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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에 비해 홈리스는 날씨 변화에 훨씬 취약합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고생입니다.

이 아메리칸 홈리스의 경우는 차 안이 침실이자, 주방이요, 주요 활동공간인 탓에 그래도 더운 쪽보다는 추운 쪽이 나았습니다. 대부분의 모바일 홈리스(Mobile Homeless)들 또한 마찬가지로 생각할 겁니다.

한 예로 차 밖 기온이 섭씨 12∼13도에 불과하더라도, 햇빛이 쨍쨍하면 차 안의 온도는 금세 30도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몸 구석구석에 땀이 차고, 그에 따른 불편한 기분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루 평균 예닐곱 시간씩 운전대를 잡다 보면 어깨 죽지가 종종 뻐근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때면 우리나라의 목욕탕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메리칸 홈리스는 원래 목욕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하지만 정처없이 대륙을 떠돌다 보니 땀 냄새가 전신에 계속해 축적되고, 그래서 보름에 한 번꼴 정도로 샤워라도 하고픈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시다시피 공중목욕탕 개념이 거의 없는 곳입니다. 공중목욕탕 비슷한 것으로 대신 스파(Spa)라는 게 있는데, 이게 덜렁 몸만 씻는 데라기보다는 마사지를 받는 등 고급 휴식 공간의 성격이 강한 곳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스파가 눈에 띄어도 호주머니 사정이 서민층 이하인 홈리스로서는 언감생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데 돈이 없어 스파 출입을 못하는 것까지야 내 사정이니까 할 말이 없지만, 스파 업소들이 내건 광고 중 상당수에서 발견되는 '아시안 마사지(Asian Massage)'라는 문구를 보면 씁쓸함을 넘어서 화가 치밀기까지 합니다.

'아시안 마사지'에 숨은 뜻

▲ 네바다주 일라이(Ely)시 인근에 세워진 스파 광고판.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까지 아시안 마사지 영업이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김창엽
시애틀에서 주로 고속도로를 이용해 솔트레이크를 거쳐 네바다의 일라이(Ely)라는 왕 시골 마을을 지나칠 때였습니다. 시애틀에서 샤워를 한 뒤 열흘 가량 지났던 시점 같은데요, 시골 들판에 나 보란듯이 서 있는 스파 광고판에 아니나 다를까 '아시안 마사지'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고 들어 있더군요. 나신의 아시안 여성을 연상시키기 충분한 윤곽의 실루엣 그림과 함께요.

살짝 기가 막혔습니다. 일라이라는 이 마을은 그레이트 베이신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가장 큰 사막의 한복판에 있는 외딴 소도시입니다. 가까운 유타주의 솔트레이크까지도 차로 4시간가량 걸리는 아주 외진 곳이지요. 이런 데까지 아시안 마사지를 앞세운 스파 업소가 침투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당연히 화도 났고요.

짐작하시겠지만, 아시안 마사지라는 것은 미국에서는 반쯤은 매춘과 동의어입니다. 맨살에 하는 효과 높은 아시아 방식의 마사지가 본래 의미는 실종된 채, 음란의 뉘앙스를 띄고 통용되고 있는 겁니다.

백인 중에서도 앵글로 색슨 중심인 미국 사회에서, 스패니시(Spanish)라는 단어는 드물게 이류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시안이란 말은 사전에서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이지만, 미국의 일탈된 성문화 등으로 인해서 스패니시 수준을 넘어 삼류라는 의미를 내포해 가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 할 것 없이 성과 관련된 단어들은 다른 단어에 비해 이미지 전파력이 강한 경향이 있지요. 이런 단어는 설령 한두 단어에 불과할지라도 보통 단어들보다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파고듭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 가운데, 나라 밖 사정에 유독 어두운 국민들이 많기로 유명한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특히 이런 단어의 악영향이 너무 큽니다.

더구나 이 일라이의 스파 광고는 간판 아래쪽에 쓰인 '트럭 파킹(Truck Parking)'이라는 문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중간 이하 소득층 고객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됩니다. 미국 국민 중에서도 중간 이하 소득층의 경우, 제한된 해외 경험과 정보 접근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이 부족한 편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블로그(http://blog.daum.net/mobilehomeless)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태그:#아시안, #독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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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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