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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명한 산에는 빠짐없이 절이 있고 그 절에 가면 어김없이 탑을 만나게 된다. 탑은 '탑파'의 줄임말이다. 탑파는 스투파(Stūpa)라는 범어를 한자어로 음역한 것이다. 탑은 부처의 몸이 머무는 장소다.

탑의 구조는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등 세 부분으로 돼있다. 우리나라에 산재한 탑 가운데서 세 부분이 모두 온전한 탑은 얼마나 될까. 기단과 탑신부까지는 남아 있는 탑이 많지만 상륜부까지 남아 있는 온전한 탑은 채 몇 개 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꼽고도 남을 정도다.

탑의 상륜부는 노반을 기초로 해서 여러 가지 장식이 수직으로 꿰어져 있는 탑의 맨 윗부분을 말한다. 상륜부의 구조는 아래로부터 인도 탑의 기단에 속하는 노반→반구형 돔인 복발 →수미산 정상의 천계를 상징하는 꽃잎을 벌려놓은 듯한 앙화→신들의 세계인 33천을 상징하는 바퀴 모양의 테 장식인 보륜→인도의 귀족계층이 쓰던 우산과 비슷한 보개→불꽃 모양의 수연→구슬 모양의 보주·용차→중심을 뚫고 세운 철심인 찰주 순서로 돼 있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탑 가운데 상륜부가 온전한 탑은 남원 실상사 3층석탑 등 5개 정도로 알고 있다(복원된 석가탑까지 포함하면 6개). 지난 7월 2일에 마곡사 5층석탑을 끝으로 우리나라 탑 가운데서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6개의 탑을 모두 돌아본 셈이 되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탑

▲ 보물 제37호 남원 실상사 3층석탑(동탑).
ⓒ 안병기
남원 실상사 보광전 앞에는 수법과 규모가 거의 같은 2개의 탑이 서 있다. 탑의 상륜부는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수연→용차→보주→찰주의 순으로 솟아 있다.

용차가 반쯤 훼손된 것을 빼고는 거의 온전히 남아 있어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이다. 탑 전체 높이 8.4m다.

▲ 국보 제 21호 경주 불국사 석가탑.
ⓒ 안병기
석가탑은 육중한 이중 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쌓아올린 통일신라 3층 석탑의 전형이다. 상륜부만 빼놓고는 큰 손상없이 원형을 잘 간직해 온 석탑이다. 1966년 9월 도굴범에 의해 석가탑이 훼손되자 10월에 전면적인 해체·수리가 이루어졌는데 상륜부는 남원 실상사 3층석탑의 상륜부를 그대로 본떠 '복원'했다.

석가탑보다 약 100년 가량 뒤에 만들어진 실상사 3층석탑을 따르다 보니 약간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륜부까지 제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석가탑을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탑의 전체 높이는 8.2m다.

▲ 실상사의 부속암자인 백장암 3층석탑(국보 제10호).
ⓒ 안병기
백장암은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맨 처음 문을 연 실상사의 부속암자이다. 3층석탑은 암자 입구에 석등과 함께 서 있다.

몸돌 각 면마다 보살상과 사천왕상, 주악천인상과 천인좌상 등이 아름답게 조각된 걸작이다. 별다른 손상 없이 온전한 모습이지만 1980년 도굴꾼에 의해 파손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전체 높이는 약 5m이다.

▲ 보물 제169호 문경 봉암사 3층석탑.
ⓒ 안병기
구산선문 중 하나인 문경 봉암사 금색전 앞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탑의 상륜부가 석가탑과 닮은 꼴이라서 창건 당시 (헌강왕 5년. 879)에 세운 것이라는 설도 있고 보개의 귀마다 꽃을 새긴 점이 고려시대에 유행한 석조부도의 지붕과 비슷하다 하여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 탑이 금색전 앞에 서 있는 것은 봉암사 초창기 금당이 이곳에 자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전체 높이 6.3m다.

▲ 국보 제48호 오대산 월정사 8각9층탑.
ⓒ 안병기
월정사 팔각구층탑은 적광전 앞뜰에 서 있다. 다각다층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탑으로 보인다. 상륜부는 노반→복발→앙화→보륜까지만 석재이며 보개부터는 금동이다. 탑의 높이는 약 15.2m로 현존하는 다각다층탑 중에서는 가장 높다.

고구려의 탑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탑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각종 문헌은 고구려 탑의 특징을 8각의 평면과 5층 이상의 다층 구조라고 전한다. 어쩌면 월정사 팔각구층탑은 고구려 탑의 형태를 계승하려는 의도로 조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 보물 제799호 공주 마곡사 5층석탑.
ⓒ 안병기
공주 마곡사 5층석탑은 대광보전 앞마당에 서 있다. 이 탑은 기단부부터 상륜부 직전까지는 고려시대 탑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륜부는 우리나라 일반적인 탑과 달리 라마교 양식을 모방한 금속으로 된 라마탑 모양이다. 그러므로 마곡사 5층석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에 조성된 탑으로 보인다.

언젠가 사진으로 본 적 있는 1271년에 만들어졌다는 중국의 대표적인 라마탑인 북경 묘응사 백탑(白塔)의 축소판을 방불케 한다. 탑의 전체 높이는 8.7m다.

이상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5개의 탑을 살펴보았다. 탑의 높이를 순서대로 배열하면 백장암 3층석탑→봉암사 3층석탑→ 석가탑→ 실상사 3층석탑→ 마곡사 5층석탑 →월정사 8각9층탑 순이다. 이 가운데 상륜부가 금속 재료로 된 탑은 월정사와 마곡사 탑 등 두 탑이다.

아름다운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하여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일종의 관용구처럼 회자하고 있다. 민족의 유산인 문화재를 바라보는 데 있어 '아는 만큼 보'거나 '아는 만큼 느끼'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람직한 일은 없을 터이다.

그러나 지식욕이나 느낌의 향유에서 그치고만다면 그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다. 아는 만큼 보거나 느끼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경지로까지 건너뛰지 못한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탑은 우리나라 문화유산 가운데 중요한 유산이다. 우리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탑의 형태를 보고 우리 선조의 미의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전시대가 남긴 전통이 어떻게 재창조되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재창조된 탑을 보고 거기에 곁들여 있을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동기를 구명해냄으로써 그 시대를 살았던 선조의 의식과 시대정신을 유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월 속에서 풍찬노숙하면서도 제 아름다움을 끝까지 간직해 준 5개의 석탑들에게 새삼스럽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태그:#탑, #상륜부, #실상사, #석가탑, #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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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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