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가 고르게 발달하지 못한 한국영화계에서 공포영화는 아직 독자적인 생존력을 갖추지 못한 미답의 경지 중 하나다. 일본영화 <링>과 할리우드 영화 <식스센스>의 대중적 성공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영화계에서도 여름마다 공포영화 제작 붐이 일었으나 만족할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

해마다 여름이면 개봉되는 국산 공포영화만 평균 5~6편에 달한다. 이중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한국공포영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여고괴담> 시리즈나 <가위>, <폰>, <장화 홍련>, <알 포인트> 등이 손에 꼽을 정도다.

문제는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영화 장르의 완성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2~3년 전부터 국산 공포영화는 대중성이나 작품성에서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실패한 실험들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꼽히는 안병기 감독의 <아파트>가 흥행에 실패했고, 김용균(분홍신), 원신연(가발), 봉만대(신데렐라), 김지환(전설의 고향) 등 주목받은 젊은 감독들이 일제히 호러 장르에 도전장을 던졌음에도 대부분 시행착오에 그쳤다.

이는 이론과 현실의 차이와 설사 영화 전문가들이라 할지라도 전형적인 이야기일수록 오히려 장르의 클리셰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흔히 국내 공포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독창성 부족이다. 오컬트 문화나 하드고어, 슬래셔 장르들이 발달한 서구권, 귀신종류만 100여종이 넘는다는 일본 공포물에 비해 한국의 호러영화는 독자적인 개성을 지닌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게 아킬레스건이다.

<링>의 아류에서 못 벗어나

 한국 공포 영화는 <링>의 아류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사진은 <링> 포스터
한국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처녀귀신'들이다. 잡다한 귀신들이 많다지만 역시 창백한 얼굴에 하얀 소복 패션, 미동 없는 포커페이스에 입가에는 시뻘건 피로 악센트를 넣어준 처녀귀신만한 카리스마가 없다. 전기톱을 들고 설치는 대량 학살범이나 흡혈귀 같은 '무차별적'인 살육은 한국적인 정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한국 공포영화들은 이러한 한국적인 개성을 상실한 채 다분히 소재주의에 치우치는 양상을 드러낸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거의 99.9%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한국 공포영화의 스타일은 일본영화 <링>의 아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록 원혼이 되었어도 품위를 지키던 국산 처녀귀신들에 비하여 요즘 영화 속 '사다코의 후예'들은 하나같이 음울하면서 괴기스럽다. 넝마에 가까운 허름한 노숙자 패션, 추운 데서 자다온 듯 항상 얼굴과 턱은 45도쯤 돌아가 있고, 윤기 없고 지저분한 산발머리는 대걸레에 물만 적셔 놓은 듯 푸석푸석하다. 팔다리는 퇴행성 관절염에 시달리는 듯 삐걱거리기 일쑤다.

복수의 방식도 기껏 해봐야 심장마비의 충격 효과 정도가 고작이던 옛날에 비해 쓸데없이 힘자랑만 하며 대상을 두 토막 내거나 익사시키고, 휴대폰 폴더처럼 사지를 고이 접어놓는(?) 등 최대한 잔인해졌다. 아무 때나 예고 없이 나타나서 의미 없는 '깜짝쇼'를 남발해 극중인물보다 관객들의 신경쇠약을 유도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귀신의 잦은 출몰과 충격효과에 비해 점점 이야기의 개연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한국의 공포영화들은 '죽은 자의 사연'을 밝혀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소통하던 전통 되살려야

한국 공포영화 속 원혼은 악귀와는 전혀 다르다. 반드시 명분과 사연이 존재한다. 일본이나 서양처럼 잔혹한 복수극의 광기나 공포감 자체보다는 '한'이라는 정서에 주목해 원혼이 왜 한 맺힌 복수극을 펼칠 수밖에 없는지 밝히는데 주력한다.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것도 산 자의 일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원혼은 단순히 배척해야만 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서로 사는 세계만 다른 존재일 뿐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소통'을 강조하며,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고 사연을 교감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전통적인 한국공포물의 특징이다.

TV판 <전설의 고향>이나 전통적인 한국공포물 속의 귀신이야기들은 언제나 두려움에서 시작되지만 결말은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치유 혹은 화해로 마무리된다.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같은 영화들이 국내에서 공감대를 끌어냈던 이유는 서구권 영화답지 않게 바로 동양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공포물이었기 때문이다.

공포는 테크닉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하지만 최근 공포영화들은 첨단 특수효과를 바탕으로 볼거리는 많아졌지만, 공포의 전체적인 틀을 구성하는 기승전결의 당위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을 친절하고 세세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관객이 직접 상상하게 할 때가 더 무서운 법이다. TV판 <전설의 고향>이나 <식스 센스>같은 영화들이 성공했던 이유는 특별히 무서운 장면을 보여주어서라기보다 관객이 먼저 상상하게 하고,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는 구성의 긴장감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공포영화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다코 전설의 고향 식스 센스 디 아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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