배럴의 원유와 4백75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의 보고로써 이는 쿠웨이트·멕시코만·북해지역 매장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으로 페르시아만·시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유전지역의 하나로 꼽힌다. 이는 석유수출국기구 전체의 하루 원유생산량 2천5백만 배럴을 기준으로 할 때 인류가 30년간 써도 될 막대한 양으로 그야말로 노다지인 셈이다. 따라서 2010년경에 이르면 하루 32억 배럴의 원유와 연간 4조8천500억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우선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통해 중동과 중앙·서남아시아에서 석유이권을 비롯한 광범위한 문제들에 개입할 발판을 마련코자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세계 석유의 20%, 천연가스의 37%가 매장되어 있는 거대한 카스피해유전의 채굴과 파이프라인건설을 위한 주도권 장악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진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것은 미국 석유회사 Unocl이 추진하고 파키스탄군 정보기관인 ISI가 개입한 센트가스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이미 드러난 사항이다.)

그리고 내친김에 아예 눈에 가시 같은 사담 후세인까지 엮어서 제거해 버림으로써 후환을 뿌리 뽑고 중동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2전선의 형성에 따른 전력분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장기 비정규전의 형태를 취하면서 미군의 주력인 정규전 전력은 이라크로 돌리기 위한 수순(手順)이었다. 이렇게 되어야만 정규전을 통한 미군의 첨단 전력이 기능발휘를 하게 되어 불황에 빠진 군산복합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제2의 걸프전 호황을 기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전략적(大戰略的) 측면에서 볼 때 아프가니스탄침공은 서남아시아에서 장차 NATO확장을 위한 교두보 구축과 대중국(對中國) 포위망 형성을 위한 거점 확보에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인 면에서 볼 때 동아시아와 중동을 연결하는 회랑지대(回廊地帶)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이다. 이곳은 해상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이스탄불이나 수에즈, 지브랄타, 말라카, 파나마 해협 등과 비견 될 수 있는 육상의 관문 중 하나로서 이곳을 장악하게 되면 유라시아대륙 한복판에서 중국·이란·인도·러시아를 한눈에 내려다보게 된다. 따라서 그 효과는 실크로드의 중앙부에 쐐기를 박는 것이 되어 중국과 중동제국의 연대를 차단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앙숙인 이란에게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되며, 파키스탄과의 관계도 정상화시켜 미래에 인도의 야심을 제어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장차 러시아를 직접 견제할 수 있는 이중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전진기지로 삼아 탈레반정권을 전복시켜 이곳을 군사거점화 함으로써 일본에서 시작하여 한국, 대만, 동남아제국, 인도지나,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독립국가연합 및 몽골로 연결되는 중국에 대한 거대한 반달형 3면 포위망 구축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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