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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버나움 옛 회당 터의 문양이 선명한 돌기둥 잔해
ⓒ 이승철
갈릴리호수변의 휴양소 엔게브 키부츠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호수 북동쪽에 있는 고대마을이다. 이 마을은 성경의 신약에 그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지명으로 예수가 활동할 당시에 세관이 있었고 로마의 군대가 주둔했었던, 지리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마을이었다.

키부츠를 출발한 버스가 오래지 않아 도착한 곳은 요단강 위에 놓인 다리 위였다.
"자! 여기서 잠깐 구경하고 가겠습니다. 앞으로는 요단강을 다시 구경할 기회가 없을 테니까요."

그 유명한 요단강이라니 모두들 잔뜩 기대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대나무처럼 커다랗고 울창한 갈대밭과 그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개울이었다.
"저 아래로 물이 흐르는 개울 같은 모습이 보이죠? 이곳이 바로 요단강입니다."
"아니 청계천보다도 훨씬 작은 이 개울이 요단강이라고요?"

이곳을 처음 찾은 일행들의 매우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강가에는 커다란 나무들과 함께 갈대가 무성하고 강물의 얕은 곳에서는 커다란 물새들이 물고기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는 이 길은 지금도 중요한 길이지만 고대부터 아주 중요한 캐러밴들의 통로였습니다."
고대부터 서쪽에서 요르단 계곡을 따라 올라온 대상들이 시리아로 가는 길이 바로 이 길이었기 때문이다. 다리 위를 거침없이 씽씽 달리는 차량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지금도 교통량은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 개울처럼 작고 초라한 모습의 요단강
ⓒ 이승철
▲ 요단강 주변과 저 멀리 호수 유역 풍경
ⓒ 이승철
다리 위에서는 골란고원 쪽의 언덕 위에 올리브 농장이 가꿔지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그러나 요단강 하류 쪽에 갈릴리 호수가 있기 때문에 호수 유역의 평원과 언덕이 푸른 모습으로 펼쳐져 평화롭고 목가적이다. 우리들이 건넌 요단강은 요단강의 수원인 헬몬산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갈릴리호수로 흘러드는 길목지점이었다.

너무 작고 초라한 요단강의 모습에 실망한 일행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길을 재촉했다. 버스가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도착한 곳이 가버나움이었다. 가버나움에서는 옛 유대인들의 회당유적과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집터에 세워진 교회유적을 둘러보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유적지가 저만큼 보이는 앞에서 버스를 세웠다. 가까운 곳에는 버스를 주차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을 200m쯤 걸어가자 유적지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를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발등에 물고기가 있고 한손에는 열쇠, 한손에는 지팡이를 든 베드로 상이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고기 잡는 어부였던 베드로 동상 얼굴 표정에는 때로는 무모하리만큼 당차고 성질 급한 모습으로 성경에 묘사된 그의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듯했다. 베드로 상을 뒤로 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왼편은 옛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던 자리가 폐허로 변해 있는 모습이고 앞쪽에는 둥글고 푸른 지붕으로 덮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교회다. 이 교회가 바로 베드로의 옛 집터 위에 로마시대에 세워진 교회였다. 교회 바닥에는 밑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유리가 둥글게 깔려 있었는데 가운데에는 화분 한 개가 놓여 있다. 유리바닥을 밟고 올라설 수는 없었지만 철제 울타리 너머로 유리를 통하여 그 아래 바닥의 옛 집터를 바라볼 수 있었다.

▲ 발치의 물고기와 손에 열쇠와 지팡이를 든 베드로 상
ⓒ 이승철
▲ 베드로 집터 교회 입구
ⓒ 이승철
교회에서 나와 유대인들의 옛 회당 터를 찾았다. 회당은 일부 벽체와 몇 개의 기둥이 서 있을 뿐 철저하게 무너져 폐허나 다름없었다. 주변은 더욱 파괴가 심하여 겨우 바닥의 주춧돌과 흔적만 남아 있는 모습이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나게 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시죠? 예수님께서 죽어가던 백부장의 종을 치료하여 주시고. 또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기도 하고, 죽었던 소녀에게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하시자 소녀가 일어나는 기적을 행하셨던 바로 그곳입니다."

일행들이 모두 아하!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가이드 서 선생을 주시한다.

"그러나 이곳은 또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다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기억나십니까?"

일행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인다. 이곳 가버나움은 자신의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당한 예수가 왕성하게 활동한 지역이어서 '자기 동네'라고 했을 정도로 여겼던 마을이다. 이곳에서 예수는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12제자를 거두어 들였고,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를 비롯한 많은 설교를 하였다.

▲ 베드로 집터 교회 내부의 바닥 밑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리바닥
ⓒ 이승철
▲ 옛 회당터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
ⓒ 이승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성읍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그 예언이 적중한 것일까? 3~4세기부터 번창했던 이 지역은 6세기 들어 지진으로 무너지고 퇴락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 우리들이 바라보는 무너져 폐허가 된 건물은 예수의 그런 이적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건물이다. 이 무너진 건물 역시 후기 로마제국인 4세기 비잔틴시대의 줄리앙 황제 때 세워졌으며 황제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세운 갈릴리 지방 위쪽에 우뚝 솟아 있었던 몇 개의 건물들 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곳 유적들은 너무나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목재건물도 아니고 모두 돌과 벽돌을 이용한 석재건물인데도 이집트나 다른 어느 곳에서 보았던 유적들 보다 너무 심하게 파괴되어 있어 완전히 폐허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예수님의 그 저주와 예언이 그대로 들어맞은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완전히 부셔진 폐허가 될 수 있겠어? 모두 돌로 지은 건물인데 말이야."
일행 중의 한 사람은 조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돌기둥을 어루만지면서 몹시 아쉬운 표정을지었다.

▲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옛 회당터 내부 모습
ⓒ 이승철
▲ 가버나움 유적지 전경, 푸른색 둥그런 지붕이 교회. 왼쪽 숲 옆이 회당터
ⓒ 이승철
건물 주변에는 유적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모양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돌과 기둥에 새겨진 문양들은 나름대로 모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유물들 이거 상당히 귀중한 것들인 것 같은데. 고고학적 가치도 높을 것 같고, 그럼 값도 제법 나갈 것 아냐? 그런데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를 해도 분실되거나 훼손되지 않나?"

담장 밑에 그냥 적당히 버려져 있는 것 같은 유물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허술한 나라도 아닌데 말이다.

"저거 저래 보여도 누가 쉽게 훔쳐가지 못합니다. 저 입구에서 사람들이 지키고 있잖아요? 그리고 사실 이 나라는 이 정도 유물은 지천이거든요, 어디든지 파헤치면 쏟아져 나오는 것들이 저런 유물들이거든요."

▲ 폐허가 된 가버나움 유적지
ⓒ 이승철
어쩌면 석조문화를 가진 나라의 여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썩지 않고 쉽게 부서지지도 않는 돌로 지은 건물들이며 유물과 유적들이라 몇 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비록 무너져 폐허가 됐을지라도 그 잔해들은 저렇게 유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가 담장에는 이름 모를 붉은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길가 아래쪽으로는 갈릴리 호수가 마침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다음 예정지로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요단강, #이스라엘, #베드로, #갈릴리호수, #가버나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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