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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무현 정부는 폐쇄적 기자실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며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도입했다. 그 뒤로 4년. 임기 말의 노무현 정부는 또 다시 정부 부처 기자실 통폐합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언론사들은 '언론자유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4년 전 정부가 실시한 개방형 브리핑제 이후에도 여전한 기자실의 폐쇄적 운영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언론개혁 정책의 허와 실 등에 대해 몇 차례로 나눠 보도한다. 이번 회에서는 지역의 기자실 상황을 살펴보았다. <편집자주>
▲ 2004년 6월, 공무원노조 서천군지부에 의해 폐쇄된 기자실. 엉뚱한 이유로 폐쇄됐지만 기자들에게 기자실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 공무원노조서천군지부

'기자실 폐지'에 대해 AP통신, IHT 같은 외국 언론까지 가세해 논쟁이 뜨겁다. 물론, 국내 언론이 마치 '피해자'인 듯 떠들어대고 있지만 외신들은 한국의 기자실의 폐해도 적잖이 지적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부부처 사무실 출입 취재 통제'는 문제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기자실 폐지' 방침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나는 서천군청 기자실이 폐쇄된 2004년 6월 2일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전국공무원노조 서천군지부(이하 서천군지부)는 서천군청 내에서 두번째 집회를 가졌다.

이어 공무원노조는 이날 기자실을 폐쇄하고 '승리의 날'로 규정했다. 지금도 서천군지부 '누리집 공지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과 함께 기자실에 못을 박는 사진이 올라 있다.

"공무원노조 서천군지부에서는 허위·추측·의혹기사를 남발하는 <뉴스서천>을 단호히 거부하고 시대착오적인 기자실 형태를 개선키 위해 당당하게 기자실을 폐쇄하였습니다."

<뉴스서천>은 내가 편집국장으로 있는 지역주간신문이다. 당시 지역에는 2개 지역주간지와 8개의 지방일간지 주재기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중 유일하게 <뉴스서천>만이 '기자실 폐쇄'를 지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공무원노조가 <뉴스서천>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기자실을 폐쇄하는 요상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처음 들린 군청 '기자실'과 '괘씸죄'

그러니까 2003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그 날 나는 급히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서천군청 기자실 문을 열었다. 군청 기자실을 들른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고 또 마지막이었다.

처음 들른 기자실은 진풍경이었다. 밖은 영하권의 강추위가 맹위를 떨쳤지만 10평 남짓 되는 기자실은 대형난로가 펑펑 돌아가 후끈후끈했다. 그리고 짙은 안개가 낀 듯 뿌옇다. 자세히 둘러보니 4~5명의 선배기자들이 기자실 중앙에 놓인 소파에 둘러 앉아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기사는 쓰지 않고 하릴없이 담배연기나 뿜어 올리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자 심사가 뒤틀렸다. 그들은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는 동안에도 잡담과 흡연을 그치지 않았다.

언짢은 김에 나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선배기자들에 대한 일종의 항의 표시였다. 그러자 선배기자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배기자들은 이날 일로 '후배 여기자가 건방지다'며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 선배기자들 앞에서 담배를 꼬나문 일로 '괘씸죄' 항목에 걸린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뒤인 2004년 5월 어느 날. 군청에서 공무원노조 서천군지부가 집회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하며 다가가자 여기저기서 내 이름이 튀어 나왔다. 나에 대한 규탄집회였던 것.

"여기자가 기자실에서 다리꼬고 앉아서 담배 꼬나물고 나이 많은 실·과장들을 불러다 호통을 칠 수 있나, <뉴스서천>은 공아무개 기자를 파직시켜라, 이 기회에 아예 기자실을 폐쇄시켜라" 등이 집회의 주된 내용이고 요구였다.

알고 보니 '비판기사 + 괘씸죄' 여파

▲ 2004년 5월. 공무원노조서천군지부가 기자를 상대로 규탄집회를 하고 있다.
ⓒ 공무원노조서천군지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자실에 들른 6개월 전 일이 왜 규탄 집회의 사유가 된 것일까?

어이가 없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가끔 다리를 꼬는 버릇이 있었으니 그날 기자실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 날 선배 기자들 외에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실·과장을 부른 일은 더 더욱 없었다.

게다가 군청 내에서 담배를 피운 일 또한 그 날 딱 한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기자실에서 선배기자들에 대한 항의 표시로. 그런데 이게 왜 '실·과장 앞에서'로 각색돼 뒤늦게 문제가 됐단 말인가.

하지만 오래지 않아 억울함보다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시 기자가 쓴 '배부른 해외배낭연수' 보도의 여파가 엉뚱한 곳으로 튄 것임을 알게 된 때문이었다.

이 기사는 그 해에만 서천군 공무원 125명이 해외연수를 갔다온 일과 1인당 비용도 타 지자체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비판이었다. 물론 '허위 추측'이 아닌 모든 게 사실이었지만, 부임한 지 1년쯤 된 군수와 전체공무원 80% 이상이 가입해 있는 서천군지부의 심사를 건드리기엔 충분했다.

여기에 군청출입기자들이 수개월 전 기자실에서 있었던 '괘씸죄'를 추가시켜 공무원 노조가 집회를 열도록 부추긴 사실도 아무개 공무원의 귀띔으로 알게 됐다.

기자실이 취재활동이나 기사를 작성해 송고하는 장소이기보다 '미운털 박힌 연놈' 혼내주는 작전실이거나 잡기로 시간을 때우는 공간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다른 한편 언론사 서열·기자서열이 있고 출입기자 자격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부여한다는 중앙부처 기자실의 폐단이 지역에서는 이렇게 굴절돼 나타난 셈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때 기자실에 있었던 선배기자들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교체가 많이 이뤄졌다.

엉뚱한 결말이 던져준 새로운 사실

재미있는 일은 기자를 혼내주겠다던 선배기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이 일이 기자실 폐쇄로 막을 내렸다는 점이다.

공무원노조 스스로도 군수의 선심성 배낭연수를 지적한 일을 이유로 공방전을 펼치기 민망했던지 기자를 구실로 삼아 '이런 기자실은 그냥 둘 수 없다'며 기자실 출입문에 못질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도 실 사용자였던 주재기자들이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기자실'이라는 지적에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한 때문이었을 게다. 그 이후 지금까지 서천군청을 비롯해 군내 어느 관공서에도 기자실이 없다.

엉뚱하기까지 한 결말로 공무원들과 기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간 서천군은 '제2의 새만금'으로 알려진 '장항갯벌 매립'을 둘러싼 논란으로 전국의 이목이 집중돼 왔다. 대통령을 비롯 정치인,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들의 방문이 쇄도했고 하루가 멀다고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기사를 써왔고 쓰고 있다. 기자들도 공무원들도 군청 내에 별도의 기자실이 없어도 전혀 문제가 없음을 체득한 셈이다.

덧붙이는 글 | 공금란 기자는 <뉴스서천>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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