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중국 최고의 인류화석인 우산원인. 싼샤는 고인류 활동의 무대였다.
ⓒ 모종혁

▲ 우산원인이 발견된 롱구포 일대에서는 유인원, 판다, 말 등의 조각, 다듬은 듯한 석기가 다수 발굴됐다.
ⓒ 모종혁

강은 인류 문명을 발육시킨 요람이다. 오랫동안 중국 문명은 황허(黃河) 유역에서 태동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금세기 들어 속속 드러나는 새로운 발굴 성과에 의해 이런 도그마는 깨지고 있다.

양쯔강 상류에서는 중국 최초의 구석기문화가, 내몽골 및 랴오닝(遼寧)성과 양쯔강 하류에서는 황허문명보다 수천 년 앞선 새로운 문명의 기원을 보여주는 신석기문화가 서서히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양쯔강 상류 싼샤지역은 한족 문명과 상이한 이민족의 땅이었다. 오랫동안 이 지역은 황허유역과 다른 고인류가 태동한 곳으로 여겨졌다. 1920~30년대 미국 자연사박물관 발굴단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싼샤를 탐험한 끝에 베이징원인과 유사한 고인류가 이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실한 인류화석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1963년 산시(陝西)성 란텐(藍田)현에서는 베이징원인보다 훨씬 앞선 화석인류가 발굴됐다. 황허 중류에 있는 이곳에서 '란텐원인'(藍田原人)으로 불리는 고인류 화석이 발굴된 사실은 중국인에게 황허기원론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해주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5년 10월 13일 충칭(重慶)시 우산(巫山)현 먀오위(廟宇)진의 한 협곡. 중국의 저명한 고고인류학자인 황완포(黃萬波) 중국과학원 교수는 발굴된 유물들 앞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류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가 달린 아래턱 화석과 가공한 흔적이 뚜렷한 동물의 뼛조각. 이른바 '우산원인'(巫山原人, Home Erectus Wushanensis)으로 불리는 기원전 200만년 전의 중국 최고 인류화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과학원과 충칭자연박물관으로 구성된 발굴단은 롱구포(龍骨坡) 일대에서 유인원과 뚜렷이 구별되는 위턱 및 두개골 화석과 유인원·판다·말 등의 조각, 인공으로 다듬은 석기도 다수 발굴했다.

황 교수는 "히말라야 조산운동에 따라 지질구조가 변화된 양쯔강 싼샤(三峽) 일대는 당시 인류가 살기에 환경이 가장 좋은 지역이었다"면서 "우산인은 직립 인류의 원형을 잘 보여주는데다 포유동물을 사냥해 살아갔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까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화석인 란톈원인을 직접 발굴한 황 교수는 "싼샤지역은 200만년 이래 인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으로 베이징원인이나 란텐원인보다 훨씬 빠른 중국 고인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펑제(奉節)현 백제성 유적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섬으로 변한 백제성과 육지를 잇는 연륙교는 언제 완공될지 모른다.
ⓒ 모종혁

▲ 충칭시 싼샤박물관에 전시된 빠(巴)왕국의 병기류. 빠왕국은 춘추전국시대에 싼샤를 무대로 번성했다.
ⓒ 모종혁

싼샤의 유적·유물 80%가 물속으로 사라지다

1992년 4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싼샤댐 프로젝트안이 통과되자, 국가문물국은 일단의 전문가를 싼샤지역에 급파해 기초적인 유적·유물 조사에 착수했다. 1994년 중국역사박물관과 문물연구소의 주도 아래 30여개 기관과 대학의 전문가 300여명은 싼샤지역 22개 구현을 세부적으로 조사했다.

이를 토대로 1996년 중국 정부는 3000만㎡, 1282곳에서 유적·유물 발굴 및 이전 사업을 추진했다. 2003년 6월 <중국국가지리>는 한 고고학자의 말을 인용, "정석대로라면 50년에 걸쳐 발굴과 이전, 보호 작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길어야 15년 만에 작업을 완수해야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싼샤댐 건설과 더불어 싼샤 수몰지는 세계 최대의 유적 발굴지로 변했다. 2000년 6월 최종 확정된 싼샤 수몰지의 중요 유적·유물은 모두 1087곳. 이 중 지하 유적은 723곳으로 총 면적이 1600만㎡에 달했다. 이를 위해 충칭에만 전국 69개 기관과 대학에서 선발된 5000여명의 발굴단이 모여들었다.

작년 CC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양쯔강을 다시 말한다>(再說長江)는 "물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싼샤 문물을 구하기 위해 중국 고고역사학계의 역량이 집중됐다"면서 "싼샤에서 발굴 작업을 통해 구석기 고인류의 족적과 신석기 취락유적이 발견되고 이 지역의 자연조건과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됐음이 증명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싼샤 문물 보호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물 보호 작업을 완수했다"고 자평했다. 작년 5월 주간지 <랴오왕>(瞭望)은 "싼샤 유적·유물의 발굴 및 이전 사업에 들어간 국가 예산만 10억 위안(한화 약 1200억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중국 고고역사학계의 3분의 2 이상이 유적·유물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면서 "2005년 말까지 지하에서 발굴한 유물은 17만점, 그 중 보물급의 진귀한 유물은 9000여점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하오궈셩(郝國勝) 국가문물국 싼샤문물보호팀 연구원은 "싼샤댐 건설이 가속화되면서 유물·유적의 발굴 및 보호 방향도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기고 손실은 최소화하자는 것이 됐다"면서 "기념비적인 성과도 남겼지만 아쉬움도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지난 1월 <남방주말>(南方周末)은 한 국가문물국 부국장의 발언을 인용해 "싼샤 문물 보호 프로젝트는 응급처치식(搶救性) 발굴 작업이었다"면서 "싼샤 수몰지에서 조사된 유적·유물 가운데 발굴해서 구한 문물은 20%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남방주말>은 "중국 전역의 기관 및 대학의 발굴 인력을 총동원해 현장 작업에 진력했지만 시간상 모든 문물을 발굴하기엔 힘에 부쳤다"면서 "싼샤 프로젝트와 더불어 양쯔강의 물을 황허로 돌리는 남수북조 프로젝트에 맞춰 거대한 발굴사업을 두 군데에서 동시에 진행했기에 애로점이 더욱 컸다"고 지적했다.

▲ 샤오(小)싼샤 계곡 20㎞에 걸쳐있던 잔도(棧道)도 싼샤댐의 위력에는 어쩔 수 없다.
ⓒ 모종혁

▲ 작년 10월 싼샤댐의 수위가 135m에서 156m로 올라가면서 샤오싼샤 잔도는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 모종혁

혼란과 무방비 속에 도굴·약탈당한 싼샤 유물

싼샤 수몰지 전역에서 벌어진 유적·유물 발굴 및 이전 작업은 예기치 않은 사태까지 낳았다.

2002년 4월 <양청만보>(羊城晚報)는 "발굴단원으로 가장한 도굴업자 때문에 싼샤 유물이 파헤쳐져 중국 전역에 유통되고 해외로까지 유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기관과 대학 발굴단원으로 위장하거나 아예 가짜 발굴단을 구성한 도굴업자들은 싼샤 수몰지 각지에서 유격전식 도굴을 감행하고 있다"면서 "현지에서는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분묘를 파헤치고 유물을 팔면 3일 만에 벼락부자가 된다'는 민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청만보>는 "싼샤는 구도시 해체와 신도시 건설, 이주민의 대거 이주, 유적 이전 등으로 지역 전체가 공사판인데다 들어오고 나가는 인구 유동률이 아주 높다"며 "유적·유물의 도굴과 이를 소비시장으로 내다파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현지 지형에 익숙한 농민들이 무리를 지어 도굴에 나서는데 국가에서 지정한 유적지를 미리 도굴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지방정부나 공안국에서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인력이 제한적인데다 지역이 광범위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4년 11월 <베이징신보><北京晨報>는 "지난 10년 동안 싼샤에서 흘러들어온 유물로 베이징 골동품시장에서 벼락부자가 된 상인이 5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싼샤 유물은 베이징에서 팔리는 골동품 상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며 "현지인이 직접 도굴한 유물은 중계상인에 의해 300~500위안의 싼 값에 넘겨져 배를 통해 이창(宜昌)에 옮겨진 뒤, 다시 기차로 베이징으로 올라와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2005년 8월 충칭세관은 "1995~2005년 사이에 192건에 달하는 싼샤 유물의 도굴 및 매매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그 중 국보급 유물이 관련된 사건만 43건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충칭세관의 한 관리는 "싼샤 수몰지에서 도굴된 유물은 중간 집산지를 통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지로 팔려나간다"면서 "적지 않은 수량이 연해도시를 통해 홍콩, 대만, 한국, 일본, 미국, 영국, 캐나다로까지 유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싼샤 수몰지의 3000만㎡ 유적·유적 가운데 90% 이상이 방치돼 있다"면서 "도굴단과 중계상이 갈수록 집단·현대화돼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 고대 싼샤의 사람들은 깎아지른 절벽이나 동굴에 관을 두거나 매달아놓는 현관(懸棺) 장례풍습을 선호했다(사진 네모 안). 싼샤댐으로 강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무수히 많은 현관과 부장품이 약탈당했다.
ⓒ 모종혁

▲ 인류보다 오랜 생명력을 지녔던 양쯔강 돌고래는 인류에 의해 멸종됐다.
ⓒ 중국방송넷

인간에 의한 멸종된 2500만년 역사의 양쯔강 돌고래

사라지는 것은 역사 문물만이 아니다. 수백만년 동안 양쯔강 중상류와 싼샤 협곡에서 살아 온 수백 종의 어류와 동식물이 멸종되고 있다.

양쯔강의 허리를 끊은 싼샤댐은 물고기의 이동을 근원적으로 가로막았다. 산란과 생존을 위해 자유로이 양쯔강을 누비고 바다를 오가던 대부분의 어류 자원은 멸종 위기에 있다. 여기에 싼샤댐 완공 후 저수지 일부 구간에서 수체(水體)의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오염물질이 정체돼 물고기의 생태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지난 1월 <랴오왕>은 "작년 12월 중국, 미국 등 6개 국가 25명의 학자가 38일 동안 양쯔강을 뒤졌지만 2500만년 동안 서식했던 민물 돌고래를 찾지 못했다"면서 "양쯔강 돌고래는 인류에 의해 멸종된 첫 번째 고래종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작년 5월 완공 이후 싼샤댐에 380만톤의 생활쓰레기와 3000만톤의 공업폐기물이 쌓였다"면서 "만수기에 퇴적물이 그대로 중하류로 흘러 내려가 양쯔강 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양쯔강수리위원회가 2002년부터 3년 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양쯔강 본류와 지류에서 물고기가 전혀 살 수 없는 수질 4급수 이하인 경우가 무려 27.5%에 달한다. 수질 4급수 이하인 지역은 매년 2∼3%씩 증가하고 있다.

<중국국가지리>는 "싼샤 수몰지에는 3104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 중 550종이 싼샤댐의 수위 상승에 따른 영향을 받는다"면서 "싼샤댐 영향권에 있는 모든 식물이 재난성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야생종은 멸종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364종에 달하는 육생 동물 중 일부도 싼샤댐에 의해 서식지가 분절되거나 섬으로 고립된다"면서 "근친교배가 이뤄지면서 열성 유전자 때문에 군집 종류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몹시 슬프다는 고사성어인 '단장'(斷腸)은 싼샤에 서식하는 원숭이에서 유래했다. 촉나라를 치기 위해 싼샤를 지나던 진나라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 원숭이의 어미는 진나라 군대가 탄 배를 쫓아 백여 리를 뒤따라가며 슬피 울었다.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서 몸을 날려 배 위에 뛰어오른 어미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진 채였다.

금세기 들어 인류는 경제발전의 미명 아래 싼샤에 거주하던 원숭이 3종 가운데 이미 1종을 멸종시켰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만들어진 싼샤댐은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문물 뿐만 아니라 물고기, 동식물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 양쯔강 상류에 서식하던 어류들을 앞으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른다.
ⓒ 모종혁

태그:#싼샤댐, #란텐원인, #양쯔강 돌고래, #우산원인, #단장(斷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