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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기
서정적 자아를 노래하는 송수권의 시 '감꽃'

벌써 감꽃이 다 지고 말았다. 더운 날씨 탓인지 올해는 다른 해보다 유난히 빨리 져버린 것 같다. 감꽃은 내게 유년 시절로 되돌아 가는 타임머신이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시골집에는 500여 평이 넘는 텃밭이 있었다. 그곳엔 높이 20~30m에 가까운 거대한 감나무 수십 그루가 서로 어깨를 부딪치고 살을 맞대며 살아가고 있었다.

5월 중순이면 감나무들은 은밀하게 수 백, 수 천의 감꽃 송이를 피워내곤 했다. 감꽃이 땅에 떨어지면 주워 목걸이를 만들어서 동네 친구들과 소꼽장난을 놀았다. 난 노상 포도대장 역할을 맡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보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포도대장이 될랑개비시."

그분들의 말마따나 난 마침내 포도대장이 되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온갖 과일 중에서 포도라면 사죽을 못 쓰는 포도대장이 된 것이다.

밝은 햇빛 속에
또록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아이들 두셋이 짚오리에
타래 타래 감꽃을 엮어 목걸이를 꿰면서
돌중 흉내를 내고 있다.
감꽃 속에 까치발 뒤꿈치도 묻히는 게 보이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도
크림색 밝은 향기에 실리면서
오월의 햇빛 속에
또록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감꽃 줍는 애들 곁에서
하나 둘 나도 감꽃을 주우면서
금목걸이를 목에 두를까
금팔찌를 두를까
능구렁이 같은 나의 어두운 노래 끝도
실리면서
밝은 햇빛 속에
또록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 송수권 시 '감꽃' 전문


송수권 시인의 시 '감꽃'은 낭랑한 목소리로 내 나이 어린 추억을 대신 읊어주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수몰지구에 고향을 둔 내게 고향은 더욱 원초적인 그리움의 세계이다.

봄이 되면 감꽃이 피고 덧없이 꽃이 떨어지고나면 그 자리엔 눈곱만큼 작은 감이 달린다. 더러는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추락하는 감들도 있다. 아이는 항아리에 적당히 데운 물을 채운 다음 거기에 땅에서 주워온 땡감을 집어넣어 우려 먹는 것으로써 간식을 삼는다.

가을이 되자, 할아버지는 긴 간짓대로 감을 따서 항아리나 짚동 속에다 집어 넣어 저장해둔다. 띠살문 밖으로 눈보라 휘몰아치고 문풍지가 잠자리 날개처럼 파르르 떨리는 겨울밤이 이슥해지면 할머니는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셔서 항아리 속에 감춰둔 홍시를 꺼낸다. 어린 손자의 손에는 어느 새 빨간 홍시가 쥐어져 있다.

시는 감꽃이 지는 풍경을 노래하는 데서 그치고 있지만 내 추억은 감꽃이 피는 봄부터 밤참 대신 홍시를 먹는 겨울밤까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일사처리로 펼쳐진다. 내 자신이 마치 활동사진을 상영하는 낡은 극장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감나무는 얼치기 유목민을 자처하며 살아온 내게 고향집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감꽃은 내 어린 날의 추억의 시렁 가장 웃자리에 놓인 꽃이다. 감꽃은 내 서정적 자아를 길러준 유모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역사적 자아를 노래하는 김준태의 시 '감꽃'

그러면 나의 서정적 자아가 아무런 상처없이 온전히 자랄 수 있을 만큼 내가 지나온 역사는 평화로운 길이었을까. 비록 서너마지기 다랑논에 의지해서 빈한하게 살았을 망정 내 서정적 자아는 별다른 상처없이 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서정적 자아는 배움이 커감에 따라 차츰 상처를 입게 된다. 서정적 자아가 상처입은 자리에선 생살처럼 역사적 자아가 돋아났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배운다는 것을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양심을 확대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아기는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양심을 가지고 이 세계에 태어나지 않는다. 배움을 통해서 자아를 확대한 인간은 이 세계의 부조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안병기
ⓒ 안병기
나의 청년시절은 역사적 자아가 현실의 자아와 무한한 갈등을 겪어야 했던 긴급조치가 내려진 불행한 시기였다. 김준태 시인의 시 '감꽃'은 역사와 만난 자아가 어떻게 이 세계에 대응하는가를 노래하고 있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에 무엇을 셀까 몰라. - 김준태 시 '감꽃' 전문


김준태 시인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를 쓴 시인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80년대 5·18 추모제에선 전남대 시낭송단에 의해서 이 시가 낭송되곤 했다. 그때마다 전남도청 앞을 꽉 메운 수많은 사람들은 온통 울음 바다가 되어 출렁거렸다.

나는 시가 가진 진정한 힘을 그때 처음 보았다. 러아의 혁명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시낭송회에 몇십 만명이 운집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 낭송회도 그만큼은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추억과 역사를 동시에 만나게 해준다. 감꽃 떨어지는 봄날의 풍경 속에서 시적 화자는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어린 날의 추억은 '세다'라는 반복적 동작을 통해서 여러가지로 형태로 변주된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던 시적 자아는 전쟁이 일어나자 이번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센다. 그리고 전쟁이 지나간 지금은 엄지 손가락에 침을 '퉤퉤' 바르고나서 돈을 센다. 시는 '먼 훗날에 무엇을 셀까 몰라'로 상상의 여지를 남기면서 끝을 맺는다. 앞의 구절들은 마지막 구절인 '그런데 먼 훗날에 무엇을 셀까 몰라'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은연중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었던 자신에 대한 회의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런 회의가 생겨났다는 것은 시적 화자가 이미 개인과 역사에 대한 성찰을 끝낸 상태라는 걸 의미한다.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라는 구절에선 역사 속 개인에 대한 성찰을,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라는 구절에선 생활 속 개인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시적 자아가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그런데 먼 훗날에 무엇을 셀까 몰라"라는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한 예측이다.

시적 자아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얘기하지만 현명한 독자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절대 수동적으로 방기해버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홀로 다지면서 시 읽기의 종착역에 도착한다.

김준태의 시 '감꽃'은 노래로도 만들어져 여러 사람이 부르고 있다. 처음에 이 노래는 1995년 6월에 도서출판 <세시>에서 간행된 유종화가 쓴 '시와 노래, 그리고 해설을 통한 시에 대한 접근'이라는 다소 긴 부제가 붙은 <감꽃>이란 책의 부록 테이프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테이프 속에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등 모두 16곡이 들어 있는데 유종화 시인이 작곡하고 오창규가 부르는 이 노래는 뒷면 4번째 트랙에 수록돼 있다. 사장조에 3/4박자 빠르기에 전주가 긴 이 노래는 다소 고적하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2004년 1월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들'이 "다시 흙 위에 서서" 포엠 콘서트에 이르러선 아주 경쾌한 재즈풍으로 편곡돼 새로운 느낌으로 태어난다. 20년의 세월이 이룩한 노래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썩 밝지 못한 것은 역사의 현재 진행태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김준태 시인은 이 콘서트를 위한 '작가의 말'에서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혹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물론 시인(작가)들이란 작품으로 세상을 말하고, 작품으로 세상을 노래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브레히트의 말을 빌려다 쓰지 않더라도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산소가 없을 때 그것의 부족을 맨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언제나 안테나의 촉수가 쉴새없이 작동되어야 하고 상황이 타전이 되어 오면 재빠르게 이웃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혹은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시인이 아니던가.

시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누구도 시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감꽃이 진 자리에 벌써 아이의 젖꼭지만한 감이 달렸다. 어느 새 5월의 마지막이다. 더 늦기 전에 세금 막으러 가야겠다.

태그:#송수권, #김준태, #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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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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