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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춤추는 스님이 있습니다. 고깔모자를 쓰고 추는 바라춤이 아니라 느끼는 대로 흔들어 대는 막춤입니다.
ⓒ 임윤수

춤을 춥니다. 스님이 춤을 춥니다. 두둥둥 법고를 치던 스님이 온몸을 흔들며 무아지경의 춤을 춥니다. 그냥 구경꾼의 눈으로 보면 '끼'와 '신명'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통하거나 느낄 수 있는 마음으로 보면 스님의 춤은 울부짖음이고 몸부림입니다.

몸으로 울고 있습니다. 삭발을 한 스님이 콧물과 눈물 대신 휘청거리는 몸동작으로 바스러질 듯이 울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신명나게 춤을 추는 것으로 보이지만 업보에 허덕이는 스님의 감정에 맞추면 통곡 같은 울음이 들리고 몸부림 같은 처절함이 느껴집니다.

춤추는 비구승, '하유스님'을 만나다

스님이 법고 채를 잡았습니다. 법고 앞으로 한 발 다가가 두 손을 모아 합장합니다. 알 수 없는 연민이 스님의 머리에 눈길을 잡아 둡니다. 짧지만 무거운 시간이 바르르 떨리듯 흘러갑니다.

'두둥~ 둥~둥~' 법고를 울려갑니다. 자리를 잡고, 리듬을 익혀가듯 맺고 끊기를 반복하며 법고를 울려갑니다. 스님의 몸동작이 커지면 법고소리도 커지고, 스님의 손놀림이 작아지면 법고소리도 작아 갑니다.

▲ 하유스님이 치는 법고는 사람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합니다.
ⓒ 임윤수
법고가 웁니다. 커다란 법고가 '엉엉' 울음소리를 대신해 '두둥~둥 둥~둥~' 소리를 내며 흐느끼듯이 울어댑니다. 복받치는 설움, 까무러질 듯한 희열, 생로병사를 담고 있는 인생 팔고는 물론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오욕칠정까지 사바세계의 모든 고해를 말끔하게 헹궈내려는 듯 만감(萬感)의 소리로 두둥~둥 둥~둥~ 울어댑니다.

삼라만상의 심장박동이 법고소리에 흔들리고, 산천초목의 숨결소리가 법고소리에 숨죽입니다. 불어오던 바람도 풍경 끝에 발길을 멎고, 흘러내리던 안개비도 추녀 끝에서 멈췄습니다.

법고는 만 가지 소리로 울어줍니다. 슬픈 사람에겐 아련하고도 가련한 리듬으로, 기쁜 사람에게 경쾌한 리듬으로 각각의 음색을 달리하며 가슴과 마음으로 파고듭니다. 슬픈 마음으로 들으니 애간장을 녹일 듯 애처롭고, 기쁜 마음으로 들으니 환호성처럼 즐거운 소리로 들려옵니다.

템포가 빨라지고 소리가 커지니 가슴을 조여 오듯 마음이 끓어오릅니다. 단조로울 것만 같던 법고소리가 두둥둥 거리는 리듬을 타고 오묘함으로 다가옵니다.

법고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속삭임처럼 소곤거리기도 하고, 삼독을 불호령하는 '할' 소리로도 들려오지만 두둥둥 울리는 법고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법고소리에 하늘도 빗물로 울다

하늘이 웁니다. '두둥 둥'하고 법고를 두들기기 시작하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라도 하는 듯 후드득 빗방울을 떨어트리며 하늘도 울어줍니다.

얼굴이 젖었습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뭔가로 스님의 얼굴이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차마 흘릴 수 없던 눈물이기에 스님은 빗물을 핑계로 펑펑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순간입니다.

신나게 법고를 두들기고,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는 스님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산사음악회나, 야단법석 전후에 마련되는 이런저런 행사에서 뵐 수 있었던 춤꾼 비구승, 하유스님을 23일 울산시 울진에 건립 중인 관자재병원 관세음보살부처님 점안식에서 만났습니다.

▲ 직접 만나 본 스님은 맑았습니다. 금방이라도 '톰방'하고 떨어질 듯한 이슬처럼 맑은 영혼이 느껴집니다.
ⓒ 임윤수

속세 나이 43, 20년 가까이 구도의 한 방편으로 고행의 삶을 살고 있는 춤꾼, 하유스님. '출가자'라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깡그리 파괴하는 스님의 공연(?)은 몇 차례 행사장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님의 삶과 춤을 추게 된 동기 등이 자못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닿지 않아 궁금증으로만 묻고 있었는데 그 궁금증을 풀어 줄 연이 닿았고, 기회가 왔나 봅니다.

기행에 가까운 스님의 춤은 스님의 업보

23일 오후 2시 도량제와 산신제가 끝나려면 꽤 시간이 남은 것 같은데 일찌감치 마당으로 나온 스님은 한적한 표정으로 법고를 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서 계시는 곳으로 다가가 꾸벅 합장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무례하거나 건방을 떨었다는 건 아닙니다. 선문답을 하듯 어렵게 돌아가지 않고 직설로 물었습니다. '기행에 가까운 스님 춤, 다이내믹 한 법고타법을 두고 도반이나 어른스님들이 걱정하거나 뒷말을 하는 분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 춤을 춥니다, 그냥 구경꾼의 눈으로 보면 신명이지만 느끼는 마음으로 보면 몸부림으로 들리는 춤을 춥니다.
ⓒ 임윤수

▲ '엉엉'거리는 통곡 대신 법고가 울리고, 헉헉 흐느낌 같은 춤을 춥니다.
ⓒ 임윤수

스님은 웃었습니다. 금방이라도 '톰방'하며 떨어질 듯한 영롱한 이슬처럼 맑은 모습으로 티 없이 웃었습니다. 스님은 구업(口業)을 짓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 않은 듯 질문에 대한 즉답은 피한 채 모든 게 당신의 업이라고 하였습니다.

업보(業報)라고 하였습니다. 도(道)는 오직 참선과 경전공부로만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옹졸한 관념과 교만함에서 비롯된 전생의 업일 거라고 하였습니다. 득도의 길에도 여러 방법이 있고, 수행의 방법에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편협한 관념에 갇혀 춤을 추거나 법고를 치는 스님들을 한없이 조롱하고 거침없이 경멸한 전생의 업보일 거라 하였습니다.

남들에게는 '신명'이나 '끼'로 보일 만큼 신나게 추는 춤을 업보로 받아들일 만큼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출가수행자인 양고모로부터도 '너는 중도 아니야'라고 멸시당할 정도로 고통이고 아픔이지만 이를 참고 극복해 나가는 게 당신에겐 공부라고 하였습니다.

▲ 스님의 춤동작은 관능적입니다.
ⓒ 임윤수
춤을 추다 보면 대개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 눈으로 스님을 바라보지만 간혹 이긴 하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스님은 왜 그렇게 아파하느냐'며 같이 아파할 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법고는 심술도 부리고, 장난도 하였습니다. 보거나 듣는 이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며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무애(無礙)하고 자재(自在)로운 타법이지만 스님은 누구로부터 사사(師事)는 물론 교육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굳이 경력이라고 말하려면 고등학생 시절 밴드부에서 허리에 둘러매고 치는 드럼을 쳤고, 군악대에서 활동을 한 게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 아파합니다. 스님께서는 당신의 업보를 아파하고, 짊어져야 할 연의 업보에 아파합니다.
ⓒ 임윤수
그러기에 스님의 타법은 여느 스님들, 불가의 의식에서 볼 수 있는 법고와는 타법도 다르고, 리듬과 소리도 다를 거라고 하였습니다. 불교의 의식에서 들을 수 있는 법고소리가 클래식음악이라고 한다면 스님의 법고에서 들을 수 있는 법고소리는 비트가 강한 대중음악쯤으로 생각하면 될 거라고 하였습니다.

사찰법고가 전통으로 계승되는 불가의 소리며 리듬이라면 스님이 보여주는 법고는 스님의 업이 베이스로 깔리고, 고교시절이나 군대시절의 드럼 감각이 가미된 창조적 타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스님이 두드려 내는 법고소리는 유행가 가사처럼 내 사연이 주제가 되고, 내 삶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리듬, 그런 타법으로 느껴집니다.

승속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삶

스님은 절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절이 없는 게 아니라 받아줄 절도, 찾아갈 절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삭발을 하고 출가는 하였으나 집도 절도 아닌 승속의 경계인으로 생활한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절실하게 구제하거나 책임져야 할 3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 사람들은 구경을 하고, 쏟아지는 빗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님의 춤은 계속됩니다.
ⓒ 임윤수
당신을 낳아준 82세의 노모, 초등학교 5학년인 어린 조카, 생활력을 상실한 속가의 형이 있는데 이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니 그들이야말로 당신이 구제해야 할 속세의 중생이기에 출가를 하였다고 훌훌 떠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이 되었으면 범중생을 구제해야지 속가에 얽매이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관념에 매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꼭 돌보거나 책임져야 할 속가의 인연들조차 구제하거나 책임지지 못하면서 무릇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설치는 거야말로 어불성설이라고 하였습니다.

속가 식구들과 함께 들어간다고 하였을 때 받아 줄 절도 없고, 설사 당신이 절 하나를 책임지게 된다고 하여도 속가 식구들과 함께 하면 다니던 신도들조차 떠나는 게 현실이니 어쩔 수 없이 노모를 모시며 사는 승속의 경계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 '두둥~ 둥 둥~둥' 울려주는 법고소리는 하유스님의 아픔이며 몸부림입니다.
ⓒ 임윤수
그렇게 아픈 삶을 살기에 아픈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새만금에서도 법고를 울렸고, 천성산에서도 춤을 췄다고 하였습니다.

통곡 같은 법고, 흐느낌 같은 춤

법고가 멈추니 사물패들이 등장합니다. 자지러질 듯한 꽹과리소리에 징소리와 북소리, 장구소리가 어우러져 한마당을 펼쳐갑니다. 둥둥거리는 북소리에 산천이 움찔거리고, 다다닥거리는 장고소리에 중생의 발뒤꿈치가 꿈틀댑니다.

스님이 춤을 춥니다. 통곡을 하듯 법고를 울리던 스님이 엉엉 흐느끼듯이 춤을 춥니다. 박박 머리에 하얀 고깔을 쓰고 나풀나풀 추는 바라춤이 아니라 흥겨움을 어쩌지 못해 마구 흔들어대는 세속인들의 막춤처럼 아무렇게나 춤을 춥니다. 무너질 듯 흐물거리기도 하고, 솟구쳐 오를 듯 팔딱거리기도 합니다.

굵어진 빗줄기가 온몸을 적셔갑니다. 빗줄기를 가르는 스님의 몸동작은 관능적입니다. 사람들이 수군댑니다. 야들야들한 몸동작 보고, 곱상하기만 한 언행을 들으며 누구를 닮았느니 하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이어집니다.

▲ 스님께서는 당신의 삶이 아프기도 하지만 공부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 임윤수
다 알고 있었습니다. 43년을 살아오면서 술 한 모금, 담배 한 개비 피워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춤을 술 힘을 빈 춤으로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어림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일컬어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한다는 걸 스님은 다 알고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져 있고, 그들의 입방아를 달관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엉엉 통곡을 하듯 아픈 몸짓으로 춤을 춥니다.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입이 모자란 듯 박장대소를 하지만 스님의 법고에는 당신이 짊어진 업보의 무게가 실렸고, 스님의 춤에는 인연으로 짊어진 삶의 고단함이 흐르는 빗물처럼 흐느낌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거반 24시간을 지켜보던 스님과 헤어지며 '스님! 기사 올립니다'하고 말씀드리니, '왜곡되지 않게 올려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놓지 않았습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님의 삶을 폄하하거나 욕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직접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맑은 영혼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니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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