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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운틴고릴라 가족의 밀림 속 즐거운 휴식.
ⓒ 김성호
전날 고된 버스 이동에도 고릴라를 본다는 기대감에 피곤도 잊고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고릴라 트레킹 예약을 담당했던 토마스라는 젊은이가 이미 봉고차를 끌고와 숙소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키에 야무진 인상의 30대 초반인 토마스가 운전하는 봉고차에는 40대 중반의 이탈리아 부부가 타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고릴라 트레킹을 할 사람이다. 나와 로렌스를 합치면 모두 4명이 같이 구경하는 셈이다.

마운틴고릴라, 건강한 성인만 만날 수 있는 이유

마운틴고릴라 트레킹은 인간으로부터의 병원균 전염이나 스트레스에서 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 하루 방문 인원수와 시간·나이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트레킹 시간이 한 시간으로 제한되고, 고릴라에게 홍역 등을 옮길 우려가 있어 15세 미만의 어린이는 방문 자체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어른의 경우에도 감기 등 바이러스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마운틴고릴라를 볼 수 없다.

고릴라는 해부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에 인간이 걸리는 많은 병들로부터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릴라들은 항체가 없다 보니 면역력이 거의 없어 인간에게는 거의 해가 되지 않는 병이나 바이러스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 마운틴고릴라 트레킹이 까다로운 이유이다.

우리가 오늘 가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룽가 국립공원 역시 하루 8명으로 고릴라 방문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는데, 8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우리 4명만이 가는 것은 아직도 안전에 대한 불안으로 유럽인들이 방문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가는 이탈리아 부부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리카르도라는 이름의 남편은 키가 크고 과묵한데 반해 사르비아라는 부인은 키가 작지만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숙하고 쾌활했다.

하루 전날 주문한 프렌치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역시 점심 식사용으로 주문한 햄버거와 계란 2개가 담긴 종이 도시락을 챙긴 우리는 토마스의 봉고차에 올라탔다.

드디어 마운틴고릴라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출발한 지 3박 4일 만이다. 밤샘 버스와 우체국 버스, 닭장차 버스 등을 타고 험한 산길을 달려왔다.

아프리카 오지까지 마운틴고릴라를 만나러 가는 이유

▲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 르완다 접경지대의 비룽가 국립공원 지도.
ⓒ 아프리카 야생동물 보호재단
우리나라 동물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릴라를 보러 굳이 그런 산 고생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것도 아프리카 오지 중의 오지인 우간다와 콩고의 국경지역까지 가서.

높은 산에 사는 고릴라는 뜻에서 마운틴고릴라(Mountain Gorilla)라 불리는 산악고릴라는 해발고도 2300~3500m의 산악지대에서만 산다. 전 세계적으로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오직 이곳 화산지대에서만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보는 고릴라는 이른바 아프리카 열대우림지역의 낮은 지대에 사는 로랜드고릴라(Lowland Gorilla)들이다.

로랜드고릴라가 전 세계적으로 12만 마리 정도인데도 '멸종 우려' 동물로 분류되고 있는데, 마운틴고릴라는 700여 마리에 불과해 멸종 위기를 넘어서 '멸종 직전(CR)종'으로 분류된다. 그동안 인간의 무분별한 산림 훼손으로 인한 서식지의 급격한 감소와 밀렵, 콩고와 우간다·르완다의 종족분쟁과 내전으로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일반적으로 '비룽가 국립공원'이라고 불리는 우간다와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등 3개국에 걸친 화산(Volcano)지대에 380마리, 그리고 북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우간다의 브윈디 국립공원에 320마리가 살고 있을 뿐이다.

마운틴고릴라가 살고 있는 화산지대는 우간다에서는 음가힝가 고릴라 국립공원이라고 부르고, 르완다에서는 볼캉(Volcan, 프랑스어로 화산) 국립공원, 콩고에서는 비룽가(Virunga,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화산) 국립공원이라고 부른다.

마운틴고릴라를 보러 콩고까지 넘어가는 것은 르완다의 볼캉 국립공원과 우간다의 음가힝가 및 브윈디 국립공원은 이미 예약이 다 차서 무작정 달려온 우리 같은 배낭여행객에게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볼캉 공원에서 '수사(Susa) 가족'이라 불리는 마운틴고릴라를 보기를 원했던 로렌스는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콩고의 치안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르완다의 수사 고릴라 가족은 35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 가장 큰 무리인데다 두 달 전 수사를 구경했던 로렌스의 뉴질랜드 친구가 강력히 권유했다는 것.

여전히 내전이 끊이지 않아 위험한 콩고

▲ [위 사진은 마운티고릴라 트레킹의 안내자와 경비요원, 아래 사진은 밀림 속을 헤치면 산을 오르는 마운틴고릴라 안내자와 경비대원.
ⓒ 김성호
마운틴고릴라 방문의 주요 고객인 유럽 여행객들이 콩고를 꺼리는 것은 안전이 가장 중요한 여행에서 어쩌면 당연하다.

콩고는 오랜 내전으로 치안이 불안한데다 북쪽 키부(North-Kivu) 주에 속하는 비룽가 국립공원은 지난 1998년 8월 고릴라 여행객 3명이 납치되어 살해되고, 2005년에도 고릴라 경비대원들이 반군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 등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여행금지 또는 여행자제 지역이다.

지난 98년 여행객 납치살해 사건 이후 폐쇄되었던 콩고의 마운틴고릴라 트레킹이 다시 시작된 것도 2년 전인 2004년 1월부터이다. 물론 콩고 정부도 지금은 여행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전에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지만, 유럽인들의 우려를 완전히 씻지는 못하고 있다.

나에게는 바로 이런 위험부담 때문에 마운틴고릴라를 볼 기회가 찾아온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럽 여행객들이 몇 개월 전에 콩고의 고릴라 방문도 싹쓸이하듯 예약을 했을 테니까. 나는 기꺼이 그 정도의 위험쯤이야 감수하기로 했다.

마운틴고릴라를 만나면 말해줘야겠다. "마운틴고릴라야! 너를 보러 이 험난하고 위험한 산길을 넘어왔다"고.

마운틴고릴라를 보는 데 드는 비용은 모두 400달러인데, 콩고비자 60달러를 비롯해 공원입장료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내가 묵은 우간다 키소로의 여행객 숙소인 비룽가 호텔에서 고릴라 방문 예약 등을 해주고 있었다.

마운틴고릴라 구경은 한 곳에서 보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고릴라의 이동에 맞춰 밀림 속을 따라다니면서 한 시간 동안 생생한 생활모습을 관찰하기 때문에 마운틴고릴라 관광이 아니라 트레킹(Trekking)이라 부른다.

철제 막대기만이 가로놓인 콩고와 우간다 국경

▲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경지역인 부나가나.
ⓒ 김성호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한 차량이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키소로에서 서쪽 방향인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경마을인 부나가나(Bunagana). 우간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신고를 마치고 바로 마주보고 있는 콩고 출입국사무소에서 다시 비자를 받아야 했다. 국경마을이라고 해야 한두 채의 민간인 집들이 있을 뿐이다.

국경도 별다른 방책이 있는 것은 아니고 길 가운데에 철제 차단막대기만이 가로 놓여 있었다. 군복을 입은 국경 경비대원들이 사람이나 차량이 드나들 때 그 철제 차단막대기를 들어올렸다 내려놓았다 했다.

우간다 쪽에는 "당신은 지금 우간다를 떠나 자이르로 들어가고 있다"는 영어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자이르는 지난 1997년까지 한 때 사용되었던 콩고민주공화국의 옛 이름이다.

국경에서 떠오르는 뒤늦은 해돋이가 멋지다. 이 곳은 주변이 모두 산악지대인데다 화산지대여서 평소 안개가 많이 끼다 보니 오전 8시 정도나 되어야 아침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간다 출입국사무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와 마운틴고릴라가 그려진 오래된 5만 자이르(콩고의 옛 화폐단위)를 갖고 와 우간다 돈과 바꾸자고 요구한다. 약간의 우간다 돈을 주고 1991년 옛 자이르 국명이었을 당시 발행된 4마리의 마운틴고릴라가 새겨진 콩고 지폐를 기념으로 바꿨다.

우간다와 콩고의 출입국 수속에 이어 콩고의 비룽가 고릴라 사무소에서 다시 우리를 불러 고릴라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등 트레킹 준수사항이 적힌 프랑스어 책자를 나눠주었다.

모든 절차가 완료되는 데 1시간 정도가 흘렀다. 오전 9시 수속이 끝나자 토마스 대신 50대 초반의 콩고인이 모는 지프차가 우리를 태우고 달렸다.

초라한 산간 마을과 험한 들판, 울퉁불퉁한 산길을 덜컹덜컹 거리면서 1시간 이상 달렸나 보다. 땅이 비옥한 듯 산비탈을 깎아 만든 들판에는 옥수수와 밀·기장·감자·바나나 등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었다. 경비병은 감자 종류의 농작물을 '파타투'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영어의 '감자(Potato)'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마운틴고릴라를 찾아서 밀림 속으로의 행군

▲ 밀림 속을 이동하는 마운틴고릴라 가족.
ⓒ 김성호
높은 언덕의 굽잇길을 여러 차례 돌고 돌아 산 위로 올라가자 아예 길이 사라졌다. 지프가 풀숲을 헤치며 둔덕같은 언덕에 도착하자 나무와 갈대로 엉성하게 이은 초소가 보였다. 콩고의 비룽가 국립공원 안 좀바(Jomba, 또는 드좀바 Djomba) 고릴라 경비초소였다.

좀바 초소에는 여러 명의 총을 든 경비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키색 군복을 입은 경비 책임자가 나와 방문자의 서류를 확인한 뒤 곧바로 우리를 산속으로 안내했다.

책임자를 비롯해 총을 든 5명의 경비요원과 톱 같은 칼을 든 3명의 안내자가 앞장섰다. 칼을 든 3명의 안내자는 맨 앞에서 밀림 속의 무성한 가지와 덩굴 등을 잘라내면서 고릴라의 위치를 추적하는 사람들이고, 총을 든 경비병 5명은 안전사고에 대비한 경호요원이다.

경비병의 옷에는 '얼굴은 기린 같고, 머리는 말 같고, 엉덩이와 다리는 하얀 띠가 둘러쳐져 얼룩말같이' 생긴 동물 그림이 그려진 헝겊 조각의 패치를 붙이고 있었다. 내가 궁금해서 무슨 동물이냐고 묻자 경비 책임자는 "콩고의 정글에서만 사는 오카피(Okapi)라는 동물로 콩고의 상징"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텔레비전이나 여행책자 등을 통해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말로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2만여 마리에 불과한 희귀동물로 콩고 북동부 지역에 이어 2006년 6월에는 이곳 비룽가 국립공원에서도 서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안내자와 경비병을 따라 또다시 1시간 이상 들판과 언덕, 산속을 걸어야 했다. 마운틴고릴라는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동하기 때문에 그 흔적을 쫓아 찾아가야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풀을 따라 비룽가 산기슭 어딘가에 있을 마운틴고릴라를 찾아 정상 쪽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울창한 나무와 덩굴, 풀이 우거진 열대 우림지역의 연속이었다. 정말로 타잔이 살 것만 같은 정글 속이다. 수풀이 빽빽한 밀림을 헤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은 3명의 안내자가 번갈아 가며 나뭇가지와 덩굴들을 칼로 치면서 길을 터주기 때문이다.

"마운틴고릴라야! 드디어 너를 만나는구나"

▲ 사진 위는 마운틴고릴라 가족의 우두머리인 은색등 수컷 고릴라, 아래 사진은 마운틴고릴라의 누런 똥.
ⓒ 김성호
앞서가던 경비책임자가 갑자기 멈추더니 뒤돌아섰다. 우리에게 모자를 벗을 것과 고릴라를 마주쳐도 절대 카메라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고, 소리를 내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마운틴고릴라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잠시 뒤 맨 앞에서 길을 터주던 안내자가 "쉿∼" 하며 둘째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1m도 안 보이는 밀림 속의 풀숲에서 하얀 김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오고 있었다. 마운틴고릴라의 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김이 서려있는 것이 배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안내자도 바로 이 생생한 프러누런 똥을 보고 고릴라가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놀랍게도 근처 밀림 속의 나뭇가지 위에 작은 새끼 고릴라 한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나무 밑을 보니 더욱 놀랍다. 나무 아래 풀숲에는 커다란 어미 고릴라가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산더미같이 큰 수컷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수컷은 온몸이 검은색인데 등에만 은백색의 털이 띠를 두르고 있다고 하여 은색등(실버백, Silverback) 고릴라라 불리는 무리의 최고 우두머리였다. 은색등 고릴라는 시골 사랑방에 곧은 자세로 앉아 권위를 나타내던 할아버지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올라가 포효하던 영화 속의 바로 그 킹콩 고릴라가 밀림 속에서는 그렇게 얌전할 수가 없었다. 마치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영화 킹콩의 실제 모델은 바로 이곳 비룽가 산악지대의 마운틴고릴라이다.

그 때가 오전 11시. 밀림 속에서 헤맨 지 한 시간 만에 마운틴고릴라 가족을 만난 것이다. 보통 2~3시간을 찾아나서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 시간 만에 마운틴고릴라를 찾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고릴라가 사는 곳이 울창한 밀림인 데다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이동하고, 3개국의 접경지역이어서 국경을 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400달러 이상의 큰 금액을 주는 트레킹이기 때문에 마운틴고릴라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에는 추가요금 없이 다음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있다. 우리가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릴라 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운틴고릴라 가족의 즐거운 휴식

▲ 벌렁누워 있는 어미 품에 안긴 새끼 고릴라.
ⓒ 김성호
얼마 지나지 않아 수컷 주변으로 또 다른 암컷과 작은 새끼 등이 모여들었다. 모두 13마리의 대가족이었다. 안내자는 이 고릴라 가족을 "마푸아(Mapua) 패밀리"라고 부른다고 했다. 우두머리인 은색등 고릴라 한 마리에 암컷 5마리, 중간크기의 수컷 2마리와 암컷 1마리, 새끼 고릴라 4마리로 이뤄져 있었다.

은색등 고릴라는 정말로 키가 180㎝에 몸무게가 200㎏에 이를 정도로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털도 길고 가슴도 넓은 데 고지대의 냉기를 막아주는 길고 두꺼운 털과 커다란 가슴, 넓은 턱이 마운틴고릴라가 로랜드고릴라와 다른 점이다.

마푸아 가족의 마운틴고릴라들은 2~3m 정도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를 않았다. 앙큼하게 생긴 작은 새끼는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내가 꺼낸 카메라를 잡으려고 다가와 손을 대기도 했다.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장면이었다. 새로운 물건을 보면 신기해 직접 만져 보려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큼 마운틴고릴라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친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젓하게 앉아있는 수컷을 빙 둘러싸고 마푸아 가족들은 한가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가장 작은 새끼 고릴라는 풀숲에 벌렁 누워 있는 어미의 가슴을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재롱을 떠는 것 같다.

또 다른 두 마리의 새끼는 땅바닥에서 서로 몸을 붙잡고 뒹굴면서 장난을 치는 데 마치 레슬링을 하는 듯하고, 다른 한 마리의 새끼는 자신의 나무 타는 실력을 뽐내려는 듯 칡넝쿨 같은 덩굴을 두 손으로 잡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중간크기의 고릴라들은 손을 뻗어 나뭇잎을 뜯어먹거나 그냥 우두커니 쉬고 있었다.

농사철이 다 끝난 겨울의 한가로운 시골 안방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옛날 우리네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 자식들이 대가족을 이루며 한집에 살았듯 마운틴고릴라들도 열대우림 속에서 한 가족처럼 살고 있었다. 고릴라는 일반적으로 10마리에서 30마리 정도까지 한 무리를 이루고 산다.

유인원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고릴라는 이처럼 집단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주로 단독생활을 하는 오랑우탄과 다르고, 무리 안에서 같은 집단생활을 하는 침팬지보다도 훨씬 결속력이 강한 동물이다. 집단의 우두머리인 은색등 고릴라가 먹을 장소와 이동, 보금자리 등을 결정하는 철저한 위계질서의 가부장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떠오른 이유는

▲ 인간의 발가락을 닮은 은백색 마운틴고릴라의 발.
ⓒ 김성호
고릴라의 발을 보니 인간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 발가락이 다섯 개인데다 엄지발가락이 크고 앞쪽에 위치하는 등 사람의 발과 정말 비슷하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엎드린 자세도 그렇고, 발바닥의 생김새와 주름살도 사람의 그것과 정말 똑같다. 인간과 고릴라는 지구상의 수많은 동물과 비교하면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 오히려 차이점이 너무 적다고 해야 할까.

인간과 고릴라의 사이는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사촌이나 육촌 아저씨뻘 되는 친척관계이다. 실제로 인간과 유인원의 유전자를 분석해본 결과, 침팬지는 98%, 고릴라는 97%, 오랑우탄은 96%, 원숭이는 95%가 같다고 한다. 인류가 800만 년 전 고릴라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다시 600만 년 전 침팬지로부터 진화해 나오기 전까지 수천만 년 동안 우리는 고릴라 종으로 같이 살아왔다.

고릴라 입장에서는 어느 날 집에서 가출한 새끼가 오랜 세월이 흘러 되돌아 왔는데, 털을 모두 밀어버리고 두 발로 서서 나타나 자신의 이름이 '인간'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같은 고릴라의 발가락을 보면서 문득 <발가락이 닮았다>는 소설이 생각났다. 중고등학교 시절 입시 때문에 그 내용보다는 자연주의 작품이니 하면서 4지 선다형 답안 작성을 위해 달달달 외웠던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 말이다. 물론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운데 발가락이 닮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비극적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처절한 이야기지만.

소설 속 남자주인공 'M'은 아예 '다름'조차도 '같음'으로 끌어안으려고 몸부림치는데 우리는 얼마나 다름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백인과 흑인, 황색인이라는 피부의 색깔에 의한 인종적 차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같은 유대교 뿌리에서 나온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이 약간의 교리 차이로 서로 사실상 이단으로 바라보는 종교적 차별, 5천년을 한민족으로 살아왔는데 고작 60년을 떨어져 살았다고 남과 북을 냉전적 시각으로 보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차별의 시선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세상을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으로 보려는 기독교 원리주의자 조지 부시와 이슬람 근본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이 만나면서 평화는 깨지고 전쟁이 찾아왔다. 인류의 모든 전쟁과 갈등은 세상을 '같음의 망원경'으로 보지 못하고, '다름의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이 동물인 고릴라와의 차이가 불과 3%밖에 되지 않는데, 사람 사이에 다름이 있으면 얼마나 되겠는가.

영화 <킹콩>, 왜 나를 그렇게 포악하게 그렸니

▲ 가슴이 넓은 은백색 수컷 마운틴고릴라의 모습.
ⓒ 김성호
한 자리에 모였던 마푸아 고릴라 가족들이 다시 나뭇잎을 먹거나 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덩치 큰 수컷이 암컷의 등을 긁어주면서 털 속의 이를 잡아주자 암컷이 시원한지 기분좋은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온순하게 앉아 있던 암컷이 갑자기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앞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자 수컷이 암컷의 엉덩이 쪽으로 바짝 다가가 달라붙었다. 짝짓기를 하는 것이었다.

마운틴고릴라의 사랑하는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보니 정말 신기했다. 더욱이 수컷과 암컷의 사랑하는 방법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5분 정도 길게 사랑하다 수컷이 물러나자 암컷은 행복한 표정으로 옆으로 몸을 뒹굴어 한동안 누워서 쉬고 있었다. 수컷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등을 곧추세우고 의젓한 자세로 돌아왔다. 우리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는데.

배가 고팠던지 수컷은 큰 손을 나뭇가지로 뻗어 푸른 잎을 한 움큼씩 따먹기 시작했다. 배가 부른 수컷이 밀림을 헤치며 앞으로 움직이자 다른 고릴라들도 모두 그 뒤를 따라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새끼는 혼자 가는 것이 힘들었는지 어미의 등위에 올라타고 움직인다. 13마리의 마푸아 가족의 밀림 속 대이동이다.

마운틴고릴라들은 한 곳에 진을 친 뒤 주변의 잎을 모두 따먹으면 다시 푸른 잎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하루에 보통 1㎞ 정도 이동한다고 한다.

40여m쯤 움직였을 때 수컷 고릴라가 하늘 높이 솟은 30여m 높이의 큰 나무 밑에 이르자 멈췄다. 다시 먹이를 위해 진을 친 것이다. 중간 크기의 고릴라들은 능숙하게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가 새로 돋은 파릇파릇한 잎사귀를 따서 먹는데, 작은 새끼들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중간쯤에서 다시 내려왔다. 새끼들은 아직 위험한지 높은 나무줄기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만만한 작은 나무나 덩굴 잎을 따서 먹었다.

영화 등에서 포악하게 그려진 고릴라는 덩치만 컸지 주로 나뭇잎과 열매, 엉겅퀴와 쐐기풀 등을 먹는 순한 초식동물이며 가끔 대나무 잎사귀와 버섯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고릴라가 영화 <킹콩>에서처럼 북을 치듯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포효하는 경우는 적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해치려 할 때 자위수단으로 상대를 위협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보통은 그렇게 포악하지 않고 얌전한 동물이다.

마운틴고릴라의 수호천사 다이안 포시의 죽음

▲ 암컷의 이를 잡아주는 은색등 수컷 고릴라의 다정한 모습.
ⓒ 김성호
고릴라가 포악한 동물의 상징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킹콩>에서 미국 뉴욕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나운 모습으로 그려진 고릴라의 영화 속 이미지에다 1861년 프랑스 출신의 미국 탐험가인 폴 뒤 샤이(Paul Du Chaillu)가 쓴 아프리카 여행기에서 '광폭하고 사악한 반인반수(半人半獸)'라는 묘사 때문이다.

폴 뒤 샤이는 <적도 아프리카 탐험과 모험>이라는 책에서 "밀림 속에서 들리는 소리 중에 고릴라의 포효만큼 괴이하고 무시무시한 것은 없다. 성난 개처럼 시작된 울부짖음은 깊은 저음으로 변하는데,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같다"고 말했다.

마운틴고릴라가 영화 <킹콩>의 또 다른 내용인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는 온화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은 바로 고릴라의 수호천사로 불리는 미국의 다이안 포시.

콩고 비룽가 공원의 바로 건너편인 르완다 볼캉 공원에서 오랫동안 마운틴고릴라를 연구했던 다이안 포시는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국의 제인 구달, 오랑우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캐나다의 비루테 갈디카스와 함께 유인원을 연구한 세 명의 여성 인류학자로 유명하다.

이곳 비룽가 화산지대에서 일생을 마친 다이안 포시와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에서 침팬지 연구에 몰두한 제인 구달, 인도네시아의 보루네오 섬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한 비루테 갈디카스는 모두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 등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등 고대 인류화석을 발견한 영국의 유명한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의 제자들이다.

'유인원 연구의 여성 3총사'로 불리던 이들 중 마운틴고릴라를 연구했던 다이안 포시만 애석하게도 1985년 밀렵꾼으로 추정되는 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1966년부터 마운틴고릴라 연구에 몰두했던 다이안 포시와 관련해서 아쉬운 대목은 마운틴고릴라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밀렵 행위에 대해 총기로 위협하는 등 지나치게 과격하고 적대적으로 대응했던 방식이다.

동물보호도 지역주민들의 협조와 그들에 대한 경제적 대안 마련 없이는 불가능한데 다이안 포시는 대대로 수렵으로 생활해 오던 이 지역의 바트와(Batwa)라 불리는 피그미 부족을 단순히 밀렵꾼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이안 포시의 마운틴고릴라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동물보호 운동에 대한 헌신적 기여와 희생정신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다이안 포시는 마운틴고릴라와의 생활을 기록한 <안개 속의 고릴라(Gorillas in the Mist)>라는 책을 남겼고, 지난 1989년 같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이안 포시를 기리기 위한 '다이안 포시 고릴라재단(www.dianfossey.org)'이 국제적으로 결성되어 멸종위기의 마운틴고릴라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내가 묵었던 우간다 키소로의 비룽가 호텔 바로 앞에도 다이안 포시 고릴라재단의 키소로 지역 사무실이 있어 젊은 여자가 기금마련을 위한 고릴라 기념배지를 팔고 있었다.

전쟁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마운틴고릴라

▲ 사랑을 나누는 수컷과 암컷 고릴라.
ⓒ 김성호
큰 나무 밑에 있던 수컷 고릴라는 다시 암컷과 달라붙어 사랑을 하고 있었다. 역시 암컷은 등을 약간 구부린 채 앞으로 엎드린 자세로 조용히 있었다. 처음보다 더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첫 번째 사랑을 나눈 암컷인지, 새로운 암컷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수컷은 첫 번째 사랑을 나눈 지 30여 분만에 다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고릴라는 원숭이처럼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제이다. 침팬지의 경우는 한 마리의 암컷이 여러 마리의 수컷과 관계하는 일처다부제이고, 오랑우탄은 각자 홀로 생활하던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할 때만 잠깐 만날 뿐 다시 헤어져 각자 살아간다고 하니 일부일처제도 아니고,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독신생활도 아니고, 기러기 부부도 아닌데.

고릴라의 짝짓기는 단순히 종족 번식을 위해 짧은 순간 교미하는 방식의 다른 동물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사랑의 방식도 인간과 비슷할 뿐 아니라 결코 짧지 않은 동안의 다양한 사랑의 표현, 사랑하기 전 수컷이 암컷의 등을 정성스레 쓰다듬거나 암컷의 행복한 표정 등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고릴라의 짝짓기도 사랑의 표현의 한 수단이었다. '사랑'이란 말도 인간만이 사용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고릴라와 침팬지 등 영장류에서는 가벼운 사랑을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싸움보다는 교분의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두 번의 사랑을 나눈 수컷이 더 깊은 밀림으로 들어가자 다른 무리들도 뒤따랐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정글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시간에 걸친 마운틴고릴라와의 만남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마치 정들은 이웃을 홀로 정글 속에 버려둔 채 내려오는 듯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800만 년 전의 이별의 아픔이 생각난 것인가.

내려오는 산기슭에 보라색의 예쁜 꽃이 피었다. 마운틴고릴라가 가장 좋아하는 아칸투스(Acanthus)라는 이름의 꽃이란다. 대나무도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화산지대인 비룽가 국립공원을 휘감고 있는 짙은 안개와 대나무가 마운틴고릴라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 마운틴고릴라가 가장 좋아하는 아칸투스 꽃.
ⓒ 김성호

태그:#아프리카, #우간다, #콩고, #비룽가 국립공원, #마운틴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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