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프로축구 출범과 함께 포항제철이 미드필더 세르지오 루이스 코고와 호세 로베르트 알베스를 브라질로부터 임대해 온 이후 한국 스포츠의 외국인 선수 역사도 어느덧 25년째가 되었습니다. 프로축구를 시작으로 90년대 중반 프로농구, 프로야구가 차례로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했고, 출범 3년째를 맞는 프로배구도 외국인 선수들이 코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땅을 밟았던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 중에는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는 선수도 있었지만 뛰어난 실력과 성실한 자세를 두루 갖춰 국내의 어떤 스타 선수 못지 않게 많은 사랑을 받는 외국인 선수도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 스포츠 외국인 선수 시대 25년'을 맞아 한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외국인 선수를 재조명 하는 기획을 6-7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한국 선수들이 수준 높은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이 강하다 보면 때로는 한국 선수와 경쟁하는 선수나 팀은 본의 아니게 국내팬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한다. K-1 무대에서 최홍만·김경석·김민수를 차례로 연파하며 '코리안 킬러'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마이티 모가 그렇고,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게 유난히 강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그렇다. 박세리보다 언제나 한 발 앞서 나갔던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도 마찬가지다.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38·미국 출신)도 같은 이유로 지난 해 국내 팬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다. 작년 시즌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국민 타자'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을 밀어내고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우즈는 올 시즌에도 홈런 선두를 달리며 다소 부진한 이승엽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지금은 얄밉기 짝이 없는 우즈지만, 5년 전만 해도 그는 국내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외국인 선수였다. 프로야구 최초, 'MVP 트리플 크라운'
 1998년 결성된 '우동수 트리오'는 3년 동안 무려 271홈런을 합작했다.
ⓒ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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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구단이 외국인 선수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자유계약 제도로 바뀌었지만, 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8년에는 선수가 직접 참가 신청을 하면 구단이 그 선수들 중에서 순서대로 지명을 하는 '트라이 아웃' 제도였다. 1997년에 열린 첫 번째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우즈는 그 해 뽑힌 14명의 선수 중 11번째로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다. 타고난 힘은 인정받았지만 '정확성이 떨어지고 수비 실력도 평범한 수준'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우즈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이유였다. 국내 무대 데뷔전에서 홈런포를 쏘아 올렸지만 이후 8개의 안타를 때려내려면 9개의 삼진이 필요했던 전형적인 '공갈포'란 것이 밝혀졌다. 그것이 7개 구단(쌍방울은 재정 문제로 지명 포기)의 순서가 모두 돌 때까지 아무도 지명하지 않았던 우즈의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당시 OB의 사령탑이었던 김인식 감독(현 한화 이글스)은 우즈를 중심 타선에서 내리지 않았고, 국내 무대에 적응을 마친 우즈는 성적으로 보답했다. 4월에 4개의 홈런에 그친 우즈는 5월 6개, 6월부터 8월까지는 각각 7개의 아치를 그려내며 당당히 홈런 부문에서 선두를 달렸고, 내친 김에 장종훈(한화)의 신화에 도전장을 던졌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기세를 올린 우즈는 9월에도 10개의 홈런을 때려 기어코 장종훈이 1992년에 기록한 41홈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10월 1일 잠실 현대 유니콘스전, 우즈는 현대 선발 정민태의 공을 받아쳐 외야 상단을 때리는 대형 홈런을 날리며 한국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2관왕에 오른 우즈는 그 해 18승을 올린 LG 트윈스의 '노송' 김용수를 제치고 프로야구 MVP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외국인 선수가 MVP에 오른 것은 우즈가 유일하다. 우즈는 1999년 OB가 두산으로 바뀐 이후에도 매년 3할을 오르내리는 타율과 30홈런 100타점 이상을 책임지며 '우동수 트리오'의 선봉장으로 활약했고, 2001년에는 올스타전 MVP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391(23타수 9안타) 4홈런 8타점을 몰아치며 한국시리즈 MVP에 등극, 프로야구 최초로 'MVP 트리플 크라운(정규리그, 한국시리즈, 올스타전)'을 달성하기도 했다. 비록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들에 비해 이름값은 떨어졌지만 우즈는 한국 야구의 수준을 우습게 보던 일부 외국인 선수들과는 달리 한국의 야구와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우려 했고, 우즈의 그런 진지한 자세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이후에도 빛을 발했다. 국내 투수를 보호하던 외국인 1루수
 우즈는 국내에서 활약한 5년 동안 174홈런 510타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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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가 베어스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은 단순히 뛰어난 성적으로 팀 전력에 보탬이 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낯선 외국인 선수 우즈가 베어스팬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사건은 1998년 5월 7일 LG와의 라이벌전에서 일어났다. 당시 OB의 불펜 투수 류택현(현 LG)이 LG의 간판 타자였던 김동수(현 현대 유니콘스)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졌고, 류택현의 투구가 '고의'라고 판단한 김동수는 크게 흥분해 마운드로 뛰어 나갔다. 금방이라도 난투극이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1루 수비를 하고 있던 우즈는 마치 미식축구에서 태클을 하듯 쏜살같이 달려와 마운드로 올라오던 김동수의 허리를 감싸고 나뒹굴었다. 투수와 타자의 빈볼 시비에서 왜 1루수가, 그것도 외국인 선수가 앞장서서 난투극에 끼어든 것일까? 우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체격이 좋은 1루수는 투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말해 그 행동이 김동수에 대한 '공격'이 아닌, 류택현을 위한 '방어'였다고 해명했다. 자신이 흥분한 것도 아니었는데 구설수에 오를 것을 각오하고 곤경에 처한 투수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던 우즈. 그 때부터 우즈는 팬들로부터 돈을 받고 고용된 '용병'이 아닌 베어스의 '식구'로 대접받았다. 우즈의 아내 셰릴 블랙도 잠실야구장의 유명 인사였다. 셰릴은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남편을 응원해 중계 카메라의 단골손님이 됐고, 우즈 역시 홈런을 칠 때마다 아내를 위한 세레모니를 선보이며 금슬을 과시했다. 한국에서 5년간 생활하면서 한국인의 정을 흠뻑 느낀 셰릴은 남편이 일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이 결정된 후, 한국을 떠나면서 공항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두산의 외국인 선수 복, 그 시작은 타이론 우즈 두산은 외국인 선수 복이 많기로 유명하다. 타이거즈에서 버림받은 게리 레스는 원년의 박철순 이후 22년 만에 베어스 소속의 다승왕이 됐고, 일본으로 떠난 레스의 추천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맷 랜들 역시 3년째 마운드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다음날 완봉승을 기록한 다니엘 리오스의 프로 정신은 국내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정도다. 두산의 이 모든 복은 바로 '흑곰' 타이론 우즈로부터 시작됐다. 비록 지금은 이승엽의 경쟁자로 국내팬들에게 본의 아니게 미움을 받고 있지만, 엄청난 괴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우즈의 홈런포는 단순하고도 강렬했던 그의 응원 구호("우~~~즈, 우~~~즈")와 함께 야구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BOX1@

프로야구 타이론 우즈 두산 리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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