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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준비로 바쁜 마랑구 게이트.
ⓒ 김성호
세렝게티 사파리를 마치고 다시 아루샤로 돌아와 하루를 쉰 다음 킬리만자로 산 등반에 나섰다. 사파리 했던 같은 회사를 통해 4박 5일 일정에 750달러를 줘야 했다. 가이드나 짐꾼 등의 팁까지 포함하면 1000달러 정도 들어간다.

아침 일찍 아루샤를 출발한 차량은 2시간 정도 달려 모시(Moshi)에 도착했다. 모시는 차가(Chagga) 부족의 도시이자 킬리만자로 커피의 고장으로 유명한 작은 도시이다. 모시 시내를 지나 마랑구 마을을 거쳐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입구인 마랑구(Marangu) 게이트에 도착했다. 마랑구 게이트는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

모시에서 마랑구 마을을 지나다 보면 킬리만자로 산자락을 타고 바나나와 함께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와인 같은 맛을 내는 이곳 커피는 '킬리만자로 커피'라는 상표로 유명하다. 킬리만자로 등반은 입구에서부터 향기로운 커피 냄새를 맡으면서 시작된다.

마랑구 게이트에는 마침 비가 내리고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라는 뜻의 킬리만자로는 안개로 인해 그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산 귀퉁이도 볼 수 없고, 어느 방향에 킬리만자로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전 세계에서 온 등산객으로 북적거릴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중에서 유독 킬리만자로에 이렇게 많은 등산객이 모이는 것은 무엇일까. 전문 산악인이나 초보자나 차별 없이 누구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대륙별 최고봉에서 특별한 훈련이나 특수 산악장비 없이도 보통 사람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산이 킬리만자로이다.

전문 산악인도 오르기 힘든 아시아의 에베레스트나 북미의 매킨리 봉과 비교해 봐라.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오늘도 수많은 등산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뿐 아니라 가수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신비함까지 더해져 있는 산이다.

▲ 최초의 유럽인 정상 등정에 참여 했던 요하나 라우워 등 가이드와 짐꾼들을 기리는 구리판.
ⓒ 김성호
최초의 정상 등반자와 같은 격으로 기념하는 가이드와 짐꾼

나의 애초 아프리카 여행 일정에는 킬리만자로 등반은 들어 있지 않았다. 특별히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시간이 되면 하루 정도 킬리만자로 입구 트레킹을 하거나 멀리서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다.

킬리만자로 등반에 대한 나의 욕구는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한국의 젊은 의사와 재미교포 여대생이 나의 모험심을 부추겼다. 그들은 "킬리만자로를 등반하지 않고 어떻게 아프리카를 여행했다고 할 수 있느냐"며 자신들의 정상 등반 증명서를 나에게 보여주며 자극했다.

마랑구 입구에는 유럽인 최초로 1889년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독일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ans Meyer)의 얼굴 기념 구리판이 세워져 있었다. 내 눈길을 끈 것은 한스 마이어 바로 옆에 같은 크기의 또 다른 기념 구리판이었다.

한스 마이어가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요하나 라우워(Yohana Lauwo)라는 이름의 가이드(안내자)와 맘바 코웨라(Mamba Kowera)라는 이름의 포터(짐꾼) 등 6명의 가이드와 짐꾼의 이름을 모두 새겨놓았다. 가이드와 짐꾼의 도움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인 한스 마이어가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최고 높은 산이라는 것을 알게 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킬리만자로가 탐이 났다. 당시 영국령 동아프리카인 케냐에 속해 있던 킬리만자로 산을 독일령 동아프리카인 탄자니아로 넘겨달라는 빌헬름 2세의 간청을 받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신의 외손자인 빌헬름 2세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큰 딸인 제1왕녀 비키의 아들이다.

서구제국주의가 아프리카를 얼마나 멋대로 나눠 가져갔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이다. 직선으로 되어 있는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선이 킬리만자로 산을 경계로 꺾어지는 이유이다. 킬리만자로 산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마사이족이 현재 케냐와 탄자니아에 흩어져 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짐꾼들.
ⓒ 김성호
▲ 만다라 산장으로 가는 길의 키삼비오니 휴게소(왼쪽 요리사, 오른쪽 가이드)
ⓒ 김성호
목감기 걸린 사람은 3000m 이상 오르지 마라는 경고판

입구에는 내가 오르는 등산 코스인 마랑구(Marangu) 루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게시판도 세워져 있었다. 삼림지대인 만다라 산장까지는 보통 3시간이 걸리고, 작은 나무들이 자라는 관목지대인 호롬보 산장까지는 5시간, 고산 사막지대인 키보 산장까지 5시간, 역시 고산 사막지대인 길만스 포인트까지는 5시간, 빙하지대인 우후루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설명이었다.

그 옆에는 목감기와 호흡장애가 있거나 10살 이내의 어린이는 3000m 이상 오르지 말고, 몸이 환경에 적응하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올라가라는 주의사항도 곁들여 있었다.

4박 5일짜리 등반 코스는 첫날 만다라 산장에서 자고, 둘째 날 호롬보 산장에서 머문 다음, 셋째 날 키보 산장에 도착한 뒤 밤새 우후루 정상을 오르고, 넷째 날은 하산하면서 호롬보 산장에서 다시 하룻밤을 잔 뒤, 다섯째 날 마랑구 게이트로 내려오는 일정이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루트는 보통 6개인데 마랑구 루트는 일반 등반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이다. 킬리만자로는 시라와 키보, 마웬지 등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키보 봉우리에 가장 높은 5895m 우후루 정상이 있기 때문에 마랑구 루트를 통해 키보에 오르게 된다.

현지인들은 킬리만자로 등반 루트를 난이도에 따라 술 이름으로 불렀다. 경사가 험해 상대적으로 오르기 힘든 코스인 마차메(Machame) 루트는 독한 '위스키 루트'라 부르고, 경사가 완만해 가장 오르기 쉬운 마랑구 루트는 부드러운 '코카콜라 루트'라 부른다.

▲ 비가 와 짙은 안개가 낀 만다라 산장.
ⓒ 김성호
삼림욕하듯 오르는 만다라 산장

가이드가 모든 등반 수속을 끝낸 낮 12시께 우리는 만다라(Mandara) 산장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오르는 사람은 제임스(44)라는 가이드와 짐꾼 1명, 요리사 1명 등 모두 3명이다. 킬리만자로는 전문 가이드가 없으면 개인 등반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행사를 통해 가야 한다.

수풀이 우거진 산림 속을 걸어서 가는 길은 마치 삼림욕을 하는 느낌이다. 비가 간혹 내리지만 수풀 속으로 들어가자 나무가 오히려 비를 막아줘 우산 없이도 걷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다. 나는 입구에서 5000실링을 주고 빌린 등산용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나와 가이드는 산속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고, 짐꾼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큰 도로를 이용해 올랐다. 짐꾼들은 커다란 배낭과 음식물, 텐트를 등에 짊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성큼성큼 올라가고 있었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등산객들도 나를 앞서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올라갔다. 다른 등산객을 절대 추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킬리만자로에는 정상에 올라갔다는 증명서도 있어도, 등반시간은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와 대화를 하면서 오를 수 있는 데까지 오르고, 언제든지 하산하겠다는 마음의 약속을 했다.

작은 개울가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 1시간 조금 지나자 도착한 곳은 키삼비오니 간이 휴게소. 화장실이 있고 물이 나오는 휴게소에서 앉아 식빵과 과일로 점심을 했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은 빗방울마저 떨어지면서 정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만다라 산장에 오르는 길은 산림지대로 새소리도 들리고, 커다란 침엽수인 포도카푸스(Podocarpus) 나무와 대형 고사리류 식물(Giant Fern), 이끼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슬비를 맞으며 올라가다 보니 3시간도 채 안 걸려 평지에 오두막같이 생긴 산장이 나타났다. 오늘 하루 묵을 만다라 산장이다. 첫날은 본격적인 등반을 위한 준비단계인 워밍업에 불과한 것이다.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만다라 산장은 무거운 느낌마저 준다.

나무 산장 옆에는 시멘트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었다. 기초공사는 끝나고 뼈대를 올리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인 제임스는 "만다라 산장은 하루에 85명 등산객을 수용할 시설이 있는데, 성수기에는 부족해 추가로 산장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저녁은 왜 그리도 빨리 먹는지 모르겠다. 오후 5시가 되자 저녁식사가 나왔다. 해가 일찍 지는데다 높은 산에서는 소화불량도 일어나기 때문에 저녁을 일찍 먹고 자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산장의 식탁에서 저녁을 먹는데 일본인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대부분 유럽인들이다.

식탁 옆에 스페인 여자가 <게이샤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 Geisha)>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미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이라는 책을 이미 읽고 재미있어서 새로운 책을 샀다고 했다. 게이샤의 추억은 미국의 작가 아서 골든이 쓴 책이고, 게이샤의 자서전은 게이샤 출신인 일본의 사요 마수다가 썼다. 소설과 영화로 나온 게이샤 이야기는 외국인에게는 흥미로운 분야이다.

오후 6시가 되자 어두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깃불도 없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간이침대 4개가 있는 오두막집에서 독일의 50대 부부와 함께 잤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니 그런대로 포근했다. 침낭과 등산 옷 등 등산 장비는 사파리 회사에서 제공했다.

▲ 만다라 산장으로 오르는 길의 울창한 나무와 이끼류 등이 있는 산림지대.
ⓒ 김성호
뽈레뽈레 오르는 킬리만자로

등반 둘째 날은 오전 9시쯤 산을 올랐다.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Horombo) 산장까지 가는 길이다. 어제와 달리 시간도 5시간 이상 걸린다. 마랑구 게이트에서 만다라 산장까지만 거리가 짧고 만다라 산장부터 호롬보 산장, 키보 산장, 우후루 정상까지는 하루에 거의 1000m 높이를 올라가게 되어 있다. 해발고도 1980m인 마랑구 게이트에서 시작해 하루에 1000m 정도씩 올라가다 보면 나흘째 되는 날 5896m인 우후루 정상에 오르게 된다.

만다라 산장을 출발하기 전 가이드인 제임스는 나에게 "빨리 오르려고 욕심을 내는 여행객치고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오른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며 "뽈레(Pole) 뽈레(Pole)"를 강조했다. 뽈레는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는 것. 킬리만자로에서 천천히 가야하는 이유는 체력 소모를 막는 것도 있지만, 너무 빨리 올라가려다 보면 고산병으로 고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정말 경험 많은 베테랑이어서 등산길 내내 나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가이드 생활만 올해로 14년째로 이번이 721번째 등반이라고 했다. 제임스는 "킬리만자로와 함께 내 청춘을 다 보냈다"며 "킬리만자로는 내 친구고 가족이고, 산 전체가 나의 몸과 같다"고 말했다.

오늘도 가랑비가 내리다 말다 반복하고 있었다. 산길도 나무로 우거져 있다. 죽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축 쳐진 파란 이끼가 마치 나뭇가지처럼 보인다. 축 늘어진 이끼를 현지인들은 "노인의 수염"이라고 불렀다. 킬리만자로의 나무는 죽어서도 다른 생물의 자양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1시간 정도 걸으니 완전히 다른 식물분포(식생)를 보인다. 큰 나무들은 뒤로 처지고 작은 나무들과 풀만 보이는 산악 사바나 초원 지대가 나타났다. 만다라 산장까지가 산림지대였다면 호롬보 산장을 오르는 지역은 관목지대이다.

▲ 영원의 꽃이라 불리는 에버라스팅 플라워(헬리크리숨 메이에리)
ⓒ 김성호
▲ 민들레 처럼 노란 꽃을 피우는 헬리크리숨 뉴이이.
ⓒ 김성호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등산길 옆으로는 민들레 같은 노란 꽃이 피어 있어 등산객들을 반긴다. 관목지대에서 자라는 헬리크리숨(Helichrysum Newii) 꽃이다. 강인한 민들레 종류의 꽃의 자생력은 킬리만자로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옆의 꽃묶음처럼 피어있는 또 다른 꽃은 꽃잎은 하얀데 꽃술은 노랗다. '영원의 꽃'이라 불리는 에버라스팅 플라워(Everlasting Flower) 또는 헬리크리숨 메이에리(Helichrysum Meyeri)이다. 나무 쑥갓과 비슷한 꽃이다. 국화 같은 노란 꽃도 보이는데, 아프리카 데이지의 일종으로 세네시오 케니오피툼(Senecio Keniophytum)이다.

1시간 정도 더 올라가니 이제는 쥐들도 보이고, 측백나무 같은 나무가 갈색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관목지대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인 녹색의 에리카 아보레아(Erica Arborea)와 회색의 스토베 킬리만사리카(Stoebe Kilimandscharica) 나무이다. 킬리만자로는 높이에 따라 다양한 나무와 꽃 등 식물분포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계곡에서 짙은 안개가 바람을 타고 언덕을 따라 올라왔다. 막힌 코를 뚫고 지나가듯 상쾌함을 남기고 안개는 빠른 속도로 또 다른 언덕으로 넘어갔다. 킬리만자로에는 짙은 안개가 구름처럼 산허리를 감고 있다 바람이 불면 쏜살같이 정상을 향해 달아났다.

등산길 옆에서 점심으로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오후 1시쯤 다시 몸을 일으켜 산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햇볕이 비춘다. 킬리만자로에서는 안개도 쏜살같이 날아가듯이, 햇살도 번개처럼 순식간에 내려왔다.

▲ 호롬보 산장으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안갯속으로 얼굴을 내민 킬리만자로 키보 봉.
ⓒ 김성호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른쪽으로 마웬지 봉이 보이고 왼쪽에는 키보 봉의 킬리만자로가 하얀 옷을 입은 채 그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만년설의 킬리만자로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가랑비와 짙은 안개로 킬리만자로의 꼬리조차도 보지 못했었다.

멀리서 보이는 킬리만자로는 역시 웅장하고 영험한 산처럼 다가왔다. 신령이 있는 산이어서 그토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인가. 하얀 만년설은 눈이 아니라 신령의 만년 묵은 하얀 콧수염인가. 헤밍웨이가 표범 시체가 있다고 해서 더욱 호기심을 불러왔던 킬리만자로의 정상. 나는 바로 그곳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높이 1만9710피트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그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신의 집이라는 '은가예 은가이(Ngaje Ngai)'라고 부른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 말라 얼어버린 한 마리의 표범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아 헤매었던 것일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헤밍웨이가 1936년 발표한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이라는 소설의 첫 머리글이다. 아프리카와 최고봉 킬리만자로, 만년설, 마사이, 신의 집. 표범의 시체… 헤밍웨이가 소설의 첫머리에서 기술한 이런 소재만으로도 무한한 상상과 추측, 기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헤밍웨이는 케냐의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주로 사파리를 하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 암보셀리에서 바라보면 서쪽에 킬리만자로가 있기 때문에 '서쪽 봉우리'는 킬리만자로의 정상이 있는 키보 봉을 가리킨다.

정말로 표범의 시체가 정상에 있는 것인가, 그러면 표범은 무엇 하러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갔단 말인가 하는 궁금증은 호기심을 낳고 호기심은 온갖 추측을 불러온다. 현지인들 사이에는 언젠가 정상 부근에서 표범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정상 부근의 길만스 포인트 아래 서쪽 지점에는 '표범이 있던 장소'라는 뜻의 레오포드 포인트(Leopard's Point)가 있다.

용맹하기로 소문난 마사이족도 신성시해서 산 근처에도 오르지 않았던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표범의 시체가 발견됐으니…. 헤밍웨이는 이런 현지인들의 이야기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아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죽음을 앞둔 소설의 주인공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반성과 회한에 젖는 것은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지'와 맞닿아 있다. 헤밍웨이가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말하고자 했던 의미는 우후루 정상에 올라보면 알 수 있겠지….

▲ 호롬보 산장으로 가는 길의 물이 흐르는 계곡.
ⓒ 김성호
60대 후반의 오스트리아 할머니들을 통해 멋진 노후를 본다

하얀 눈으로 덮인 킬리만자로의 장엄한 모습을 찍기 위해 나는 배낭에서 사진기를 꺼냈는데 마침 건전지가 나갔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산 '삼성 배터리'라는 상표의 건전지로 교체했으나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삼성 배터리가 가짜였던 것이다. 삼성은 애초부터 건전지를 만들지 않는데, 에티오피아에서 삼성의 유명세를 이용해 가짜 건전지를 만든 것이었다.

낭패였다. 가장 아름다운 킬리만자로의 모습을 하나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 등산로에는 가게가 없으니 도중에 건전지를 새로 살 수도 없다. 마침 20대 후반의 일본인 연인이 옆에 있어 부탁을 했더니 다행히 남은 건전지가 있다며 소니 건전지 4개를 준다. 나는 이 건전지로 등반 내내 킬리만자로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외국 여행길에서 그래도 동양 사람이 쉽게 마음이 통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진을 찍고 나자마자 거짓말처럼 킬리만자로가 다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안개가 산허리부터 덮더니 마웬지 봉우리도 킬리만자로의 우후루 정상도 모두 묻혀버렸다. 킬리만자로에서는 햇볕도 안개도 순간이고, 만년설의 정상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이치대로 움직이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킬리만자로는 사람이 올라간다고 정복되는 산이 아니라, 꾸준히 걸어가면 정상에 이르는 산이다. 수림대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만다라 산장까지는 황토 흙이었는데, 호롬보 산장으로 가는 길은 검은 흙으로 변했다.

호롬보로 가는 길옆에는 죽어서 검은색을 띤 나무와 그 옆에 새로 새싹이 자라나는 작은 나무들이 검은색과 파랑의 흉물스런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유령의 집에 있는 나무들의 시체와 새싹의 생명의 대비라고 할까.

가이드인 제임스는 "3년 전 등산객이 버린 담배 꽁지로 이 일대에 큰 산불이나 나무가 모두 타버렸다"고 말했다. 3년 전의 화상이 아물지 못하고 흉측한 상처로 남아 있었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간에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60대 후반의 할머니 2명을 만났다. 친구사이라는 이들은 호롬보 산장까지만 등산하고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하는 것이다. 만다라 산장에서 비슷하게 출발한 등산객들은 이미 우리를 모두 앞질러 갔다.

나는 이들 할머니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누가 천천히 가는지를 경쟁했다. 이들 할머니를 보니 오래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할 때 만난 오스트리아 할머니가 생각났다. 당시 82살이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여의고 혼자서 오스트리아에서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거쳐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지나 중국의 베이징까지 열차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킬리만자로에서 다시 오스트리아 할머니들을 만나니 그들의 강인함과 정년퇴직 후 여행을 즐기는 멋진 노후가 부러웠다.

▲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두번째 산장인 호롬보 산장.
ⓒ 김성호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만나는 호롬보 산장

호롬보 산장으로 가는 길은 틈틈이 있는 계곡과 나무다리가 있어 낭만을 주고, 그 밑에 흐르는 맑은 물이 지친 몸에 활기를 준다. 중간에 점심을 먹은 뒤 30분 정도 걷자 작은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나무다리가 있고, 세네시오(Senecio)와 스토베 킬리만사리카가 계곡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계곡으로 내려가 차가운 물에 손을 적시고 10여 분 동안 쉬었다. 계곡물은 어름처럼 차가워 온몸에 젖은 땀을 모두 씻어버렸다.

계곡에서 푹 쉰 뒤 나는 다시 발길을 산 쪽으로 돌렸다. 강렬한 햇살이 다시 비추더니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다시 내 눈앞에 얼굴을 드러냈다. 그 이후 킬리만자로는 따가운 햇볕과 함께 하얀 정상을 내보이며 어서 오라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는 작은 나무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황량한 지대가 펼쳐진다. 관목지대에서 3400m를 넘어서면서 호롬보 산장 가까이는 황야지대로 변하기 때문이다.

호롬보 산장으로 가는 길은 뱀이 지나가는 길처럼 휘어져 있었다. 밑에서 위를 올려다봐도 산허리를 길게 돌아가는 길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저 산허리 너머에 호롬보 산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실제로 산허리를 넘어가자 나무로 지은 삼각형 모양의 오두막집이 서 있었다. 호롬보 산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때가 오후 3시쯤. 오전 9시에 만다라 산장을 출발했으니 6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호롬보 산장은 만다라 산장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등산객들로 북적거리고 혼잡스러웠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 머무는 사람들과 정상에 오른 뒤 내려와 하루를 쉬어가는 등산객들이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호롬보 산장은 산허리에 있어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마주치는 곳에 있었다. 나무로 된 삼각형의 오두막집이 30여 채 정도 있고, 그 옆에는 개인이 가져온 텐트를 치고 머무는 장소도 있었다.

산장 뒤로는 계곡의 물이 흐르고 있는데, 밤에는 "졸∼ 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다. 호롬보 산장의 계곡은 세네시오(Senecio)의 집단서식지이다. 줄기는 둥글고 선인장같이 생긴 세네시오라는 작은 나무 사이에서 홀로 우뚝 솟아 있다. 가이드 제임스는 "세네시오는 열매는 없고 아름다운 꽃만 피운다"고 말했다.

▲ 호롬보 산장 계곡의 세네시오 집단 서식지.
ⓒ 김성호
킬리만자로 등정을 축하는 킬리만자로 노래가 들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다 보니 책을 읽는 젊은이들도 있고,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며 다음날 등반 계획을 짜는 여행객들도 있다. 산장 옆에서는 유럽에서 온 여행객 6∼7명이 가이드와 짐꾼들과 함께 빙 둘러앉아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상에 오른 뒤 내려와 호롬보 산장에 짐을 푼 등산객들이다. 이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성공적인 등정에 만족하는 행복감도 느껴졌다. 가이드와 짐꾼들이 이들 여행객을 위해 부르는 노래는 유명한 '킬리만자로 노래(Kilimanjaro Song)'이다.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음리마 음레푸 사나(킬리만자로 가장 높은 산)
나 마웬지 나 마웬지 나 마웬지 나 마웬지 니 음리마 음레푸 사나(그리고 마웬지도 가장 높은 산)
에웨 니오카 에웨 니오카 에웨 니오카 에웨 니오카 음보나 와니중구카(저기 많은 뱀들이 왜 내 주위를 돌고 있지)
와니중구카 와니중구카 와니중구카 와니중구카 와타카 쿠닐라 니아마(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네, 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네)"


저녁 식사시간에 우리나라 산악회에서 온 중년의 남녀 15명을 만났다. 오로지 킬리만자로 등정을 목적으로 온 팀이었다. 일본에서 온 단체 산악회원들도 있었다. 킬리만자로는 아마추어 세계 산악회원들의 단체 등정 코스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부분 호롬보에서 이틀간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호롬보에서 이틀을 자면서 고산증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내가 배정받은 산장은 37번 방인데 독일에서 온 가족등산객과 함께 사용했다. 독일 가족은 60대 부부와 두 명의 아들, 한 명의 딸 등 모두 5명이었다. 독일 가족의 아버지는 우리나라를 잘 알고 있어 나를 반가워했다. 그는 정년퇴직하기 전 "한국의 엘지(LG)화학과 무역을 했다"며 서울과 부산 등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5박 6일 일정으로 다음날 바로 키보 산장으로 가지 않고 중간의 마웬지 산장에서 하루를 더 묵는다고 했다.

킬리만자로에는 전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홀로 오는 배낭여행객도 있고, 연인끼리 친구끼리 황혼의 부부끼리 산악동호회에서 집단으로 오기도 하고 독일 사람처럼 가족끼리 오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킬리만자로를 가족끼리 등반하는 것은 가정의 끈끈한 사랑을 확인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부러움이 들었다.

호롬보 산장만 해도 고도가 3700m나 되다 보니 산장 속의 침낭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제법 추웠다. 초겨울 날씨처럼 싸늘하니 몸이 움츠러들 정도이다. 가이드와 짐꾼들은 등산객과 조금 떨어진 복도식으로 된 오두막집에서 잤다.

태그:#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한스 마이어, #우후루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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