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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산의 아리랑> 음반 표지
ⓒ 신나라
"떠나는 님은 잡지를 마라
못보다 다시 보면 달콤하거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에 물새는 못사네."


위는 혁명가 김산이 불렀던 '아리랑연가'이다.

아리랑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혁명가 김산은 말한다.

"조선에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오랫동안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극동에서의 이 전쟁이 마침내는 조선을 해방시키게 되지 않을까? 나는 해방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내 조국을 위한 활동을 재개하여 조국의 전진을 도와야만 한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순 신나라 회장은 "김산은 중국의 혁명 과정에서 조선 청년으로서 '작은 약소국 조선이 흘린 피가 결코 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금(like salt in water)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중국 혁명의 성공이 곧 약소국 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믿고 활동한 삶이었기에 아리랑의 힘을 절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만큼 일제강점기를 처절하게 일제에 대한 항쟁으로 살아갔던 김산에게 <아리랑>은 희망이요 삶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님 웨일즈가 김산을 대담하여 쓴 < Song of Ariran >에는 그런 내용들이 실려 있다. 이 외침을 책갈피 속에서 꺼내 오늘에 되살려 이름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함께 그들의 희생정신과 저항·연대·해원상생의 아리랑 정신을 되살려 내기 위해 신나라(회장 김기순)는 음반 '김산의 아리랑'을 펴냈다.

김산과 아리랑

▲ 1930년의 김산. 중국 공안국에 체포되어 일본 측에 넘겨진 뒤 천진 주재 일본 영사관에서 찍은 사진
ⓒ 신나라
김산은 1930년대에 중국혁명의 성공만이 약소국 조선의 해방이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중국과 중국 공산당에서 '불화살처럼 삶을 산' 인물로, 아리랑의 저항정신과 상징성을 깊이 인식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1930년 11월, 장개석의 국민당 경찰에 체포되어 전향 거부자로 일본 영사관을 거쳐 경찰에 넘겨졌다. 이후 김산은 이듬해 4월까지 6달 동안 감옥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바로 이때 생애 최고의 공포와 회한의 시간을 보내며 감방의 벽에 이렇게 썼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이렇게 아리랑고개를 죽음의 고개로 인식하고 자신과 같은 혁명가의 죽음이 없고선 결코 조국이 해방될 수 없음을 알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주저하지 않음'은 바로 변절이나 도피나 자살과 같은 방법의 목숨 구걸은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본 감옥에서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과 심리상태에 대한 압력을 최악의 방법으로 실험 받았다. 나에게 그 이상의 어떤 시련이 또 있었겠는가?"

그는 그런 상황에서 아리랑을 불렀다고 했다. 이는 마치 "사자밥을 이마에 달고 뗏목을 탄다"는 강원도 남한강 뗏꾼들이 뗏목 위에서 공포를 잊으려고 아리랑을 불렀듯이 김산 역시 그런 심정으로 아리랑을 불렀을 것이다.

<송 오브 아리랑(Song of Arirang)>

▲ 님 웨일즈가 쓴 책 표지
ⓒ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그런 김산의 아리랑은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며 역사가인 님 웨일즈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김산은 마지막 유언처럼 자신의 혁명 역정을 2달 동안 22회에 걸쳐 구술해 주었고, 님 웨일즈는 이를 7권의 공책으로 받아 적은 것이다. 이 기록이 바로 바로 뉴욕 '존 데이' 출판사에서 1941년 펴낸 < Song of Ariran >이다.

하지만 정작 김산의 고국인 한국에서 출간된 것은 1984년이 돼서이다. 조우화씨의 번역으로 김산과 님 웨일스의 대화 47년 만에 한글판으로 햇빛을 보았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조선과 수만리 밖의 중국 광동에서 한 조선 청년이 조선혁명운동을 하다 아리랑을 부르며 산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산은 열다섯 나이에 조국을 떠나 일본으로, 만주로, 상해로, 북경으로, 광동으로, 연안으로 중국을 헤매며 "혁명투쟁의 현장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분단국가의 남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당시의 동아시아는 '한 세대 동안에 역사가 천 년이나 흘러가는 곳'이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33살 청년은 "내 인생에 행복했던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라고 했는데, 그를 대담한 님 웨일즈를 매료시켰다. 그것은 김 산의 폭넓은 체험, 특히 중국혁명에 투신했으면서도 중국공산당에 의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국외자로서의 위치에서 얻은 성찰과 고통이 의롭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 구비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으리니."


역시 김산이 부른 이 '아리랑옥중가'를 보면 그가 아리랑을 열두 고개로 끝내지 않고, 승리의 열세 고개를 넘으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김산에게 있어서 '아리랑'은 절망이 아니라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희망의 끈이었을 게다.

음반은 김산의 연보를 비롯한 자세한 해설서가 들어있고, 영문으로 된 원문과 번역문이 함께 실려 있어 알차다는 느낌을 받는다.

음반은 맨 처음 "아리랑, 심금을 울려주는 선율(Arirang, The Heart-String Ringing Melody)"이라는 김산이 정의하는 아리랑을 들려준다. 그리고 아리랑은 사형수의 노래였다는 것과 아리랑은 죽음의 노래가 아니라 삶의 노래임을 말한다.

▲ 중국 궤린에서 침략군과 싸운 일본인들과 한국인으로 구성된 한국자원군 사진, 김산은 이 조직을 대표하는 젊은 지도자였다.
ⓒ 신나라
또 일본은 위험한 사상만큼이나 위험한 노래를 두려워하는데 아리랑 가사 중 금지하는 것들도 많음을 이야기하고, 조국은 이미 열두 고개 이상의 아리랑고개를 고통스럽게 넘어왔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최후의 희생이 마침내 승리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곤 "나는 벽 위에다가 '이곳에서 또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고 쓰고 내 이름을 서명하였다. 아침 일찍 나는 경찰서로 끌려갔다"라고 들려준다. 이어서 김산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교수형장에 누이가 와서 아리랑을 부른다. 그것은 매우 슬픈 노래이다. 그러나 매우 좋은 노래이다. 나는 이 가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중등학생들은 6개월의 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김영임 명창이 부른 감산의 아리랑

음반 가운데 '아리랑고개', '아리랑연가', '아리랑옥중가'를 이 시대 경기민요 최고의 명창 김영임씨가 당시의 상황에 맞는 분위기로 녹음해 빛을 더했다. 마치 김산이 울분을 속으로 삭이며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음반은 영문 낭송으로 '2003년 아시아태평양공연예술제 및 학술회' 번역 및 동시통역을 맡았었던 김수희, 우리말 낭송으로 김연갑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맡았다.

다만 옥에 티라면 적절한 우리말 낭송에 비해 영문 낭송은 어색한 발음으로 인해 거슬렸으며, 번역이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어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이 음반이 가지는 의미는 혁명가 김산을, 김산의 아리랑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그를 통해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삶을 지탱해온 희망, 그것이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아리랑은 죽음의 노래, 비극의 노래가 아니라 승리의 노래, 기쁨의 노래임을 김산은 강력히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대자보, 수도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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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