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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다 아랫녘으로 내려가 날이 화창하니 살 것만 같습니다. 아침엔 물안개 어슬어슬 피어나 뭉실거리고 습습하더니 오후부터 따가운 햇살 솟아나 초복 더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 산 언덕에서 내려다 본 북한강 산 줄기, 저 산 우측이 화악산입니다.
ⓒ 윤희경
오랜만에 산언덕에 올라 북한강 산줄기를 내려다봅니다. 갈참나무 숲을 타고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 머리 위를 맴도는 흰 구름 떼, 간간이 들려오는 뻐꾹새 소리에 찜통더위도 쪽빛 강물을 건너갑니다.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따라 산을 올라다 보니 하얀 꽃들이 흰 구름 아래 땀방울을 송알송알 씻어 내리고 있습니다. 산옥잠, 으아리, 백도라지, 범의 꼬리, 당귀 등등….

▲ 푸른 도화지에 솜털구름이 밤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 윤희경
초복 무렵, 장마가 시작되면 시리게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산옥잠화입니다. 모양새가 옥비녀를 닮아 옥잠화와 비슷하나 옥잠화보다 서둘러 초복 때 피어납니다. 밤에 피기 시작해 새벽녘에 마무리를 합니다. 불볕더위 아래서 바라보는 꽃 빛은 우아하다 못해 처연해 보입니다. 지금 막 세수를 끝내고 손을 털며 모시 적삼을 받쳐 입은 여인처럼 맑은 향 내음을 풍겨냅니다. 마치 이 세상 쓴맛 단맛을 다 겪어낸 중년여인의 뒷모습 그대로입니다.

▲ 산옥잠화, 옥양목 모시적삼을 입은 중년 여인을 닮았습니다.
ⓒ 윤희경
으아리도 하얀 꽃물로 더위를 씻어 내립니다. 2m가 넘는 덩굴손을 거침없이 내뻗어도 꽃물은 시리고 아리기만 합니다. 고추나물, 선일초, 마음가리나물이라고도 합니다.

'마음가리나물'이란 꽃말이 하도 좋아 꽃내음을 한참 맡아봅니다. 마음을 갈라니 어쩌란 말인가, 하산하기 전에 마음을 비우란 뜻일까. 아니면, 저 아래 계곡물로 몸과 마음을 씻어 내리고 맑은 영혼을 으아리 잎에 담아 놓으란 뜻일까 하고 하얀 꽃물을 내려다보니 또 향내가 콧등을 간질입니다.

▲ 으아리, 마음가리 나물이라고도 합니다. 이 나물을 먹으면 맑은 영혼이 파란 핏속을 흘러내릴 것만 같습니다.
ⓒ 윤희경
산에서 만나는 도라지꽃은 유별납니다.

"백도라지님, 이름을 부르면 머리가 하얗게 센다는데 정말인가요?"
"누가 그랴?"
"전설 속에서 들은 것 같은데요."

"오랜 옛날, 남자 친구와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약속을 했더랬지. 그런데 부모가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남친을 유학 보낸 게야."
"어쩌면 좋지요."

"나는 남친이 떠난 바다로 달려가며 울부짖고 있는데 그때 뒤에서, '도라지야, 도라지야' 불러대는 게야."
"아…!"
"돌아보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

그때부터 도라진 툭하면 입을 다물고 토라지기를 잘합니다.

"도라지님, 토라지지 말고 우리 오래도록 사랑하기로 해요."
"…."

▲ 백도라지님, 우리 토라지지 말고 오래도록 하얀순수로 남아요.
ⓒ 윤희경

▲ 흰범꼬리
ⓒ 윤희경

참 오랜만에 도라지 타령을 읊조리며 하산을 하는데 우리들을 안 보고 그냥 내려가면 어쩌자며 또 다른 꽃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흰범꼬리, 당귀도 만나보고, 흰색은 아니지만 '금꿩의다리'도 키가 훌쩍하니 흔들거리며 시원한 바람 한 자락 일으켜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 당귀란 '마땅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연인이나 남편이 돌아올 낌새가 보이지 않으면 이 꽃을 선물해 보세요. 어혈, 피흐름을 멈추게하는 한약재로 쓰입니다.
ⓒ 윤희경
▲ 이 사진들을 찍느라 이틀 동안 화악산을 헤매며 땀 깨나 흘렸습니다. 오늘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흰색만 보여주려 했는데... 금꿩의다리가 노란 꽃술을 흔들어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에 이 꽃을 덤으로 선사합니다.
ⓒ 윤희경
아직도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맴돌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또 장맛비를 만들게 돼 미안하다며 헤살 궂게 먼 길을 서둘러 떠나갑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우측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산옥잠, #으아리, #백도라지, #당귀, #흰범의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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