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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전직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한테 질문을 받는 기분은 솔직히 괜찮았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지미 카터(Jimmy Carter) 입니다.

조지아 주 남부, 플레인스(Plains)라는 아주 작은 마을의 한 교회에서였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외국에서 온 예배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서라고 하더니 일일이 출신국가를 묻더군요.

▲ 카터 대통령의 고향 마을인 조지아 주 플레인스에 세워진 땅콩 조형물. 카터 대통령의 캐릭터 중 가장 인상적인 도톰한 입술 모양이 코믹하게 보인다.
ⓒ 김창엽
물론 질문은 그 한마디가 다 였습니다.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 사람들한테는 한 두 마디 추가 질문이 있었습니다만 아메리칸 홈리스의 경우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까, 카터 대통령은 잘 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다음 사람한테 출신국을 묻더군요.

흠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터는 아메리칸 홈리스가 유일하게 큰 호감을 갖고 있는 미국 대통령입니다. 선입견 때문인지, 가까이서 본 카터 대통령은 더욱 매력적이더라고요.

비음이 섞인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 때문인지, 강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살아있는 남부 억양마저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남부 억양은, 현 부시 대통령이 대표적인데, 외국인들에게는 뭔가 고집 세고,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거든요.

육안으로 카터 대통령의 얼굴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지만, 평소 방송을 통해서는 적잖게 그의 목소리를 접한 바 있어서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아마 살아있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 방송 인터뷰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사람일 겁니다.

방송에 자주 나오는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클린턴입니다. 둘 다 민주당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나 얼마 전 운명을 달리한 포드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출신들이 퇴임 후 인터뷰가 드문 것과는 상당한 대조를 이룹니다.

▲ 카터 대통령 부부가 예배가 끝난 뒤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김창엽
인터뷰나 대중 연설에 아주 능숙한 카터지만, 이 아메리칸 홈리스는 그의 말을 들을 때만큼은 이상하게도'정치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정치인들 입발린 소리 잘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카터의 얘기에서 보통 정치인들과는 정반대로'진솔함'같은 게 묻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아메리칸 홈리스의 착각일 수도 있고,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이날 카터는 교회 성경 공부 시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앞서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을 발간해 미국 내 유대인들의 엄청난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요. 전혀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이어 본격적인 성경공부가 시작되자, 요한, 마태, 누가 복음 등을 자유자재로 넘다들며 강독을 하더군요. 종교가 없는 아메리칸 홈리스로서는 성경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기며 쫓아다니기가 바쁠 정도였습니다.

국제 문제에 대한 논평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시 막힘이 없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계속된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의 달변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일관된 신념을 얘기하는, 가슴에서 우러나온 얘기들이었어요. 성경의 구절 구절에 신념을 녹여낸다든지, 적절히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 설득자로서의 자질도 대단했지만요.

아메리칸 홈리스가 느낀 그의 신념체계는 한마디로 '박애'였습니다. 인종과 종교, 국경을 아우르는 품 넓은 인간성이 느껴졌지요. 역시 편견일 수 있습니다만, 예배가 끝난 뒤 카터는 부인 로잘린과 함께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히 악수를 나눴는데요, 그때 눈을 보니 참 맑더군요.

▲ 예배가 끝난 뒤 기념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맨왼쪽 흰머리의 남성이 카터 전 대통령.
ⓒ 김창엽
단순히 눈의 형태가 예쁘고 밉고를 떠나, 눈빛은 상당 부분 사람의 성정을 담고 있다고 이 아메리칸 홈리스는 믿습니다. 그의 눈빛은 충분히 맑고, 더군다나 지적이었습니다.

동네 할아버지처럼 수수한 몸가짐에, 넉넉하고, 한편으로 형형한 그의 눈빛은 큰 어른을 연상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그의 신념이나 생활태도가 현직 대통령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카터는 현직 때 인기가 아주 바닥이었습니다. 오히려 전직이 된 뒤 국민들이 더 큰 박수 갈채를 보냈지요. 그러고 보면 카터는 일관되게 박애를 중심으로 한- 때로는 '인권 외교'라는 형식으로 한국의 박정희 정부 등을 압박하기도 한- 삶을 살아왔는데, 세상이 현직 때 그를 몰라본 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카터의 고향이기도 한 플레인스의 마라나사(Maranatha) 침례 교회 예배는 공인으로서 카터는 물론, 생활인으로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는'국제 집지어주기 운동'을 주도하는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향리에서 보내며, 이 곳에 있을 때면 성경 공부 선생님 일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18살 때인가부터 시작한 성경 공부 교사 일에 카터는 대통령직보다 더한 애착을 갖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블로그(http://blog.daum.net/mobilehomeless)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태그:#카터, #대통령, #인권외교, #팔레스타인,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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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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