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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등나무
ⓒ 하정필
"부산에 천연기념물이 있다고?"

처음에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부산에 천연기념물이 있다니, 그것도 심심치 않게 가보았던 범어사에 말이다. 부산의 천연기념물이라니, 비밀장소를 발견한 아이처럼 혼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벼루기를 며칠, 드디어 범어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지나기 전, 왼편에 '등나무군생지 관찰로 안내'라는 반가운 표지판이 보였다.

설렌 탓일까? 아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 사이로 등나무가 꼬불꼬불 생각의 나래를 펼쳤다.

▲ 천연기념물 등나무군생지로 들어가는 입구
ⓒ 하정필
등나무는 원래 집단으로 서식하는 식물이 아니다. 등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어 서식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그래서 범어사 입구의 등나무 군생지는 그 생물학적 연구가치 때문에 1966년에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되었다.

등나무는 등, 참등이라고 불리며 콩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성 식물이다. 여름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기 위해 심기도 한다.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꼬여 감으며 자라며 10m 이상 자란다. 봄에 보랏빛 꽃을 피운다.

최근에는 정원수 환경미화 등 조경의 소재로 많이 쓰이고 있다. 범어사 군생지에는 100년 이상의 등나무도 있고, 약 6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서식하고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 등나무군생지로 들어서는 나무다리
ⓒ 하정필
2년 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올랐다. 히말라야라고 하면 천지가 하얀 눈으로 뒤덮인 곳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오르는 길은 중간중간에 정글이 나타난다. 히말라야산맥 속의 정글이란 고도가 낮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특징이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범어사의 등나무군락지로 들어서는 순간 안나푸르나의 정글이 떠올랐다. 부산이라는 도시에는 만나볼 수 없었던 별천지였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여기가 부산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825m의 정글 속으로 빠져들었다.

▲ 정글을 연상시키는 등나무 가지들
ⓒ 하정필
좀 더 멋진 등나무를 찾아 고개를 문득문득 들 때마다 코로 스며드는 편백나무의 아련한 향기가 절로 미소를 자아낸다.

서로 그토록 절실하게 꼬여있는 모습 때문일까? 등나무는 부부 사이를 좋게 한다는 속설이 있단다. 그래서 등나무 잎을 삶아 마시면 모든 불화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단다. 또 등꽃을 말려 베갯속을 만들어 베면 평생 금슬이 좋다는 말도 있다.

마침 오월이라 등나무 꽃이 활짝폈다.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주위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자꾸만 멈추었다.

▲ 등나무꽃
ⓒ 하정필
▲ 등나무꽃
ⓒ 하정필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속한 사회는 생각과 마음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있다는 걸 깨달아 간다.

살아가며 갈등 없이 살 순 없을까? 한자풀이를 하면 칡 갈(葛), 등나무 등(藤)이다. 등나무가 이리저리 꼬여 있는 모습을 옛사람들도 유심히 보아왔던 모양이다. 등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 복잡한 세상사가 떠오른다.

100년은 됨직한 제법 굵은 등나무는 허벅지 굵기나 된다. 아이 손목 굵기부터 어른의 허벅지 굵기는 될 것 같은 수많은 등나무들이 얽히고설킨 모습을 보니 우리 삶도 내 마음도 꼬여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등나무를 보니 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 이리 저리 꼬인 등나무
ⓒ 하정필
▲ 꼬인 등나무
ⓒ 하정필
평일에 찾은 등나무 숲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800미터 남짓 되는 산책로를 반쯤 걷다 보니 도시에서 쌓인 피로가 말끔히 풀렸다.

천연기념물인 등나무 때문일까? 도심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적한 숲으로 들어왔기 때문일까? 머릿속은 명경처럼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등나무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

등나무는 혼자 하늘로 자라는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나무를 감고 하늘로 자란다. 그러다 보니 등나무에 감긴 다른 나무들은 숨이 막혀 죽어간다. 나도 부지불식간에 내가 살기 위해서 가족을, 이웃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삶에 방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중간중간에 탐방객을 위한 의자가 보인다. 숲에 들어오자마자 피로가 가시고 마음은 날아갈 듯해 굳이 의자에 앉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눈을 감고 10분이라도 저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올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 햇살 비친 등나무
ⓒ 하정필
그동안 바삐 살아가며 길가에 떨어진 휴지처럼 무심하게 대했던 등나무가 갑작스레 특별한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천연기념물을 한 번 보기 위해 도심의 숲을 찾은 발걸음은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멈춰졌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도 숲이 있었다. 숲에도 갈등과 이해, 희생과 생존, 공존을 향한 몸부림들이 있었다.

하지만 숲은 도시와 달리 조화와 평화가 느껴졌다. 문득 등나무가 내 삶의 자화상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살기 위해서 가지를 뻗치는 등나무를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얼마나 더 가지를 뻗어야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옛날에는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임금님께 진상을 하기까지 했다니, 등나무에는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떠나 시간이 멈춰진 숲 속에서 등나무를 만나보는 일은 분명 특별한 일임이 분명하다. 혹시라도,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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