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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이 또 기각됐다. 이와 관련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허종웅(64) 제주도회 회장이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그는 김태환 제주도지사 등 제주도민 2만 2000여명의 서명을 모아 일본 정부와 나고야 고등법원에 공정재판과 사죄를 촉구하는 항의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 <편집자주>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각 정당 대표와 국회의원 여러분께 고심 끝에 몇 글자 띄웁니다.

저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허종웅이라고 합니다. 엊그제 저는 팔순에 이른 할머니들을 모시고 함께 일본 나고야를 다녀왔습니다.

이 나라 정치 지도자 여러분, 혹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달 31일에는 암울한 일제 식민지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주 중요한 재판이 이곳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이었는데, 지난 2005년 2월 1심 판결에서 기각당하고 말았는데,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도 또 다시 기각을 당했습니다.

치욕스러운 일제시대의 이야기

▲ 지난 5월 31일 오전 9시 30분경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원고단과 지원단 회원들이 소송 승리를 기원하는 시민들의 격려 속에 나고야 고등법원 재판정으로 출정하고 있다.
ⓒ 시민의 소리
치욕스러운 일제시대의 얘기입니다.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무지막지하게 조선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 몰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심지어 어린 소녀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44년 봄 당시 12~14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들이 충청남도와 전라남도에서 일본 나고야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고 속여 당시 군용 항공기를 만들던 미쓰비시 중공업에 데려다 혹독한 강제 노동을 시킨 것입니다.

배가 고파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뒤적여 허기를 채우고 그것도 안 되면 물로 배를 채웠다고 합니다. 협박과 구타는 말할 것도 없고 1944년 12월 있은 대지진으로 현장에서 6명의 어린 소녀들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와서 작업 중에 손가락이 잘렸다. 팔딱 팔딱 3번을 튀더라. 그런데 일본 남자가 그 잘린 손가락을 하늘로 띄워 갖고 놀리더라. 눈에 피발이 섰다." - 원고 김성주(80) 할머니 증언

고향의 가족들이 그리워 부모한테 편지를 쓴다고 썼지만 1년 내내 답장이 없더랍니다. 알고 보니 집에 붙여 준다고 하면서 중간에 가로채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월급도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가면 보내준다고 했다가, 결국 임금 한 푼 받지 못했습니다.

해방이 됐다고 해서 그 분들의 고통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유교적 관념이 심할 때라 단지 이들이 일본에 갔다 왔다는 것만으로 군 위안부 취급을 한 것입니다.

혼담이 오가다가도 번번이 깨지고, 결혼해 아들 딸 낳고 가정을 꾸리다가도 어디서 소문을 듣고 온 남편이 속아서 결혼했다며 그때부터 구타와 외도를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황혼의 나이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가정마저 꾸리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총 7명인데 그 중 한 할머니의 이름은 가명(假名)입니다. 혹시나 자신의 이름이 주변에 알려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주위 친구들한테는 계모임에서 강원도에 놀러 다녀오기로 했다고 말해두고 왔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 여러분, 피해자로서 오히려 위로받아야 할 이 할머니가 왜 도리어 사람들 눈을 피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까.

나고야 고등법원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인정했지만...

▲ 나고야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로 끌려간 어린 조선 소녀들. ‘내 生前에 이 恨을’
ⓒ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자료집
나고야 고등법원은 이번 재판에서 할머니들에 대한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이 국가의 관리 하에 벌어졌다는 것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65년 한일협정을 근거로 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일협정 체결로 이미 보상 문제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지금까지 3차례 걸쳐 나고야를 다녀 왔습니다. 이번 일본행에는 최봉태 변호사, 태평양 전쟁 희생자 광주 유족회의 이금주 회장님과 이번 소송의 원고이기도 한 피해자 양금덕(78) 할머니 등 7명이 이 재판을 다녀왔습니다.

그중 원고는 단지 4명뿐이었습니다. 3명의 할머니들은 지병으로 입원 중이거나 거동이 힘든 형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송을 제기한 것이 지난 99년이니까 벌써 8년째입니다. 비록 살아있는 사람들이라도 가난과 병마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일본을 다녀오면서 다시 느끼지만 참으로 우리가 부끄럽고 면목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만 탓할 것도 아닙니다.

일본 언론사들의 취재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주요 신문의 1면 톱을 장식했는가 하면, 일부 신문의 경우 사회면에서까지 주요기사로 다루며 이 재판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그 어느 언론 하나 여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행 취재한 광주의 <시민의 소리> 만이 유일했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와 달리 일본 내의 양심적인 시민들은 이 소송을 위해 공동변호단을 결성하고, 이 소송을 위한 지원단체를 꾸려 수년째 남모르는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 1944년 12월 일어나 대지진으로 당시 현장에서 숨진 광주 수창초등학교 출신 김순례씨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하정웅 회장.
ⓒ 시민의 소리
한 유학생의 말을 빌자면 자기들은 밥 한끼 제대로 못 먹고 차 한번 안타면서 이 할머니들의 재판 진행을 위해 숙식비와 항공료를 지원해 왔다고 합니다. 정치 지도자 여러분, 정작 이 일에 누가 나서야 합니까. 한일협정으로 이들의 피 값을 대신 챙겨오면서도 이들을 외면해 왔던 정부나, 이 일에 무관심한 국내 분위기를 생각하니 정말 일본의 이들 시민들 앞에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이러고서도 재판에 이기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염치없는 것이 아닐까요.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각 정당의 정치 지도자 여러분, 아무리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지만 이 나라 정치 지도자 중 누구 한명은 이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일 모레를 기약할 수도 없는 이 나라의 힘없는 백성이 그 먼 길을 오가며 고군분투 하고 있는데, 이대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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