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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고기는 단백질을 함유한데다 콜레스테롤도 적은 양질의 육류다. 달랑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부추, 깻잎, 고추, 파, 마늘, 들깨 등을 넣어 함께 먹음으로써 영양의 균형까지 고려한 훌륭한 보양식이다. 사진은 평양 단고기 장밥과 좁쌀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얼마 전 글에 썼다시피 우리 아버지는 복어 요리 마니아셨다.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음식을 한 가지만 더 든다면 그것은 보신탕이다. 리영희 선생이 쓰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제목의 책도 있지만 우리 아버지야말로 보신탕과 복어 요리라는 2가지 날개로 생의 에너지를 보충하며 사셨던 분이다.

어느 날, 아버지께선 어디선가 예쁜 강아지를 구해 오셨다. 그리고 중국 요리 등을 얻어다 먹이는 등 지극 정성을 다해 키우셨다. 밖에서 계시다가 집에 돌아오시면 가장 먼저 강아지 밥부터 챙기셨다. 강아지 밥 주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기라도 한 날엔 "너희는 배고파 밥을 먹으면서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그냥 굶기면 되느냐"라고 마구 야단을 치셨다. 평소 집안에서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아버지로선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기른 강아지지만 3~4개월 지나 중개 정도 몸집이 되면 운명이 급전직하로 갈렸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식도락을 위한 보신탕으로 둔갑하고 마는 것이다. 난 아버지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지중지 개를 사랑할 때는 언제고 그런 개를 보신탕으로 드시는 마음은 뭐란 말인가.

사업에 실패해 군산으로 뜨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광주 양동시장에서 잡화점과 함께 국수공장을 하셨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분들도 몇 분 계셨는데 기름집을 하는 변씨 아저씨가 그중 맏형 노릇을 하셨다. 목포에서 '맨주먹 붉은 피' 하나로 광주로 올라와서 우여곡절 끝에 양동시장에 자리 잡은 분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시장 사람들 입에 회자할 만큼 배짱이 아주 두둑하셨던 분이었다.

어찌어찌 해서 기름집을 내 장사를 꾸려가긴 했지만 어려운 처지를 면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자녀는 모두 공부를 잘했다. 나보다 열 살가량 더 나이든 것으로 기억되는 동호(가명)형은 당시 광주일고에 다니고 있었는데 쌀이 떨어져 번번이 점심을 싸가질 못했다. 그래서 변씨 아저씨는 정기적으로 개를 잡아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영양 보충을 시키던 기억이 떠오른다.

왜 복날에는 개고기가 최고일까?

▲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보신탕집 혹은 영양탕집 간판들.
ⓒ 안병기
오늘(15일)은 초복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복달임'이라는 명목으로 보신탕집을 찾을 것이다. 개고기 대신 삼계탕과 수박이라는 대체재와 보완재가 있긴 하지만 보신탕의 인기는 시들 줄 모른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하고 많은 복달임 음식을 마다하고 개고기를 첫손가락에 꼽는 것일까.

음력 6월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시기다. 쌀은 떨어진 지 오래고 보리를 타작하긴 했지만 곯은 배를 채우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다. 주린 배를 감싸안고 뙤약볕 아래 논에서 김매고 밭에서 풀매는 일을 하다 보면 기력이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보양식을 찾다 보니 주변에 있는 가축에 눈길이 갔을 것이다. 보양식으로 삼기엔 닭은 조금 작고 그렇다고 소를 잡기엔 소라는 가축이 너무 귀하고 컸을 것이다. 소와 닭의 중간을 생각하다 보니 개가 선택된 건 아닐는지. 어쩌면 동양의학적 관점도 적잖이 작용했으리라.

주강현이 쓴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그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의학자 이영종 교수(경원대 한의대학장)가 적절한 답변을 보내왔다. 여름 자체가 불(火)이다. 게다가 더위의 절정인 삼복은 경일(庚日)로 화기가 왕성하면서도 쇠(金)에 해당한다. 따라서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화극금(火克金)이므로, 쇠를 보충하기 위해 개를 먹어야 한다. 개에게 쇠의 기운이 있는 탓이다."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05쪽)

어쨌든 우리 조상들이 개고기를 애용한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임이 틀림없다. 싫어하는 사람이든 애호하는 사람이든 간에 보신탕이 '전통음식'이란 사실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나 어렸을 적엔 개인이 단독으로 개를 잡아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주로 마을 공동 추렴으로 잡아 집집이 나눠 먹었다. 당시는 비싼 개를 단독으로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노가다 판에선 복날에 추렴으로 개를 잡아먹는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의 목록엔 개를 잡는 장면도 들어 있다. 나뭇가지 등에 개를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패 죽이던 그 폭력적인 장면은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복날 개 패듯 팬다'라는 속담이 생겨났겠는가. 이길원의 시 '그 여름, 복날에'는 그런 어린 날의 불유쾌한 추억을 형상화했다.

어린 시절에 목격한 야만의 추억

바로 그 대추나무다
설핏 부는 바람에 곤두박질치던 내 연(鳶)을
관처럼 쓰고 있던 그 대추나무다
검둥이는 목이 비끌린채 매를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목소리라도 높이면
으르렁 기세를 세우던 목을
수천 번도 더 쓰다듬었던 목덜미를
머슴들은 매달았다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교문을 나서는 내게
바지가랑이 잡으며 꼬리치던 검둥이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더니
거기 매달려 사정없이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울며 몸부림치는 내 어깨를 짓눌렀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검둥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혼절하고 말았다.매달린 검둥이처럼

오늘같은 복날이면
친구들은
뛰는 메뚜기처럼 젓가락을 움직이는데
40년 전 검둥이 눈물이나 떠올리며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린다

(이길원 시 '그 여름, 복날에' 전문)


시 '그 여름, 복날에'는 <계란 껍질에 앉아서>(시문학사, 1998)에 실린 시 가운데 한 편이다. 이길원 시인은 <하회탈 자화상>, <계란껍질에 앉아서>, <은행 몇 알에 대한 명상>, < Poems of Lee Gil-Won > 등을 낸 중견시인이다.

이 시인도 나처럼 어린 시절에 개를 복달임하던 광경을 목격한 모양이다. 그 개는 다른 개가 아닌 바로 "바짓가랑이 잡으며 꼬리" 칠 만큼 자신을 따르던 검둥이였다. 그날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시인은 지금도 "40년 전 검둥이 눈물이나 떠올리며/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린다"고 말한다. 개고기를 일체 입에 대지 않는 것이다.

이길원의 시가 직접적이고 직정적인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면 오탁번의 시 '국민학교 1학년 오탁번 생각'은 자신의 감정을 되도록 배제한 채 시를 읽는 독자가 시비를 판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 국민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어미개 때려잡아서
가마솥에 삶아 먹는
어른들
-- 국민학교 1학년 하교 길

제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바둑이가
몽당연필 따라
마분지 공책 위에서
깡종깡종 나하고 논다
-- 국민학교 1학년 국어 숙제

어른들은
개고기 먹고 술에 취해
쿨쿨 잔다
-- 국어 숙제 끝

(오탁번 시 '국민학교 1학년 오탁번 생각' 전문)


오탁번의 시 '국민학교 1학년 오탁번 생각' 은 시집 <1미터의 사랑>(시와 시학사, 1999)에 실려 있다.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당선돼 문단에 나온 오탁번은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1미터의 사랑>, <겨울강> 등의 시집을 냈다.

시를 이루는 공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바뀌어 간다. 1학년 국어를 배우는 교실→ 하교길→ 국어 숙제를 하는 방안→ 숙제를 끝내고 바라본 공간의 풍경으로. 왜 어른들은 하필이면 초등학교 1학년 오탁번이 국어 시간에 "바둑아 바둑아/이리 오너라/나하고 놀자"를 배운 그날에 맞춰 "개고기 먹고 술에 취해/쿨쿨" 잤던 것일까. '국민학교' 1학년 오탁번이 배웠던 것은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삶이지만 현실은 그가 배운 것과는 정반대인 잔인한 세계였다.

그러나 시인은 조용히 풍경을 보여줄 뿐 이렇다 저렇다 일절 촌평을 하지 않는다. 시인은 어미를 잃은 줄도 모른 채 공책 위에서 '깡종깡종' 뛰노는 바둑이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노련한 수법을 쓰고 있다.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잣대가 돼선 안 된다

▲ 개고기 합법화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개는 인간에게 가장 먼저 가축으로 길든 야생동물 가운데 하나다. 살아서는 사냥용과 호신용, 애완용으로 쓰이고 죽어서는 의복과 식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한편 개가죽은 우리 전통악기인 장구피로 쓰이기도 한다. 중국 개가죽은 장구채에 빗맞기라도 하면 쉽게 찢어지고 말지만 우리나라 개가죽은 여간해선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

무엇보다 개는 충직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임실 오수에 가면 검정개 동상이 서 있는데, 거기서 조금만 골목으로 접어들면 전북민속자료 제1호인 의견비도 있다. 술 취해 길가에서 잠이 든 주인을 불에서 구하려고 개울에서 몸에다 물을 잔뜩 묻혀 와서 불을 끄다 죽은 의로운 개를 기리는 비다. 개라는 동물이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람들과 더불어 동고동락해온 애완동물이라는 점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혐오하게 내지는 꺼리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고기는 단백질을 함유한데다 콜레스테롤도 적은 양질의 육류다. 달랑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부추, 깻잎, 고추, 파, 마늘, 들깨 등을 넣어 함께 먹음으로써 영양의 균형까지 고려한 훌륭한 보양식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예전에 브리지드 바르도라는 프랑스 여배우가 '우리들의 입맛까지 관리'하려 들었던 건 아무래도 주제넘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반면 프랑스 선교사였던 달렌은 1847년에 쓴 <조선 교회사>에 "조선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다"라고 적었다. 시대야 다르지만 같은 프랑스인인데도 매우 견해가 다르다. 소나 돼지는 식용해도 문제가 없고 유독 개만 안 된다는 건 억지다.

단순히 개고기 식용만을 이유로 야만과 문명을 재단하려 해선 안 된다. 우리 조상이 아무 때나 닥치는 대로 개고기를 식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였던 유암과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는 "개날(戌日)에 개를 먹지 말 것, 개의 형태를 잘 가려서 먹을 것, 집에서 기른 것은 될 수 있으면 잡지 마라" 등 나름대로 금기를 두었으며 종교적 터부도 있었다.

덧붙이자면 난 개고기를 즐기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3~4차례 정도 먹어 보긴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옛날처럼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도 아닌데 꼭 개고기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애호하는 것이 현실이니 하루 빨리 위생적인 도살 방법과 합법적인 유통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마치려니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아버진 저승에서도 살아계실 때처럼 그렇게 보신탕을 즐기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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