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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직접 죽여 그들의 몸을 잘라 장식을 한 뒤 사진을 찍는 나탈리아 에덴몬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서울 강남 소재의 한 화랑 전경. 담벼락에 걸린 현수막은 ‘불법 옥외 광고물’ 신고를 받고 구청에서 철거했으나, 6일 저녁 확인한 바로는 다른 작품 사진을 담은 현수막을 새로 걸었다고 합니다. 에덴몬트의 작품 사진들은 널리 광고해줄만한 것이 못되어 기사에는 싣지 않겠습니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끔찍한 동물학대 사진들이 7월 11일까지 서울 강남의 한 화랑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나탈리아 에덴몬트라는 여성작가(37)가 토끼를 약물로 죽여서 목을 잘라 리본 장식을 한 후 화병에 꽂거나, 닭이나 새의 눈알을 뽑아 난초 꽃에 붙인 후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고양이나 쥐, 물고기, 나비 따위도 재료로 쓰고 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구소련 체제를 겪은 후 스웨덴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5번이나 이혼하는 등 거듭된 불행으로 '정신세계가 불안한 작가'라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2003년 스톡홀름에서 첫 전시회를 열 때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의 캠페인 코디네이터가 5일 밤낮으로 철야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시회 때마다 동물학대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작품이 매진되어, 작가는 더욱 자만해져 있는 듯합니다.

정신세계가 불안한 작가의 엽기적인 전시회

국내 동물보호단체는 그의 작품과 그 전시를 기획한 화랑이 논란을 통해 주목받아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의 관심이 늘어나지 않도록 시위와 같은 방식은 삼가고, 그 전시회에 대해 항의해 줄 것을 각계에 호소하며 화랑 앞에서 조용히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동물학대와 생명의 무참한 남용임이 틀림없는 이런 전시회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성사된 된 것에 부끄러움과 치욕을 금할 길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꽃을 꺾는 것과 토끼를 죽여 목을 자르거나 새의 눈알을 뽑아내는 엽기적인 행위가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선 예술을 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여자로서의 모성애부터 되찾아야 합니다. 그 전시물들은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작가의 병든 정신의 반영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 작가에게는 전시회보다 정신과 상담이 더 시급합니다.

그는 작품을 위해 동물을 직접 죽여 머리를 자르고 장식을 하여 꽃병에 꽂는다고 합니다. 설사 이미 죽은 토끼를 주워와 머리를 잘랐거나 죽은 새의 눈을 뽑아냈다고 해도, 이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을 상실한 것입니다. 죽은 토끼의 머리와 죽은 새의 눈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며, 여러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도록 이상한 화병에 그것도 리본을 매서 모욕을 주며 꽂아 놓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 “할머니 댁 가는 길에 생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어요. 쥐약 같은 걸 먹고 거품을 토하다가 죽었나 봐요. 가여워서 할머니 댁 담장 옆에 묻어 줬어요.” 한 여중생이 흙을 파고 쥐를 묻어준 자리. 에덴몬트는 물론 쥐도 이용합니다.
ⓒ 이화주
끔찍한 동물학대에 불과한 그와 같은 전시물을'독특한 작품'이라며 전시를 하고 비싸게 주고 사서 건다는 것은 이천 시민들의'돼지 능지처참 퍼포먼스'를 보고 박수치며 웃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의 작품에 대한 대부분의 네티즌의 반응을 보면 '예술이라 할 수 없다'는 의견과 '의미 없는 구역질나는 행위'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는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입니다. 그의 작품을 '독특한 예술'이며 '시니컬한 풍자'라고 소개하는 비평가들은, 그런 사진의 전시와 만인들에게 어린 돼지를 찢어 죽이는 행위를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과연 무엇이 다른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그는 이천시민이 '돼지 퍼포먼스'를 자행할 때 가지고 있던 생각처럼,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 일이 대수냐'라고 생각하며 그런 흉악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고기를 먹는 행위가 그렇게 흉악한 일이라고 여기면, 차라리 고기를 안 먹거나 덜 먹으면서 축산방식을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예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고기 먹는 거나 다를 바 없다며 동물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재료로 삼는 일은 결코 아름답지도 않으며,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어 창조활동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세계일보>의 편완식 문화전문기자는 그의 작품이 '고기를 먹고 가죽을 애용하고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을 써온 우리의 실상'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에덴몬트가 '동물을 통한 독성실험의 결과가 인간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5~25%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요? '동물실험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고 유지하기 위한 재원낭비일 뿐, 거의 불필요할 정도로 무효하고 인간에게 위험하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 걸까요? 정말 그가 동물실험과, 공장식 축산과, 모피와 가죽 생산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그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의 목을 자르는 것과 꽃꽂이를 위해 꽃을 꺾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합니다. 아직까지 통증을 느끼는 고등신경체계는 동물에서만 확인되었습니다. 식물은 동물에게 먹힘으로써 씨앗을 퍼뜨리고 번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잔혹행위는 결코 예술일 수 없어

'동물의 몸을 자르는 것과 꽃을 꺾는 것이 다를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은, 수많은 보통 사람들도 꽃꽂이를 하듯 동물을 죽여 작품을 만들어도 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예술행위는 인정받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니까요. 동전 한 닢이면 병아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라는 우리의 어린이들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병든 토끼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생명을 끝내기 위해 수의사의 지도를 받고, 사람들이 먹지 않는 머리와 눈 등을 사용했다'는 등 스스로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동물의 몸을 가지고 꽃꽂이처럼 사용하는 것이 사회에 미칠 폐해에 대해 작가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걸까요?

수많은 나비의 날개로 꽃잎을 구성한 작품들도 철부지 어린 아이의 '금지된 장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거늘, '독특한 발상'이며 '위선적인 인간사를 꼬집는' 풍자적 작품이라며 예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요?

▲ 어버이들은 자신의 피붙이를 두고 곧잘 '토끼 같은 자식'이라고 말하지요. 새끼와 어미가 함께 있는 토끼들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부산 해운대 근처.
ⓒ 백희정
'생명과 환경을 노래하는 가수' 박창근씨는 에덴몬트의 사진전을 기획한 박여숙 화랑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적어도 예술가라면 나와 상대방 그리고 이 세상과 나, 이 우주와 나의 관계 정도를 먼저 처절하게 숙고한 뒤 작품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같은 창작활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쭈어봅니다."

그렇습니다. 인위적으로 죽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죽은 동물의 시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지라도, 그 결과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숙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화랑 측은 지금이라도 그 전시회를 폐쇄하고 홈페이지 관련 내용들을 삭제하기 바랍니다. 아울러 장삿속만 앞세운 이번 전시기획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국민들의 정서를 순화할 수 있는 건강한 작품들로 '속죄전'을 열기 바랍니다. 인터넷에 그의 작품 사진을 올려놓은 모든 매체와 카페, 개인 블로거들도 그 사진들을 내리기 바랍니다.

▲ 에덴몬트의 작품을 ‘독특한 예술’이며 ‘시니컬한 풍자’라고 소개하는 비평가들은, 그런 사진의 전시와 만인들에게 어린 돼지를 찢어 죽이는 행위를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과연 무엇이 다른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 다음블로그뉴스 몽구
예술이라는 허울에 속아 그의 작품에 대해 '현실에 대한 반어적 은유'라는 식의 호평을 올려놓은 분들도 모두 거두어 주세요. 만약 에덴몬트가 '돼지 능지처참 퍼포먼스'처럼 관객들 앞에서 직접 약물을 사용해 토끼를 죽이고 목을 잘라 꽃병에 꽂는 퍼포먼스를 한다면, 그에 대해서도 호감을 표현하며 독특한 풍자 예술이라고 하시렵니까?

그런 퍼포먼스는 미친 짓이지만 사진은 예술이 되나요? 에덴몬트 사진전에 취재 나왔다는 한 총각이 그랬다는군요. 자기는 토끼를 키우지만, 그 사진들은 그저 예술일 뿐이라 이해한다고. 또 예술이라며 보여주는 동영상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갑자기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 생각나네요.

화랑 고객과 콜렉터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그의 작품들을 구매하지 말고, 혹시라도 이미 구매나 예약을 했다면 취소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 박여숙 화랑에 항의해주세요! 간곡한 편지도 보내주시고요.(02-549-7574~6, 팩스 02-544-2500, parkryusook@paran.com) 이런 작품 행위와 전시 기획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주세요. 아무쪼록 저의 호소를 외면하지 마시고, 이런 잔혹한 것들은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 되어 주세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킨더슐레 이촌원 원장 김영미씨의 호소문

▲ 병아리들이나 메추리들이 어린 아이들의 손 안에서 잠시나마 움직이는 장난감이 됩니다.
ⓒ김애리나

저는 유아교육기관의 운영자인 동시에 교육자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관람할만한 전시회를 찾던 중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회를 발견했습니다.(중략)

혹여라도 아이들이 이런 전시를 보게 된다면 어찌할까요? 호기심 많고, 상상력 풍부하며, 스펀지처럼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여과 없이 빨아들이듯 배워나가는 아이들이 이 전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인간이 원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생명체일지라도, 어른들(작가)이 그랬던 것처럼 이용해도 된다.'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가뜩이나 한국사회에 생명경시의 풍조가 만연되어, 길거리에서 길냥이들이나 유기견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을 재미삼아 키우다가 귀찮아지면 죄의식 없이 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보게 됩니다.

누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 생명의 귀중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되겠습니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어른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후략) /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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