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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짬을 내 듣는 아름다운 음악, 좋아하는 시 한 수야말로 삶의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여기다 일상에서 벗어나 가까운 산사를 찾아 자연의 싱그러움을 맛본다든지, 읽고 싶었던 책 속에 빠져 진한 감동이 파도처럼 두근거림으로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곧 행복이요, 삶의 환희가 아닐까?

책에 얽힌 이야기야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만은 나의 경우 감동이 아닌 삶을 바꿔놓은 혼자만의 비밀이 있다.

범생이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 교과서 수준의 세계관이 인생의 전부다. 혹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얻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도 하고 연수를 통해 변화된 세계를 이해할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생활양식이나 삶의 방향을 바꿔놓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특히 교사의 경우 전문영역에서 새로운 눈뜸과 그로 인해 인간관계나 세계관 그리고 인권의식이나 민주의식까지 달라졌다면 이는 한 개인의 중생이요, 내면세계의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이것도 책 한 권으로 그런 변화를 겪게 됐다면 독서의 중요성을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사범학교가 아니라 비사범계로 교사가 된 나의 경우는, 교사로서의 생활은 늘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원죄의식을 안고 살아야 했다. 특히 경제학을 전공하고 일반사회교사 자격증을 받아 세계사를 가르칠 때의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손에 잡힌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이라는 책 한 권. 이 책이야말로 나의 삶의 송두리째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400쪽이나 되는 책을 하루 만에 그것도 읽으면서 메모지에 옮겨 적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회환과 부끄러움에 몸을 떨기도 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평면적인 세계관으로 사람을 본다거나 세상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가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를 지식으로 알고 가르치던 무지와 부끄러움으로 온몸을 떨어야 했다. 똑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양반의 눈으로 보느냐 아니면 평민이나 노예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비친다는 이 평범한 진리조차 깨닫지 못하고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세계사를 가르쳐 왔으니 그 부끄러움이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인도의 독립운동가요, 초대 총리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딸에게 전해주는 삶의 안내서에 적힌 그의 사상은 한 교사의 인생을 바꿔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계관이 달라진 교사가 부끄러움을 씻는 길은 책에 빠져 속죄하는 길뿐이었을까? 이 책을 계기로 학창시절 읽지 못했던 사회과학에 새로운 눈뜸으로써 개인은 물론 교사로서 새로운 삶의 길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중생(rebirth)이라 한다든가?

사관(史觀)도 없이 가르쳤던 세계사 시간이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라는 가치관에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제자들에게도 그 길을 안내할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역사의식을 갖춘 교사로서 제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행복이요, 제자들에게는 더 없이 환경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후 또 하나 덤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겼다는 점이다. 우연히 <오마이뉴스> 책동네에서 원하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얘기를 듣고 재빨리 가입하고 책을 골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름대로는 자신에 찬 선택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르크스와 만남의 감동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나에게는 수학자요, 물리학자로서가 아닌 철학자로서 데카르트를 기대했지만 나의 예측은 어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저자나 출판사, 자신의 전공영역을 고려한 책의 선택이라는 나 나름의 기준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나의 오만이랄까, 경박함으로 위대한 천재와의 조우(遭遇)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겨레 출판사에서 숙고 또 숙고해 선택해 발간한 책인데, 나의 자연과학에 대한 무지로 데카르트라는 역사적인 위인과 만날 행운은 끝끝내 얻지 못하고 만 것이다.

오히려 그분의 철학세계를 파헤쳤다면 아둔한 머리로 사전을 찾는 한이 있더라도 이해하려고 해보았겠지만 자연과학의 세계, 수학의 세계란 나와는 피안의 벽일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역사를 바꿔놓은 위대한 천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미르 D. 악젤이라는 또 다른 천재 또한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은 책장을 덮고도 그대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사 편력 1 -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 주는 세계사 이야기, 개정판

자와할랄 네루 지음, 곽복희 외 옮김, 일빛(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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