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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만제로> 홈페이지
ⓒ imbc
오락 프로그램이 단순히 웃기지는 않는다. 그런 특성은 토크쇼 프로그램에만 머물고 있다. 정보와 재미를 함께 추구하는 방식이 대세를 이룬 지 오래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공익성이다. MBC <불만제로>와 같이 2006년에 선보인 KBS <경제비타민>이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경제야 놀자' 코너가 정보와 재미를 강화했지만, 부자 되는 방법 내 집 마련 등 개인의 재테크에 집중했다. 물론 친자본 친기업적이란 비판이 가해지기도 했다.

MBC <불만제로>의 과제는 공익성과 일상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였다. <불만제로>는 오락을 통해 어느 수준까지의 공익성은 확보했다.

해법은 일종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방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친기업적이지는 못했다. 다만, 평소 시시콜콜 따지기는 좀 뭐한, 그야말로 사소한 내용을 소재로 삼았다. 예컨대 자장면, 나무젓가락, 화장품, 종아리 성형, 다이어트식품, 교복값, 애견 센터, 순금의 함량, 고깃집 함량, 휘발유, 도시 가스 등이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다루기에는 상품거리(?)가 안 되는 종목들이다. <불만제로>에서는 이러한 점이 오히려 일상적이라는 측면에서 특징적인 점이 되었다. 여기에 현장 취재방식을 취하여 현실감을 더한다.

<불만제로>, 왜 대기업 상품 문제 삼지 않나?

요컨대, <불만제로>는 상품과 서비스의 겉과 속을 실증적으로 파헤치는 고발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양심 불량자들을 고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의 진실을 알려준다면 올바른 정보의 전달뿐만 아니라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도 있어 보인다. 이렇다면 방송이 소비자의 권리를 대변한다는데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대기업 상품보다 중소기업 업체 중심이라는 지적이 초기부터 있어왔다. 대기업의 라면 성분을 공개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대기업은 <불만제로>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동네의 구멍가게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문제가 된 같은 업종이라고 해도 양심적인 기업체나 상점도 많다. 모두 비양심이라고 일반화 할 오류의 개연성은 이 프로에 언제나 존재한다. 표본을 타당성 있게 구성해야하는 문제는 실험과 검증이 언제나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고발 프로그램의 전제는 불신, 속았다는 느낌, 이분법적 적대감이기 쉽다. 쉽게 식상해지는 이유다. <불만제로>는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신감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차원이 아닌 근본 대안도 모색해야 필요는 언제나 있다. 그러나 일상에 치우치다보면 이점이 뜻대로 안될 수 있다.

일상속의 소비자 권익도 중요하지만, 거대 담론 속 권익 보장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에서 대안 모색이 잘 구성되지 않는 이유는 일상에 천착해서는 근본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고민은 일상과 거대 담론이 연결될 수는 없는 것일까에 있을 것이다.

단순 감정에 의지하는 프로그램 돼선 곤란

고발 프로그램의 연성화를 부추기고 진지한 고발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낮출 우려도 지적된다. 물론 이것은 <불만제로>가 엄청나게 인기를 끌 때 걱정할 일이기는 하다. 업종의 선정이 중구난방이라는 지적도 있어 왔다. 매주 흥미 있는 소재 따라 제작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어떤 업종은 다루고 어떤 업종은 다루지 않으면, 형평성이나 선정 기준에 대한 의혹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모두 소비자가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 중 10명 중에 6명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는 통계도 있다. 소비자와 유통업자, 생산업자를 분리시키고 시청자는 모두 소비자라는 인식은 분열주의를 조장할 수도 있다. 사회 악척결이라는 접근과 감정적인 대응은 여전히 경계대상이다.

업체들의 반론권을 충분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 때문에 몰래 카메라식 접근 지양의 필요성도 있다. 무엇보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이나 의 '일상사' 버전에 머물 때 봉착하게 되는 한계도 생각해야 한다. 놀라움, 분노, 허탈, 대응이라는 단순한 감정에 의지하는 프로그램이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이는 초기부터 지적되어온 점이다. 문제의 사실이나 결함을 모르고 판매하는 이들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한다. 명분의 독재화는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무조건 죄인 취급하는 것은 또 다른 죄일 수도 있다. 단순 사실을 통해 방송이 확신범이 되는 것에 주의해야 하는데 아무리 실험과 검증을 잘한다고 해도 방송이 법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소비자와 기업, 상점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뜻하지 않는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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